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만 둬? 말아?’

많은 직장인의 머릿속에 저 두 가지 선택지가 떠다니지 않을까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마음, 아직은 때가 덜 되었다며 다독이는 마음이 번갈아 가며 대뇌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과급이 나오거나, 상사가 나의 업무를 인정해주면 다닐 만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타 부서 팀장의 눈치까지 봐야 하거나, 월요일 아침만 찾아오면 직장을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라기보다, ‘이게 내가 원했던 일이 맞나?’ 하는 깊은 고민이 누적된 결과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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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밀당’은 연인이나 부부,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나 기관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 싸움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에 비유해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직장을 파도치는 마음 한가운데 두고, 밀당을 반복합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친구들 중에 현재의 직장에 오래 다닐 생각을 하는 친구들은 소수입니다. 경력을 위해 최소 일 년만 다니고 그만둔다거나, 계약 기간만 채우고 그만둔다는 의견이 많이 보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직장 생활에 관한 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직장을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현 직장의 장단점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고민의 원인이 으레 그러하듯, 장단점은 비등비등하고 내면의 갈등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직장 생활 3년 차인 30세 여성 A는 직장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장단점을 적어 보았습니다.

- 장점: 성과급을 많이 주어 원래 계약한 연봉보다 실수령액이 높다. 자신의 경력과    나이를 따져 보았을 때, 다른 직장에 가면 이만큼 받기 힘들다.

- 단점: 원래 하던 일의 반복뿐이어서 자기계발이 안 된다. 지금 직장의 경력은 연차 만 높은 허울뿐이고, 햇수가 지날수록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힘들어진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라지만, 현재의 생활을 겨우 유지하며 사는 사회 초년생에게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렇듯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별다른 만족감을 얻지 못한 채 오늘도 어영부영 출근합니다.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몬’과 ‘잡코리아’에서 MZ세대 직장인 1,28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봅시다. MZ세대는 직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일을 통한 스스로의 발전을 체감’하는 것을 꼽았습니다. 이에 반해, X세대는 ‘적성과 잘 맞는 일’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을 통한 스스로의 발전을 체감’하는 것은 3위로 밀려났지요.

이 조사 결과는 MZ세대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줍니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업무를 하면서 자신의 성장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업무를 통한 성장은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외적 요인은 지지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성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원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는 것, 한 개인의 의견이 팀의 의견으로 수렴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 개인의 역할과 능력을 인정받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 등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지적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한 개인의 역량으로만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시스템적인 문제로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적 요인은 직장과 업무를 대하는 개인 내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업무 성과나 효율에 따른 내 마음의 상태 변화를 살펴본 적이 있는가? 그만둘 것인가, 계속 다닐 것인가? 혹은 계속 이 일을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적 요인을 통한 성장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직장 생활이란 줄다리기할 때 쓰는 밧줄을 제작하듯 한 줄기씩 자신의 경험을 모아 엮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장에 대한 마음을 살피는 것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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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장단점 리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직장에 대한 내 마음의 변화 지표를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 방법은 이러합니다.

1. 일정한 기한을 정한다. 1개월 혹은 3개월 등, 기간은 나와 업무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 필요하다.

2. ‘직장 생활 기분 지수’를 정한다. 직장에서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를 숫자로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 일 잘하네, 성취감 10점’ ~ ‘당장 때려 칠 거야. 0점’과 같이 말이다.

3. 매일매일 ‘직장 생활 기분 지수’를 체크한다. 출퇴근 시간에, 감정이 발생할 때, 사건이 생겼을 때 등등. 월급이 들어오거나 직장 상사에게 깨졌을 때, 보고서가 마음에 들게 나왔을 때 체크할 수 있다. 

4. 사건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살핀다. 자신의 감정 변화가 특히 두드러질 때를 고민해 보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원인이 파악된다면 그에 대처할 방법을 강구한다. 인과관계를 찾고, 손상된 감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대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잘못 작성한 탓에 직장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어 기분 지수가 0을 기록했다고 합시다. 그 후, 동료와 함께 직장 상사 뒷말을 하고 3이 되었습니다. 또한 보고서 재수정을 하고 5가 되었지요. 월급을 받고 동료에게 기프티콘을 선물하자 기분 지수는 어느새 7이 됩니다. 이처럼 직장에서 손상된 기분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또한 ‘대처 방법 강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인과관계를 찾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재수정하기 위해서는 직장 상사에 대한 감정을 먼저 환기하는 것이 더 필요한 부분인 것처럼 말이지요.

 

직장에 대한 마음을 밀당에 비유한 것처럼, 직장과의 관계는 인간관계와 비슷합니다. 성숙한 인간관계를 꾸리는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상대가 잘되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며 위로해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적정선을 넘지 않지요. 적정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관계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오해하여 화를 낼 때는 잠시 기다렸다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고, 관계가 소원해진 것 같으면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맛집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직장 혹은 업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섬세하게 헤아릴수록 의미가 깊어지니 말입니다. 직장을 오래 다니고, 뛰어난 업무 결과를 내는 것만이 성장이 아닙니다. 업무에 대한 나의 감정을 잘 다루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업무를 통한 성장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의도와 다른 업무 결과로 힘들 때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도 하고, 일이 재미없고 지겨워지면 관련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유관 업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기웃거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밀당은 직장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내 안에서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장이란 누가 주도권을 쥐고 더욱 팽팽하게 줄을 당기느냐가 아니라, 업무라는 실로 내가 엮어내는 밧줄 같은 것입니다. 굵고 튼튼한 밧줄을 만들지, 알록달록한 예쁜 밧줄을 만들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밧줄을 만들지는 내가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림 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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