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친한 사람을 다시 만나기 힘들어질 때 우리는 안타까워합니다. 옛날 같으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지게 되거나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다시 만나기 어려워질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별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에게는 애틋한 감정이 솟아납니다. 현대에 와서는 이동도 쉬워지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누군가와 만나기 힘들어지는 상황은 죽음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1967년 발표된 Holmes와 Rahe의 스트레스가 되는 인생 사건 목록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배우자의 죽음입니다. 성인의 경우 자신이 아프거나 다치는 것을 53점이라고 할 때 배우자의 죽음은 100점,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63점, 친구의 죽음은 37점의 고통으로 평가됩니다. 미성년의 경우에는 자신이 입원할 정도로 아픈 것이 58점일 때 부모의 죽음은 100점, 형제자매의 죽음은 68점, 친구의 죽음은 63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녀가 죽었을 때 느끼는 고통이 상대적으로 큰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어쨌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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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 1녀의 둘째인 저는 반년 전에 누나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누나는 만 39세에 갑자기 말기 위암을 진단받고 4년을 버텼지만 더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누나의 세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매형과 대학 과동기로 시작해서 이십대 후반에 결혼했으니 배우자인 매형은 정말 긴 세월을 함께 보낸 배우자를 잃으면서 동시에 아직 어린 세 자녀를 돌봐야 합니다. IMF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손주들을 챙겨주며 자주 만나길 기대하셨던 부모님에게는 이제 딸이 없습니다. 모두에게 슬픈 시간이었습니다.

막내가 자주 엄마를 보고 싶다고 얘기한답니다. 가족들은 아이를 달래주고 싶지만 들어줄 수 있는 어린이날 소원이 아닙니다. 형들에게 한 소리를 들으면 형들은 자신보다 몇 년을 엄마랑 더 보냈으니 더 낫지 않냐고 투정을 부린답니다. 한 살 위인 저희 아이도 사촌들을 만나고 와서 고모 생각이 나면 눈물을 보입니다. 제가 보던 영화를 흘끔 보더니 고모도 환생할 수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표현은 서툴지만 자기를 귀여워 해줬던 고모가 그리운가 봅니다.

수년간 마음의 준비를 해왔지만 그날이 되자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장례라는 절차를 통해 마음속에서도 고인을 떠나보냈지만 잘 추슬러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가끔 생각이 나면 그립습니다. 점차 고인이 없는 생활에 적응해갑니다. 기념일을 이용하여 가족이 모여 서로를 챙깁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았던 추억들도 꺼내봅니다. 혹시 너무 보고 싶어지지는 않을까 억누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은 그 마음대로, 즐거웠던 기억은 그것대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가족은 때 이른 누나의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여 가는 것 같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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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이 슬픔이 너무나 강렬하고, 죽음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자신이 대신 죽어야 한다고 느끼는 등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거나, 사회적 지지체계가 부족한 경우 적응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음을 준비할 시간이 없이 사고나 범죄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면 이런 위험이 더 커집니다.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젊고 건강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면 더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별 후 애도에 대해 치료를 하지 않는 쪽이었다면 현재는 장기간 이어지는 고통에 대해 진단명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진단과 상관없이 고통이 크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예방조치가 될 것입니다. 특히 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라면 그 충격은 더욱 클 것입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살 유족 서비스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억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불가능한 때도 있습니다. 혼자서라도 표현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써도 좋고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보며 감정이 해소되면 좋습니다. 함께 아는 사람이 없다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건강한 방식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약물치료도 도움이 됩니다. 사고로 동료를 잃은 대학원생, 코로나-19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외국인, 자살 사고의 지인 등 캠퍼스에서도 애도 과정이 힘들어 진료실을 찾아옵니다. 증상이 심하여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경우 약물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혼자서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5월호에 ‘다시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 – 사별과 애도’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는 연구를 합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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