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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신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외로움 모멸감 슬픔 두려움 배신감 자괴감 실망 ...
지난 하루 간 위에 언급된 감정 중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우리는 흔히 이런 감정들을 '나쁜 감정' 혹은 '부정적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러한 감정은 느끼면 안 되는 '나쁜' 감정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떠한 감정에 좋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사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세상의 어떠한 개념까지 선악판단이나 가치판단을 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런 모든 감정들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놀이동산에 가 본적이 있을 겁니다. 놀이공원에서 입장권만 끊고, 이용권을 끊지 않는 것을 상상해 봅시다. 어떨까요? 뭐 그닥 재미도 없고 밋밋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용권을 끊고 롤러코스터에 탄다고 칩시다. 처음에는 롤러코스터가 올라가는 지루한 코스가 있지만 그 뒤로는 격렬하게 내려가고 회전하고 참 재밌습니다.

편의상 롤러코스터가 올라가는 과정을 부정적 감정, 내려가는 과정을 그 반대 감정에 비유해 봅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감도 없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없으면, 그 반대 극단에 있는 극한의 희열, 사랑, 쾌락, 포만, 자유로움 등의 감정을 만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놀이동산에 입장해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입장한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무, 밋밋함' 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유, 변화' 의 세계로 우리의 의지로 입장권을 끊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삶이란 놀이공원에 입장해 보니 무서운 것도 많고, 겁도 많아지지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쉬운 놀이기구 부터 어려운 놀이기구가 있지요. 우리는 모든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고, 입맛에 맞는 놀이기구를 탈 수도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탈 수 있는 기구가 느는 것처럼, 경험하는 현실이 다양해 질수록 느끼는 감정도 복잡미묘해지지요.

삶은 놀이공원, 감정은 놀이기구 입니다. 입장 해놓고 어트렉션 타지않는다면 입장권 날리는 것 이겠지요. 이런 경우도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삶이란 놀이동산에 입장은 했는데, 내가 탄 놀이기구는 너무 무료해서, 혹은 너무 두렵고 힘들어서, 중간에 하차하고 놀이동산을 나가버리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힘든 감정을 실컷느끼고 더는 못 버티고 스스로 삶을마감하는 경우겠지요.

이 경우는 안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불리우는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해소의 실마리라도 있다는 것이기에 온전히 느끼고, 계속 경험하다보면 반대의 날이 금방 옵니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올라가면 내려가는 때가 반드시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겁에 질려서, 혹은 무료해서 그 순간이 언제 시작될지 깨닫지못할 수 있지요.

요약하자면, 우리는 무의 상태에서 이런 희노애락을 느끼러 온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이라는 놀이동산에서 잘놀다가길,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며 감정들을 체험해 보길 바랍니다. 물론 너무 위험해서 꼭 타지 않아도 되는 기구들도 있지만요. 느끼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느끼는 것이 잘 느끼는 것일까요? 어떻게 놀아야 삶이란 놀이공원에서 본전을 뽑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우리는 너무나도 복잡한 현실 상황 때문에, 또는 요즘 계속 발달하며 우리를 연결해주는 인터넷 장치들 때문에 감정 알아차리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현실은 그렇다 치고 인터넷 때문에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는 게 무슨 말일지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SNS를 필두로 하는 인터넷 망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우리는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를 경험하려고 온 것인데, 개인에게 순간순간 전체를연결시켜 자아 개념을 약하게하고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희석시킵니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순간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고, 덜 인터넷 등 매체에 연결되며, 명상하기 등을 활용하여 내면의 감정까지 파고드는 방법이 유용할 것입니다.

감정을 파악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인정하기 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감정 이라는 것도 느낄 수있는 것이구요. 완전한 존재라면 감정 느끼지 않고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대하겠죠? 여기서 사랑으로 대한다는 말은 개체에 대해 아무 마음도 품지 않는다, 즉 '공'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인식할때, 우리의 감정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이 돈이 많아서 질투가 나, 나는 저 사람이 미워, 이러한 우리가 느끼기에 부끄럽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감정들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취로부터 오는 자만심, 쾌락 등도 물론이구요.

감정을 인정하면 감정을 말, 글, 동작 등으로 표현해봅니다. 정신과에서는 정신병리를 평가하는데 MSE(mental status exam)이라는 도구를 씁니다. 여기서 정신 병리 중에 감정표현불능(alexythymic)이라는 항목이 있는데요, 이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신 병리에 이 항목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또한 정신적으로 완전한 상태가 아님을 암시하겠지요. 따라서 감정을 느끼고,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감정 놀이 기구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일기쓰기, 나에게 편지쓰기, 화날 때 화가 났다고 상대방에게 말하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쌓였을 때는 옛이야기처럼 아무도 듣지 않는 갈대밭에서 소리라도 질러보는 것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감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우리의 삶의 소중한 요소입니다. 아무쪼록 이 소중한 친구를 잘 활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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