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로건>의 2029년. 세리브라(Cerebra)를 쓰고 전 세계의 정신과 공명하던 프로페서 X의 위엄은 더 이상 온데간데 없다. 간질 발작과 치매에 시달리며 폐기된 물탱크 속에서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찰스 자비에라는 초라한 늙은이만이 누워있다. 그 옆을 지키는 울버린 역시 사정이 다를 바는 없다. 섬이 통째로 날아가는 염력에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참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야수같은 발톱을 찔러 넣던 다크히어로 울버린은 없다. 제대로 뽑혀나오지도 않는 발톱을 간신히 뽑아내며 피 흘리는 제임스 하울릿(로건)이 신음하고 있을 뿐이다.

 

진시황마저 피해가지 못한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고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불가피의 숙명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 시간만큼, 단 한건의 반례도 없이 차곡차곡 누적되고 있는 수많은 죽음들이 그 필연성을 귀납한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한 발짝 한 발짝씩 걸어가고 있다.

게다가 얄궂게도 죽음은 자신에게로 찾아오는 길을 점진적이고도 고통스러운 과정과 함께 펼쳐두고 있다. 누구나 ‘죽어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화’라 불리는 죽음으로의 길 또한 죽음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과정이다. 황제에게도 노예에게도, 천재에게도 천치에게도, 몸속이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진 힐링팩터의 소유자에게도 늙어간다는 ‘죽음으로의 길’은 비껴가지 않는다.

 

사진 시지푸스는 신의 노여움을 사 크고 무거운 돌을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이다.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 알베르 카뮈 출처 : wikimedia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과거의 나에 대한 상실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모두 노화라는 트라우마를 겪어가고 있다. 늙어가는 과정은 상실해가는 과정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내려놓음’을 마주하기 위해 두 팔에 안아든 모든 것을 하나씩 내려놓아가는 점진적인 과정이다.

사랑하던 사람들. 아끼던 재물. 넘치던 근력. 명석하던 두뇌와 기억력. 탄력 있던 회복력. 시력과 청력. 저작에서 소화, 배설까지. 노화는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간다. 심지어는 추억과 감정마저 상실케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과정이 받아들일 수 없이 너무나 빨리 진행되어 분노와 불안만이 부글거릴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완만히 차분히 하나씩 잃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두가 상실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트라우마를 밀어내야 하는 시지푸스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로건>에서 상실에 신음하는 것은 비단 스크린의 등장인물들만이 아니다. 초라하기 짝이 없게 늙어버린 울버린과, 프로페서 X를 바라보는 관객들 또한, 객석에서 못지않게 씁쓸한 상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로건과 찰스의 빛나던 전성기의 활약을 지켜봤던 관객들은 위풍당당한 영웅의 고독하고도 비참한 말로에서 그들에게 외쳤던 과거의 환호를 아프게 상실한다. 아직 녹슬지 않은 발톱으로 잔인하게 적들을 도륙하는 로건의 모습에서, 발작만으로도 수백명을 옥죄는 찰스의 위력에서 그들의 찬란했던 과거에 대해 변명하려 애쓰지만, 결국 이길 수 없는 과거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만다. 놓아주어야만 하는 상실의 아픔을 절감한다.

 

노화는 모든 것을 상실해가는 과정이지만, 노년기의 가장 핵심적인 상실은 ‘자기 대상(Self Object)’의 상실이다.

유아는 태어나면서 모든 욕구와 추동을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일차성 자기애를 보인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위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아는 점차 성장하고, 자기중심적 세계에서 맺어진 환상적 관계들이 깨어지면서, 욕구와 추동의 대상을 외부의 객체로 돌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아기의 일차성 자기애가 충분하게 충족되지 못하여 내면의 대상이 부족해진 경우, 유아의 자아감과 정체성의 일부는 외부의 객체(Object)들로 자리잡게 된다.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닌 외부의 시선, 타자의 추동이 주체의 정체감(Self)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조금씩 자기 대상을 지니고 있다. 사실 자신의 지위, 능력, 재물, 배경, 인간관계 등등의 자기대상들이 깡그리 없어진다면 초라한 자신만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느끼고 있다. “그런 것 따위 없어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 라고 외칠 자신감만큼이나 그 외침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한다. 우리의 자존감이란 것은 사실, 진정한 의미의 오롯한 자존감와, 자기 대상이 제공해주는 객체로서의 자존감이 한데 뒤엉긴 시루떡 같은 것이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들로부터 자기 대상을 빼앗아 간다. 우리는 하나 둘씩 자기감을 이루고 있던 객체들을 잃어가며 자존감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상실은 극렬한 분노-자기애적 격노(Narcissistic rage)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격노는 보다 미성숙한 자기애로 스스로를 재무장시킨다. 노년기에 이르러, 다시 유아의 일차성 자기애로 퇴행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과 폭력성으로 이리저리 방황하는 로건의 눈빛이, 이제 막 세상에 던져져 자기 밖에 모르는 로라의 눈빛과 사뭇 닮아 있듯 말이다. 원초적이고 미성숙한 자기애로 갈 곳을 잃은 두 눈빛은 서로 필연 속에 맞닿아 있다.

 

마블의 히어로들이 유발하는 일차원적인 동경심은 비단 미국식 영웅주의뿐이 아닌, 스스로의 성취로 자긍심이 들끓던 모든 가슴에 불을 당겼다.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엎는 초인적인 힘으로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에서 나쁜 놈들을 무찌르는 슈퍼 히어로들은 8,90년대의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려온 우리나라의 영웅적 자존감을 대변하는 자기대상으로 역할하기에도 충분했다. 외면적 성장에 맹목적이었던 만큼 굶주렸던 가슴을 채워줄 자기대상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와 아베, 두테르테의 세상에서 울버린은 피흘리며 신음한다. 구멍난 물탱크에 누운 프로페서 X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어쩌면, 자기대상의 상실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로건은 복제된 자신의 젊음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지만 이겨낼 수 없다. 젊음의 상실에 대한 격노는 과거와 하염없이 씨름하지만 넘어질 수밖에 없다.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출구가 없는 격노는 갈 곳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해답을 알고 있다. 피 튀기는 로건의 싸움을 종결한 것은 다름아닌 로라이다. 새로운 울버린. 엑스맨의 새로운 탄생. 늙어 간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은 상실한다기 보다 넘겨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죽음이 있기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대. 역사는 새로운 세대의 거듭으로 굴곡지는 마디들로 이루어져 있다. 상실은 새로운 시작의 씨앗을 품고 있다.

 

트라우마의 온전한 치료는 애도(Mourning)이다. 격노도, 불안도, 우울도 대상의 상실을 되돌리지 못한다. 상실을 마음 속 깊이 슬퍼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애도의 순간에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있다.

노년이라는 시기의 트라우마 역시, 죽음에 대한 진심어린 애도만이 새로운 세대로의 부활의 씨앗을 움틀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다크히어로 울버린의 무덤에 세워진 묘비에서 우리가 보았던 그것처럼 말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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