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포스터
사진_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포스터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일 수도, 선생님일 수도, 마음씨 좋은 이웃의 누군가였을지도 모르는 그들이 우리 삶에 남긴 아름다운 흔적은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단 학창시절이 아니더라도 삶의 다양한 시기마다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 있었고, 혹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들은 인생의 좋은 멘토처럼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과 영감, 성장을 위한 발판을 제공해주며, 지치고 힘들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도 좋은 멘토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변화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인공 주디를 후원하며 성장 과정을 지켜봐 주었던 키다리 아저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명문학교의 교육을 받고 있지만 답답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가르쳐 준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 분),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분), 2018년 큰 인기를 끈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여주인공 이지안(아이유 분)에게 힘이 되어 준 상사 박동훈(이선균 분)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죠. 

이런 좋은 멘토들과의 만남은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주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가치관과 세계관,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그전까지 갖고 있던 자아정체감이나 자존감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스스로도 의심했던 자신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믿어주고, 격려해 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때로는 조력자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멘토를 통한 이런 삶의 변화는 발달심리학적 관점을 통해서도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발달단계이론을 통해 인간이 8단계의 발달과정을 거치며, 각 단계마다 발달과업을 수행하면서 성숙하고 성장한다고 보았습니다. 프로이트(Freud)가 정신분석을 통해 주로 영유아기의 욕구 충족과 특정 단계에서의 고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 원초아의 역할, 발달에 미치는 부모의 영향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에릭슨은 영유아기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발달과 성숙을 강조했습니다. 

또, 발달과정에서 원초아보다는 자아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부모의 역할보다는 한 개인을 둘러싼 심리사회적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설사 영유아기나 아동기에 외상적 경험이 있거나 부모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후 발달과정에서 좋은 선생님이나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회복되고 성장하며 성숙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에릭슨의 이런 관점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원치 않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고, 힘이 되고 사랑을 주기보다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의지로 일어나지 않은 일, 내가 원해서 마주치게 된 이들이 아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로부터 쉽게 잊히지 않는 내상을 입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번 우리 마음에 남은 상처가 영원히 회복되지 않고, 성장과 발달을 막는 요인으로 계속 작용한다면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굉장히 불행하고 힘든 삶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에릭슨의 이론에 잇대어 우리는 힘들었던 삶의 경험,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사람들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복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 과정은 조금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_ tvN 홈페이지
사진_ tvN 홈페이지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공포,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생존 본능에 따라 장기기억에 저장되고, 유사한 상황이나 환경을 접할 때마다 그와 연합된 뉴런이 활성화되면서 기억도 함께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특히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는 그와 관련된 기억이 쉽게 잊히지 않고, 침습적,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또, 긍정적 자극보다는 부정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련의 반응은 위험이 될만한 요인들을 피하고 안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존본능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었던 삶의 기억, 불행했던 어린 시절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경우 그 기억이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앞으로의 삶 역시 행복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과 염려를 느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는 불행하고 힘들었던 경험과 기억 이후에도 회복과 안정, 성장과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긍정적인 경험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가지다 보면 그런 변화가 서서히 삶에 스며들게 됩니다. 이는 뇌과학적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원리에 따라 이전에는 부정적 기억이나 감정과 연결된 뉴런들이 활성화되어 있었던 것이, 좋은 사람들과 긍정적 경험에 대한 반복적 노출을 통해 긍정적 기억 및 감정과 연결된 뉴런이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생의 멘토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에릭슨의 발달단계 이론과 뇌과학적 설명을 통해 더욱 많이 와닿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친구일지도, 선배 혹은 후배일지도, 때로는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한 그 누구일지 모를 좋은 멘토들을 많이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 줌으로써 타인의 성장을 돕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인생의 큰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멘토이자 멘티로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에 기여하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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