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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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림역과 서현역 백화점 등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으로 인해 국민 불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유사한 모방범죄, 인터넷상에서의 살인 예고 글들이 계속 이어지며 대상과 시기, 장소를 알 수 없는 무차별적 범죄에 대한 공포가 일상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한 사상자가 끊임없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규탄과 총기 소지 반대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2000년대 이후 계속된 테러로 인해 몸살을 앓았고,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대규모 테러로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치안 안전지대로 여겨지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 사건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사건들은 TV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집중되고 있는 흉기 난동 사건은 우리나라 역시 더 이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며, 일상적으로 다니는 곳에서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불안이 일상화되었고, 일상 속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경각심이 고조된 것입니다. 

시민들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호신용 장비를 구입하기도 하고, 길거리를 걸으며 습관적으로 봤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좌우전방을 주시하며 이어폰조차 아예 꽂지 않거나 한쪽만 꽂기도 합니다. 또, 당분간 사람이 많은 장소는 피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다 보면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경계와 의심이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지하철 내에서 한 인기가수의 라이브 방송을 보던 일부 팬들이 흥분해 소리를 지른 것을 긴급상황으로 오인해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기도 했습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일부 승객들이 소리를 질러도 잠시 주목받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혹시 모를 범죄와 테러에 대비해 서울 한복판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경찰특공대가 배치된 현재 상황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큰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이 빵빵한 풍선에 날카로운 작은 바늘 하나만 스쳐도 풍선이 ‘펑’하고 터지는 것처럼 불안과 긴장이 극대화된 상태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이런 사건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은 ‘사회 전반과 타인에 대한 불신’, ‘일상에서 느끼는 지속적 불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타인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회질서에 대한 믿음, 타인을 믿을 수 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고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 체계를 붕괴시킵니다.

내가 자주 가는 곳, 일상적인 삶의 공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도 위험한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나 역시 언제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 ‘내 살길은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는 생각을 강화합니다. 그야말로 불안과 혼란,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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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강력한 대응과 엄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흉기 난동 사건과 모방범죄, 인터넷 예고 글 등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통해 범죄자 및 잠재적 범죄자들이 이런 일들을 저질렀을 때 중대한 처벌을 받음을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엄정한 대응과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빈틈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이 이후 더 많은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런 사안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음을 보여주고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글을 올릴 수도 있다는 허용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 작성자 187건 중 검거 인원의 절반 이상(57.65%)인 34명이 10대이며, 그중 촉법소년도 다수라고 합니다*. 단순히 관심을 끌고 싶어서, 또는 살인 예고 글이 가지는 파급력이나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 행위인지 알지 못한 채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거나 몰랐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과 타인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잘못에 대한 엄중한 처벌, 책임과 함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이 “나도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을 했다.”라고 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단절되어 있으며 자신의 열등감과 분노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경향, 사회적 규범 준수에 대한 내재화의 부족과 부적절한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단절된 이들이 불안정한 내면의 갈등과 공격성을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하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정신적 어려움을 이유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중 실제 정신질환자가 아닌 이들이 감형을 위한 시도로 정신질환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정확한 정신감정 및 엄격한 법적 잣대가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향후 유사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적 제재와 함께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지원시스템 강화를 통해 사회의 약한 고리에 대한 지속적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이런 범죄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심리적 지원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일례로 성남시에서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관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난 심리지원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이 같은 대응은 과거에 비해 달라진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과 대처에서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시적 관점에서는 흉기 난동 사건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적 참사와 재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범죄로 인해 손상된 사회공동체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일상에서의 안전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노력이 수반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다시 일상에서의 평화, 안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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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s://n.news.naver.com/article/119/0002737794?cds=news_my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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