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원병동에서 24시간 환자 옆에서 살뜰한 돌봄을 해주는 환자의 가족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환자의 가족들은 하루 종일 환자 곁에 밀착해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신경쓰며 돌봐줍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끼니도 간신히 때우고 비좁은 간이 침대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며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지냅니다. 특히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환자를 혼자 돌보고 있다면 그 부담은 더 가중됩니다. 가족의 돌봄은 중환자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만 간병하는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잘 없습니다.

최근 들어서야 정신적, 신체적으로 매우 고된 간병 일을 하는 가족간병인의 정신건강 또한 돌봐야한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간병 가족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일주일 동안 치료받은 중환자들의 간병 보호자 28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다양한 설문지나 병원자료를 이용해서 환자와 보호자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상태를 1년에 걸쳐서 추적 조사했습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간병인은 70%가 여자였고 평균 나이는 53세였습니다. 대개 남편을 간병했는데, 67%의 보호자는 간병을 시작하면서 우울증상이 생겼으며, 43%는 우울 증상이 1년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환자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는 큰 관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간병인이 젊을수록, 사회적인 지지나 도움이 없을수록, 간병 때문에 사회적인 활동을 못하게 될수록, 간병인의 우울증 증상은 늘어났습니다. 중증 환자의 보호자에게 우울증 증상이 발병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환자를 내 몸같이 돌봐주는 것은 최고의 보살핌입니다. 그러나 간병인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경증의 우울증세를 큰 병으로 키우기도 합니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도 환자와의 경계가 필요하며, 자신의 삶을 남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생활을 환자 위주로 맞추게 되면 다른 가족들과 자신의 죄책감을 피할 수 있으나, 환자가 사라지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극도의 허망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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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간병을 해주는 가족의 우울증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간병을 해주는 가족에게도 일정한 휴식을 주어야 합니다. 한 명의 가족이 한 명의 환자를 맡아 보살핀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가족들이 번갈아 교대로 돌보거나 주말에 외부 간병인을 따로 두는 등 간병하는 사람이 번아웃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환자를 주로 맡아서 돌보는 가족 간병인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가족과 환자는 누구보다 끈끈 관계이지만 두 사람의 미래가 언제까지나 함께일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간병을 하는 가족은 환자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삶과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셋째, 환자 가족은 간병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저 참기 쉽습니다. 중증 환자를 돌볼수록 차츰 불만이 생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수 있으나 이를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가족이나 전문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정기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넷째, 가족이 간병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문 간병인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전문 간병인에게는 환자를 돌보는데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 간병인은 환자 가족들에게 환자의 증상 정도에 따라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등 전문적인 안내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토론토 의대 교수 Jill Cameron는 가족을 돌봐주는 간병인에 대해 자신의 삶에 통제감이 높고 주변 가족들이 지지가 클수록 정신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이 정신적, 신체적 괴로움에 허덕이지 않는다면 다른 가족들에게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이는 환자도 느낄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항상 옆에 붙어있으면서 가족이 자신 때문에 우울해하고 불안한 마음을 참는 것을 보는 것보다, 좀 더 성숙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하는 위로일 수 있습니다. 가족의 입원은 큰 위기가 되지만, 직면한 어려움을 잘 극복해낼 방법을 의논하고 서로 버텨낼 수 있도록 균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인수 정신과 전문의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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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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