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감정적인 편인가, 이성적인 편인가? 뒤에 이어질 내용을 읽기 전에 곰곰이 고민하고 대답을 결정해보라. 분별이 어렵다면 직장 동료나 동네 이웃이 질문하는 상상을 해보아도 좋다.

물론 그때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선뜻 ‘나는 감정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어떠한 편인가 혼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경우라면 더욱더 그렇다. 일종의 편견 때문이 아닐까?

실제 의미와 별개로 우리나라에서 ‘감정적’이라는 말은 기분이나 감정에 잘 치우치고, 미성숙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이성적’이라는 말은 사리 분별을 잘하고, 논리적이며, 성숙하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퍼져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마음이 여리며 감정적이라는 말 또한 미성숙하다는 전제에서 기인한 편견으로 볼 수 있다. 남들보다 울음을 자주 터뜨리거나 눈물을 잘 흘리는 사람은 감정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스스로 감정적이라고 생각하더라도, 타인의 입을 통해 ‘너 되게 감정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감정’은 정말 ‘이성’에 비해 미성숙한 증표일까? 감정적인 것은 나쁜 것일까? 심리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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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자 Murray Bowen은 감정과 이성이 잘 분화되어 있을수록 성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 분화(Self-Differentiation)’는 자신의 사고와 정서를 분리할 수 있는 능력, 균형을 잘 맞추고 조화를 이루어 원활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정서적 반응만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본능적이며 무의식적인 방법이다.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가까우므로 감정에 압도되기도 쉽다. 화가 화를 부르는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할 경우 미성숙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만을 사용하는 것 즉, 자신의 정서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 또한 성숙하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신에게서 분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설명, 지적인 분석 등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를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라고 한다.

주지화가 오랫동안 지속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성만 사용하거나, 감성만 사용하는 것은 모두 성숙한 태도로 보기 어렵다. 우리는 감정적이기만 하거나 이성적이기만 할 수 없다. 객관적 사고와 주관적 정서를 구분해야 한다.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객관성과 자제력을 지니고 정서를 다룰 수 있는 것이 성숙한 심리적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와 싸우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사랑하는 친구와 싸우게 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복잡하고 벅찬 상황에서 감정을 표현할 때 이성의 틀에 담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약속을 잡을 때마다 네가 매번 늦게 오니까 나는 무시당하고 홀대받는 기분이 들어....... 그런데 고작 몇 분 늦은 걸로 예민하게 군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 화가 난다. 네가 나를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

이렇게 말한 후에 우는 것과 친구의 말을 들으며 감정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 처해있으니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기분이나 감정을 이성의 틀에 담아 주어야 ‘내 말이 마치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구나.’, ‘지금 상황이 저 애에게는 엄청 슬픈 일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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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는 삶을 살게 된다. Bowen은 ‘자기 분화’는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즉 노력한다면 성장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혹자는 감정을 반려견에, 이성을 그 반려견의 주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날뛰는 반려견이 가자는 대로 따라가거나 휩쓸리는 경우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때로는 주인을 공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주인이 반려견을 통제하려고 하면, 공격적 행동을 하거나 풀이 죽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뚝딱하고 서로에게 최고의 주인, 반려견이 될 수 없다. 주인과 반려견이 상호작용하며 각자 행복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처럼 이성과 감정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데에도 역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성급해하지 않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이성과 감정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장할 기회가 있다. 성장은 꼭 생물학적인 발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슬픔이라도 20대 때 느끼는 것과 50대 때 느끼는 것은 다르다. 또한 슬픔마다 얼마나, 어떻게, 어떤 이유로 슬픈가 하는 것도 다르다. 우리는 자꾸만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것만은 기억해야 한다. 이성과 감정은 완전히 상반되거나 별개의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이미 포함된 것이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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