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진심 (5)

[정신의학신문 : 김재원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가끔 세상사는 뒤로,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_무관심 vs. 둔감

 

“너는 애가 왜 그렇게 표정이 없니?”

“너 같이 말이 없고 무표정한 애는 처음이야.”

“그렇게 말이 없는데 정신과 의사는 제대로 하겠어.”

지금도 말이 없지만 어려서는 더 말이 없었다. 말 없고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이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의 기억도 비슷할 것이다. 정신과 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한 선배도 있었는데 다행히 정신과 의사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해야 해서 어쩔 수 없는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나를 걱정한 선배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반응이 늦었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Zootopia>의 나무늘보를 떠올려보면 된다.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남들보다 몇 박자씩 느렸다. 무슨 사건이 생기면 아내는 그 직후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의 내 표정과 반응을 살핀다. 나의 감정 반응이 서서히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 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나의 둔감함과 무표정은 예민함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보상작용이다.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하게 반응할 나 자신이 피곤해서 일단 ‘부정’이나 ‘회피’의 방어 기제를 사용해 정보와 자극을 차단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천천히 단계적으로 받아들인다. 공포나 불안 제거의 행동치료법인 체계적 둔감법systematic desensitization을 무의식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둔감은 ‘무딘 감정이나 감각’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수많은 감정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는데, 둔감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담백한 정의는 처음이었다. 영어로 가장 가까운 말은 ‘insensitive(무감각한)’이다.

무관심은 ‘관심이나 흥미가 없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indifferent’나 ‘uninterested’를 사용한다. 정신과 수련을 시작하면서 배운 수많은 정신병리 중 기억에 더 많이 남는 몇 개 단어 중 하나가 무관심 indifferent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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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라면 다 알겠지만, 이 말을 좋은 뜻으로 쓰는 경우는 없다. “너는 왜 그렇게 indifferent하니(또는 apathetic하니)?”라는 말을 들으면 정신과 의사의 대부분은 움칫한다. 무관심하고 냉담할 뿐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기본 소양인 공감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처럼 무관심이나 무표정은 부끄럽게도 나를 규정짓는 몇 개의 키워드에 해당된다.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는 무표정이 디폴트 default임을 아이들도 안다. 내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아이들이 내 표정에서 감정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역력함을 언제나 깨닫는다.

 

“아빠, 디폴트 표정을 바꾸어보시면 안 돼요? 웃는 표정이면 좋겠는데요.”

 

그러면서 자기네 손으로 내 입꼬리를 올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핀잔처럼 항상 듣는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바꾸려고 애쓰는데 잘 안 되는 것은 그냥 포기하고 끌어안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위안할 뿐이다.

그래도 대인관계나 진료 현장에서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무표정은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예민함에 대한 방어 기제에 따라 습관처럼 자리 잡은 둔감함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둔감함이 쓸모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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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선택지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나에게 둔감함은 세상사에 휩쓸려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심리적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세상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행여나 내가 모르는 일이 생길까, 정확히는 모르고 지나가는 일로 내가 손해를 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매사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상일 중 내가 모르거나 놓쳐서 나중에 아쉽거나 후회할 일은 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남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며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누리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고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세상사의 유행과 변화에 둔감한 것을 너무 걱정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느릿느릿한 나무늘보의 삶, 살아보면 생각보다 괜찮다.

 

_ <<밥보다 진심>> 중 ‘나무늘보의 삶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는지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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