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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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기후 위기(Climate Crisis)란 일상이 되어 있고, 정부나 기업의 환경오염 때문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책임을 따져 묻는 소송도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러한 피해에는 기후 변화가 정서적 고통을 유발한다는 내용도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생명권의 개념 속에는 정신건강이 포함됩니다. 오늘은 심리적 행복을 위협하는 환경 요인에 대해 나눠 보겠습니다. 

 

∞ 외상 전 스트레스 장애로도 설명되는 기후 위기

미국심리학회는 2017년 ‘기후 우울증(Climate Depression)’이라는 용어를 제시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기후 우울증이란, 기후 위기가 자신과 지인들을 비롯해 국가와 인류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불안, 우울, 스트레스, 분노, 무력감 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공식적인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환경적 비애(Environ-mental Grief)’ 또는 ‘외상전 스트레스 장애(Pre Traumatic Stress Disorder)’등의 용어로도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환경 불안’ ‘기후 슬픔’ ‘생태 슬픔’ ‘솔라스탤지어’ 등 정신건강 분야 신조어는 이 순간에도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산사태나 폭염 등의 기후 위기의 증거들이 계속되는 데 따른 일입니다. 

 

∞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기후 변화

지난해 6월 국제보건기구(WHO)는 기후 위기와 정신건강 사이의 상호 연결을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으며, “기후 변화는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상기후로 인한 현상들과 재해는 정신건강과 사회복지와 관련한 위험 요소들을 악화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이 미치는 영향, 즉 기후 위기의 효과들은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게 전이된다는 점입니다. 

기후 위기는 홍수, 폭염 등과 같은 극단적인 날씨를 낳으며 실제적인 삶을 침범합니다. 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심각한 부상이나 죽음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점점 높은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약물 사용 장애 등의 심각한 문제가 그 사례들입니다. WHO는 2013년 태풍 하이옌의 영향 이후 정신 건강 서비스 체계를 개선한 필리핀과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재해 위험 감소를 확대한 인도의 사례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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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권의 개념 속 정신건강

지난 3월 미 하와이주 대법원은 벌목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 납품해 온 기업에 대한 계약 취소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는데요, 대법관 5인은 “기후 위기는 유례없는 비상사태이며 미래세대의 생명이 위태롭다.”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각국의 사법부가 기후 위기로 인해 위협받는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생명권 개념 속에는 정신건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최근 보고서에서 “급격하게 증가하는 기후 변화가 정서적 고통에서 불안, 우울, 슬픔, 자살 행동에 이르기까지 정신 건강과 심리적 행복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신 건강과 심리적 행복을 정면으로 거론한 데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이지요. 

해당 보고서는 다양한 국가의 지리적 대표성,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여부, 성별까지 고려해 보고서를 작성할 과학자를 선정합니다. 이들이 작성한 내용을 동료들이 검토하고, 최종적으로는 과학자 전원이 참석하는 전체 회의에서 모든 항목들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승인될 만큼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요. 이런 보고서가 기후와 심리적 행복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중요한 주제인 듯합니다.

 

∞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한 시스템과 서비스 구축 필요

2021년 영국 배스대학교 연구팀은 전 세계 10개국 청년 1만 명을 대상으로 기후 위기의 영향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미래가 두렵다’는 반응을 보인 이가 77%로 가장 많았습니다. ‘슬프다(68%)’, ‘불안하다(63%)’는 대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북쪽 스트레이트 해협에 있는 여러 섬 주민들은 호주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섬이 가라앉는다는 호소에 대해 호주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이라 말할 수 없다며 소 각하를 주장했지만, 호주 연방법원은 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실제로 섬들을 찾아다니며 원주민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원주민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바 가운데는 어려서부터의 전통을 잃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정신건강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법원의 현장조사와 변론은 끝났지만, 학계에서 공인된 과학자들이 멜버른의 법정에 출석해 증언하는 시간이 향후 계획돼 있습니다. 

 

∞ 정신 건강과 심리사회적 복지를 위한 노력

혹시 여러분들은 날씨의 변화에 예민해하면서도, 손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들고 계시지는 않나요? 탄소 배출을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기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별나다고 생각하시나요? 날씨는 우리의 심리적 행복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먼 나라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여기’의 문제가 된 기후 위기에서, 모든 인류의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기후는 만성적이고 장기적이며 잠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기후의 온난화를, 막고 정신 건강과 심리사회적 복지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점들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극단적 날씨에 직면했을 때 이뤄져야 할 적절한 심리사회적 지원에 대해 국가부터 민간까지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심리적 행복을 지키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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