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 뒤태 보면서 산다는데, 그 힘겨운 사랑에 비하면,,,

사진 Beomsik Shin

연전에 나돌던 우스갯소리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나이 마흔 넘으면 공부 잘한 여자나 공부 못한 여자가 똑같고, 쉰이 넘으면 예쁜 여자나 못난 여자나 똑같고, 예순이 넘으면........아흔이 넘으면 방에 앉은 여자나 산에 누운 여자나 똑같다."

누가 지어낸 우스갯소리인지는 몰라도 풍상의 허허로움을 참 잘 정리 정돈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요즘처럼 요양병원에 근무하다보면 그 우스갯소리가 한 번씩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 젊을 때 영민하고 곱던 사람도 치매가 와서 세상 구분 못하고 대소변 받아낼 지경에 이르면 '영민'이고 '창수'고 도저히 소용이 있을 래야 있을 수가 없다. 가진 건물이 몇 채면 뭣하고 대장이다 국회의원이다 하면 뭘 하는가 말이다. 자식들 얼굴은 가뭄에 콩 나기보다 보기 어렵고, 말은 않지만 어서 가시기를 축원하는 자식들도 분명 없지는 않을 터이다. 그렇게 누운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사람 산다는 게 참 허랑하고 허망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으면 마지막 가는 길은 좀 곱게 가면 안 되는가 말이다. 그렇게 착하게 살았으면 마지막 길은 좀 쉽게 보내주면 안 되는가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에 그리 아등바등 살 생각을 했을 것인가 말이다. 홑적삼 같은 환자복 하나씩 똑같이 입고 계급장 하나 없이 누운 여기서는 성실하게 살았던 이나 불량하게 살았던 이나 구분이 없다.

 

그러나 장미는 장미고 찔레는 찔레다. 만약에 장미나 찔레의 꽃을 보지 못한 사람이 한겨울에 시들은 줄기들만 본다면 무엇이 다르랴마는 장미는 장미로 피어나고 찔레는 찔레로 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한겨울에도 장미와 찔레를 구분할 줄 안다.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이 와서 시커먼 줄기로만 남았는데 장미니 찔레니가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그래도 장미는 장미고 찔레는 찔레다. 봄여름이 한없이 오지 않는다면 모를까 어김없이 다음해 오월이 찾아오면 장미는 장미로, 찔레는 찔레로 피어난다. 그리고 한 점 틀림없이 봄과 여름은 다음 해에도 기어이 찾아 오고야 만다. 그렇게 모든 것들은 그 '때'가 있는 법이고 그 때가 지나면 모든 것들은 흉허물 없이 고만고만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화사한 봄여름의 향기를 품었으면 그런 고만고만함을 한탄할 일은 또 아닐 터이다.

 

내가 돌보는 할아버지 한 분의 따님은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돌보신다. 자신도 예순 중반에 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를 돌보시면서 아예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신다. 병실마다 담당 간병사가 배치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식사며 목욕이며 대소변이며 모두를 따님이 감당하신다. 그분은 할아버지의 장녀인데 일찍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들 돌보면서 가사 일을 맡으셨단다. “어릴 때 아버지한테 사랑을 많이 받으셨는가 봐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하신다.

"옛날 분이라 아들뿐이지 딸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지금도 내가 이래 쫓아다녀도 아들 손자 이야기만 합니다"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대답은 이렇게 돌아온다. "아버지가 그런다고 나도 그럴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는 아버지 할 일이 있고 나는 내 할 일이 있는데 우리 자식들 이렇게 잘 키워 주셨으니 나는 또 내 할 일을 해야지요. 말은 안 해도 아버지 속정이 깊었어요." 그러면서 딸의 눈길은 옛날을 회상하는 아스라한 눈길로 바뀌면서 눈에 물기가 조금씩 어린다. 그 옛날, 차마 말로는 못할 속 쓰림과 말없는 아버지의 속정이 생각났을 것이다.

 

이 따님의 생각은 대체로 이러하다. 부모 자식 간 만남이 보통 인연으로 만나는 게 아닌데 그 인연 소중히 하지 않으면 무얼 더 소중히 하겠는가. 세상에 소중함 하나 없이 살면 그 삶이 얼마나 허접할 것인가. 나도 자식 키우는데 자식 중에도 더 곱고 덜 고운 놈이 왜 없겠는가. 그래도 내 속으로 나은 자식 더 고우면 얼마나 더 곱고 덜 고우면 얼마나 덜 곱겠는가? 이 날 이 나이 되도록 이만큼 산 것이 아버지의 돌봄 없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 힘겨운 사랑에 비하면 내 일은 일도 아니다. 자식은 부모 뒤태 보면서 산다는데 내가 아버지 모른 체하면 우리 자식도 날 모른 체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중풍이 와서 반신마비와 치매가 겹친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꽃을 보면 장미가 장미인 줄은 안다. 그 할아버지의 장녀는 꽃 중의 꽃이요 장미 중의 장미다. 등걸만 남은 장미 줄기도 그 꽃을 보면 안다. 따님의 지극정성이 그러하다면 할아버지의 지극 정성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힘이 장사였지요. 밤이나 낮이나 밭에서 살았어요."

밤낮으로 어미 없이 고물거리는 새끼들 까만 눈망울들 바라보면서 몸이 으스러져라 일했을 할아버지의 삶이 한 눈에 그려진다. 그런 아버지와 딸의 인연이 오뉴월 장미향보다 더 진하고 향기롭다. 귀먹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내가 고함을 친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 병원에서 제일 복 많은 분이세요~ 아세요?" 할아버지가 누운 채로 늘 그렇듯이 눈 감은 채 대답하신다. "응"

딱 한마디로 끝난 대답과 동시에 얼굴에 가득하니 웃음이 번진다. 치아가 다 빠진 할아버지 얼굴이 하회탈보다 더 환하다. 아버지 웃음을 바라보면서 따님도 따라 웃는다. 달덩이 같은 웃음의 향기가 온 병실 안에 가득히 퍼진다.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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