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13)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쏴, 쏴!”
“빨리 눌러 버려!”
“휘둘러, 칼을 휘둘러!”
“수류탄 던져 버려, 수류탄!”
“폭탄을 설치해!”
“오케이, 죽었다!”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내뱉는 말들이다. 긴박하게 오가는 대화 내용은 전부 하이톤이다. 중간중간 거친 욕설도 마구 튀어나온다.

한 방송국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들어봤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라면을 먹고 곧바로 게임을 시작해요.”
“정말 잠깐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2~3시간이 금방 지났더라고요.”

한번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게임의 세계다. 유래 없는 코로나 사태로 거리 두기와 일시 멈춤이 일상생활이 되었지만, 게임의 영역에서만큼은 거리 두기도 일시 멈춤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출이 꺼려지면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과거에는 청소년들의 지나친 게임 몰입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으나 이제는 종일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과 주부들까지 게임의 쾌락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고 재미 삼아 잠깐 게임을 하는 것은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으나 이런 차원을 넘어서서 공부나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생겨날 정도로 시간만 나면 게임을 찾아 헤매는 게임 중독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골드버그는 1996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Ⅳ, 1994)』의 물질 중독 기준을 준거로 ‘인터넷 중독 장애(Internet Addiction Disorder)’라는 용어와 개념적 진단 준거를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인터넷 중독은 개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행위를 하려는 충동, 욕구,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는 행동장애로 충동조절장애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물질을 사용하는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금단과 내성, 사회적 또는 직업적 손상이 뒤따른다.

이후 2013년 출간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는 ‘인터넷 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라는 용어로 등재되었다. 현재 ‘추가 연구 필요’로 분류된 상태다. 아직 게임 중독에 대한 의학적 진단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통칭 게임 중독을 인터넷 중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게임 중독(Game Addict)이란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병적인 게임 과몰입 혹은 과잉의존이다. 게임 중독에 빠지면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생활습관이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되다 보니 항상 잠이 부족하고, 제때 식사하는 일도 잊어버리게 된다. 컴퓨터나 게임기와만 마주하고 있는 까닭에 대인 관계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 게임 문제가 다른 질환들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인해 보다 높은 자극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충동조절의 어려움 때문에 게임 중독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인해 의욕이 저하되거나 다른 관계에 소홀해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게임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어떠한 원인이든 게임에 중독되면 시간 개념이 모호해지고, 현실과 가상 세계를 혼돈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적응력이 하락하며, 가족 간에 갈등이 생김은 물론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에 쉽게 길들여질 수 있다.

 

오랜 시간 게임에 과도하게 몰두하면 우리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을지의대 신경정신과 구영진 교수 팀은 2008년 인터넷 중독 청소년을 대상으로 뇌신경 자극성 변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뇌를 PET(양전자방출 영상진단장치)로 촬영한 결과 시각 정보 처리의 활성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신경경로는 자극이 없을 경우 큰 폭으로 감소한다. 장기간 게임 등에 몰입하던 사람이 게임보다 덜 재미있는 걸 하게 되면 뇌에서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들의 전두엽 활성은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 연구에서 나오는 갈망 상태와 비슷했다.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 김상은 교수 팀 역시 2012년 인터넷 게임 중독자를 대상으로 PET를 이용해 대뇌 포도당 대사와 충동성을 분석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인터넷 게임 중독자는 대뇌에서 비정상적 포도당 대사 징후가 나타나고, 충동조절 물질인 도파민D2도 낮게 방출되는 것을 확인되었다. 인터넷 게임 중독자 역시 충동조절장애를 겪는 사람이나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환자와 동일한 형태의 뇌 구조 변화를 보인 것이다.

또한 오른쪽 안과 전두피질, 왼쪽 미상핵, 오른쪽 도회에서 정상 사용자에 비해 높은 대뇌 활동성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충동조절, 보상처리, 중독과 관련된 인지기능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대뇌 영역으로, 인터넷 게임에 과다하게 몰입할 경우 대뇌 포도당 대사 및 활동성과 연관되어 물질 남용, 행동중독 및 충동조절장애 등과 흡사한 뇌신경학적 기전을 보인 것이다.

 

이런 전문의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점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즉각적인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운동이나 미술, 음악 등 예술 활동을 할 경우 결과가 드러나거나 성취감을 맛보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많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게임은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쏘면 죽고 베면 쓰러진다. 즉시 점수가 나오고 승패가 결정되며 레벨이 올라간다. 이런 즉각적인 보상은 게임의 매력이다.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다.

둘째, 대리만족이다. 현실 세계는 제약이 많다. 안 되는 것, 하면 큰일 나는 것,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다. 할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이나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은 이루기 어렵고 하려 해도 만만치 않다. 반면 게임의 세계에는 제약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대신해주는 분신, 즉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의 공간에서 나만의 제국을 만들 수 있다.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가상 세계에서의 대리만족, 치명적 매력이다.

셋째, 게임을 모르면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게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어제 무슨 게임을 했는지, 새로 나온 게임은 무엇인지, 높은 점수를 받고 레벨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활발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공부만 열심히 하느라 게임을 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가서도 게임이 아니면 할 게 없다.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문화다.

 

요즘은 텔레비전에서도 게임 신제품 광고를 많이 한다. 게임업체에서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느라 엄청난 돈을 투자한다. 게임 산업은 미래의 유망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사행심을 자극하는 게임만 아니라면 게임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게임을 잠깐 즐기는 오락이 아닌 삶 자체로 여긴다든지, 자신의 정체성으로 혼동한다든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중독 상태가 문제인 것이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 게임 중독자가 왜 게임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게임 중독 상태에 이르면 대부분 부모들은 화부터 낸다.

“너, 또 게임했어? 내가 하라고 했어, 하지 말라고 했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매일 게임에 빠져 사는 거야?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런 말과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잔소리를 듣고 잘못을 뉘우친 뒤 게임을 멀리하는 자녀는 한 명도 없다. 관계만 악화될 뿐이다.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가 있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부모의 문제다. 자녀에게 많은 사랑을 주지 않았거나 관심과 배려를 베풀지 않았거나 혼자 있도록 방치했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살 길을 찾아 게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자녀의 의지로 거기서 빠져나오라고만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부부가 직장에 나가거나 생업으로 바쁠 경우, 결손 가정으로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일 경우,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 홀로 방치될 가능성이 많다. 엄마 아빠가 없는 쓸쓸한 집에서 아이가 기댈 곳은 컴퓨터밖에 없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아이를 책임지는 어른들이 사랑과 관심, 배려와 존중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대화하는 기회를 자주 가진다면 아이의 관심이 게임으로부터 더 따뜻하고 가치 있는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둘째, 부모와 자녀 간에 긴밀히 대화하고 토론해서 서로 동의하는 생활 계획표를 짜고, 이에 준해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정한다. 하루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적당하다. 어떤 게임을 하는지 부모가 알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의 콘텐츠가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사행심을 조장하는 것일 경우 상세한 설명을 통해 건전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도 자녀가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 미리 공부해서 알아두는 게 좋다.

컴퓨터를 거실로 옮겨두거나 아이가 게임을 할 때 방문을 열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부모가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듯 하지 말고 아이와 대화해서 합의 하에 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게임 중독자가 자녀가 아닌 배우자나 성인일 경우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셋째, 관심을 게임이 아닌 다른 데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등산, 낚시, 캠핑 같은 게 좋은 예다. 애정은 함께하는 시간에 비례한다. 손을 잡고 산에 오르고, 같이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고, 텐트 속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이 쌓인다. 기계와 대면해 자극적인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다운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몸을 움직이면서 정신을 맑게 하면 골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느라 피폐해진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더라도 꾸준히 지속해서 관심사를 찾아나가면 길이 보일 것이다.

 

2019년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준비에 나설 방침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게임 중독을 ‘다른 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일상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생겨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경우’로 정의한다. 게임에 대한 통제를 잃은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되면 게임 중독이 명확하지만, 증상이 심각하면 이보다 짧은 기간에도 중독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권고안이어서 게임 중독을 실제 병으로 규정할지는 개별 국가에서 정하게 된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려면 의료계와 게임 업체들을 비롯한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하는 건 시대적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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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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