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의 (12)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예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요즘과 확연히 다른 광경 하나를 볼 수 있다. 어디서든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다. 시내버스 안에서도 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웠고, 기차 안에서도 편안하게 담배를 피워 물었으며, 극장 안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인파가 넘치는 사거리 다방 안에는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실내가 안개 낀 듯 뿌열 때가 많았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의 풍경이 이랬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담배를 피우지 말라느니, 담뱃불 좀 끄라느니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성인 남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일종의 권리였고 하나의 상징이었다. 권리란 남자를 위한 담배 피울 권리를 말하고 상징이란 남성 우월주의 사회를 나타내는 상징을 말한다. 간접흡연의 괴로움은 인정되지도 고려되지도 않았다.

이렇듯 담배에 관대한 문화였지만, 여성 흡연에는 전혀 관대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시내버스나 기차나 극장이나 다방 안에서 절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법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관습이 그랬다는 이야기다. 여성들은 화장실이나 뒷골목 혹은 자기 방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야 했다. 그러다 혹시라도 들키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봉변을 당하든가 본인은 물론 부모를 포함해 집안 식구와 조상들까지 싸잡아서 교양 없고 본데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이른바 마초(macho, 스페인어로 본래 ‘남자’라는 뜻이었으나, 근거 없이 여성을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여성 차별주의자나 남성 우월주의자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확대됨)의 시대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에는 두 가지 상반된 장면이 일상이 되었다. 하나는 떳떳하게 담배를 피울 공간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시내버스, 기차, 극장, 다방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아파트든 사무실이든 건물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기 어렵다. 밖이라도 사람이 많이 오가거나 모이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눈치 봐가며 혹은 매우 불편하게 담배를 피워야 한다. 공공 도서관 야외 한쪽에는 자그마한 컨테이너가 들어선 곳이 많다. 흡연실이다. 공항에도 기차역에도 이런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연기를 뿜어대는 모습을 보면 왠지 측은하게 느껴진다.

또 하나의 장면은 여성 흡연자들의 모습이다. 이제 여성들은 화장실이나 뒷골목 또는 자기 방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된다. 어디서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점점 여성 흡연에 관대해지다가 이제는 서양처럼 아무도 신경 쓰거나 간섭하지 않는 문화가 된 것이다. 합법적으로 흡연이 가능한 곳,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장소라면 얼마든지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면서 여성 흡연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은 흡연율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남성 흡연율은 계속 감소하는 데 반해 여성 흡연율은 갈수록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18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남성 흡연율은 1998년 66.3%에 달했던 것이 2018년 36.7%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년 만에 절반가량 감소한 것이다. 한편 여성 흡연율은 1998년 6.5%였으나 2018년 7.5%로 늘어났다. 증가 폭이 크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20~40대 젊은 여성의 흡연율이 20년간 약 두 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남성들은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아예 담배를 멀리하거나 나중에라도 금연하려는 사람들이 느는 반면,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느슨해진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쉽게 흡연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담배 속에 포함된 니코틴 때문에 생기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증상을 ‘니코틴 중독(Nicotine Dependency)’이라고 한다. 니코틴 성분에 의해 급성 또는 만성의 신체 증상이 발생하는 것을 가리킨다. 급성중독은 처음 흡연하거나 우연히 담배 연기를 삼켰을 때 발생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두통, 오심, 구토, 설사, 혼수, 경련 등이 있다. 만성중독은 오랜 기간 꾸준히 흡연한 결과로 발생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만성 인후염과 기관지염, 부정맥, 혈압 상승, 협심증, 식욕부진, 소화 불량 등이 있다. 니코틴의 주요 섭취 경로는 직간접적인 흡연이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면 니코틴이 혈관을 통해 뇌에 도달하여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활성화함으로써 쾌감과 긍정적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도파민은 행복 호르몬의 일종으로 뇌에서 쾌락을 담당하는 쾌락 중추의 분비를 촉진해 쾌감을 유발하는 강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쾌락 중추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30분이나 걸리는 데 비해 흡연의 경우는 단 7초 만에 쾌락 중추에 도달한다고 한다. 흡연과 동시에 만족감과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흡연을 통해 한 번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계속해서 흡연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 그렇기에 맛을 들이면 좀처럼 끊기 힘든 강한 중독성을 갖는 게 흡연이다.

이런 담배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흡연이 빈번한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는 정신질환자의 41%가량이 흡연을 하고 있다는 통계가 언급된 바 있다. 니코틴은 적당히 효과적인 기분 안정제 역할을 하면서 차분해지는 느낌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다. 담배를 갈망할 때 동반되는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니코틴은 불안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흡연이 정신질환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스트레스나 정신건강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니코틴 중독을 포함한 모든 중독 현상은 뇌 질환으로 파악하는 게 옳다. 개인의 기질적 문제나 성향 때문이 아니다. 신경전달물질이 정상적인 조절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병적인 상태로 바뀐 것이다. 이런 인식에 따라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예방 및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금연을 실천하려고 할 경우, 당연히 금단 증상이 따른다. 불쾌하거나 우울한 기분, 불면증, 자극 과민성, 좌절감, 분노, 불안, 집중력 장애, 안절부절못함, 심장 박동수 감소, 식욕 증가 또는 체중 증가 등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금연에 장애가 될 수는 있으나 이는 일시적일 뿐, 길게 보면 금연을 통한 이익은 너무도 명백하다. 흡연에 관해 메타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우던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금연 이후 금연 전보다 우울, 불안 등의 정신건강 척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효과적인 금연 방법은 워낙 많이 알려졌지만, 대표적인 건 대략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이미 효과가 검증된 금연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일명 니코틴 대체요법이다. 패치를 붙이거나 담배를 대체할 만한 은단, 껌, 사탕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 방법이다.

둘째는 금연 클리닉 등을 방문해 본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개인에게 맞는 금연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각종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셋째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을 때 CT 촬영을 통해 담배로 인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는 국가사업을 통해 예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촬영할 수 있다.

넷째는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연이 어려울 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한 후 의사의 처방에 따라 효과가 입증된 바레니클린과 부프로피온 등 금연치료보조제를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더불어 심리 치료와 인지 치료 등을 병행하면 효과적이다.

다섯째는 본인의 강한 의지와 실행력 그리고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와 치료 방법이 있다고 해도 본인에게 금연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금연은 나를 위해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한 금연에 이르는 중간 단계로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얼마 전 ‘네이처’의 자매 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이기헌 교수 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는데, 이에 따르면 궐련과 전자담배를 함께 사용하는 흡연자 집단의 심혈관 질환 위험 요인이 궐련만 피우는 흡연자의 그것보다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궐련과 전자담배를 함께 사용하는 흡연자는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비흡연자보다 2.79배, 일반 흡연자보다 1.57배 높았다. 특히 대사증후군 판단 요소인 복부비만, 고중성지방혈증, 저HDL콜레스테롤혈증 수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 경험률도 높게 나타났다.

 

남성들은 대개 군대에 가서 담배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담배를 피우면 고통스럽지 않고, 힘겨운 시간이 빨리 지날 것 같아서다. 여성들 역시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각종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등에 시달리다 보니 정서적 출구로 흡연을 선택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청소년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담배를 피우면 어른이 된 것 같아서 흡연의 유혹에 빠진다. 어른들이 피우지 말라고 하니까 일부러 반항하기 위해 피우는 아이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담배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며, 스트레스와 고민을 일거에 날려주는 청량제이자 치료제다.

하지만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담배는 나를 질병과 죽음으로 인도하며, 내 가족을 불행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악마의 약, 사탄의 유혹일 뿐이다. 끊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일피일하는 사이 연기처럼 내 청춘도 희망도 훨훨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카리스마 넘치는 전설적인 미국 배우 율 브리너는 대단한 골초였다. 하루에 담배를 한두 갑씩은 꼭 피웠다고 한다. 결국은 말년에 폐암에 걸려 힘겨운 투병을 하면서부터 금연 홍보 운동에 나섰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이제 떠나지만, 여러분께 이 말만은 해야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만은 절대로 피우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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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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