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홍대 서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15년 가까이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20대입니다. 비정형우울증, 기분부전장애, 감정표현불능증, 쾌락불감증, PTSD의 증상이 혼재합니다. 병이라기보다 저의 성격이 되었습니다. '무성애자', '로봇 같다', '낙이 없어 보인다', '세상 다 산 사람 같다' 등의 얘기를 대학교 때까지 주변 친구들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현재는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 약, 상담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저의 경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우울제에는 반응이 없고 자살생각이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으니 치료 의지마저 사라지려 합니다. 여전히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생각납니다. 죽음에의 욕구와 이로 인해 반복되는 생각에 관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14년째 죽음을 꿈꿔왔습니다. '죽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온종일 머릿속에 맴돌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공확률이 높은 방법을 찾아보고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고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질긴 숨을 끊고 있는 그 순간부터 더는 숨을 쉬지 않아 온기 없는 시체가 되어가는 제 모습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정중앙을 찔려 관통한 칼이 꽂힌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새벽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거나 죽임당하는 내용의 꿈이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악몽, 두통, 이명, 우울 등의 증상은 평생 지속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수시로 떠오르는 자살 생각은 집중력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저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되짚어보면서 '많이 힘들었구나' 다독여보기도 하고, '아쉽지만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거야' 달래도 보고, '이런 생각은 현실을 회피하는 미성숙한 방법이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현재에 집중해' 되뇌며 채찍질을 해봐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조언대로 생각이 나면 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도 했는데 제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들이 마치 액자처럼 항상 걸려있는 느낌입니다. 꼭 해야만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하지 않았을 때 마음이 불편한 것처럼요.

 

저는 살면서 얻게 될 즐거움보다 고통의 크기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연적으로 숨이 멎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변의 작은 것에서부터 의미를 두려 해도 어떤 삶의 의미나 가치 따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봉사활동, 칭찬일기, 명상, 독서, 강연, 운동, 여행 등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죽음에의 욕구를 쉽게 충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살한 인간의 사후세계가 두렵습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매주 종교행사에 참석하면서 '자살하면 죽지도 못하고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나 봅니다. 아무리 관련 서적, 논문, 반박 근거, 임사체험 등의 자료를 분석해봐도 생전에는 사후세계가 허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쉬운 선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세월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14년째 반복되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홍대 서울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정신과 교과서에서 아직까지 질병과 성격장애를 명확하게 구별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의 감별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몇 년 이상을 비슷한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계신다면 이는 치료하면 사라지는 병의 영역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안고 가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괴로움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셔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자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통해 인생을 좀 더 편안하게 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면 생각이 경직되고, 조금만 내 뜻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어도 부러지거나 꺾일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뚜렷한 목표가 무조건 정해져야 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의미가 없거나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빠르게 지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아무리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나마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찾을 수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즐거운 일들, 아니면 적어도 나에게 괴로움은 주지 않으면서 의미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의미나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투약 중이신 약물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절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치료로 관해에 도달하지 않는 경우 이를 치료저항성 우울증이라고 부릅니다.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경우 우울증약이 아니라 조울증 및 조현병에 쓰이는 약제들인 기분 조절제 또는 항정신병 약물이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치료가 증상에 충분히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명백하므로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하에 약물 조절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과에서 가장 대표적인 치료 2가지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이고, 이외에 크지 않은 부분이지만 특정 환자군에는 꼭 필요한 다른 치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치료(ECT)는 정신과의 태동기부터 존재했던 고전적인 치료방법이지만, 여전히 치료가 잘되지 않는 조현병이나 우울증에서 효과적인 대안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명상과 마음챙김 요법은 동양의 방법론이 서구 정신의학에 큰 변화를 주고 있는 분야로서, 우울 증상 호전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면에서도 도움을 줍니다.

또 최면 치료는 대중에 알려진 것처럼 극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좋아 요즘도 임상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치료기법들에 대해 공부하고 나에게 맞는 치료를 찾고,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증상 호전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내과, 외과 의사들은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 진단되었을 때, 환자에게 이제는 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정신과는 좀 다른 것이, 같은 병이라도 증상의 성격이 다양하고 질병별로 정해진 치료법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는 그 환자의 괴로움을 줄이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환자가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역할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방법론,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시기를 기원합니다.

 

 

*  *  *
 

정신의학신문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상담 비용 50% 지원 및 검사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