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다섯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사진 개그콘서트 '다중이' KBS

 

주말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개그맨 박성호가 연기한 ‘다중이’다. ‘다중이’는 상반된 감정과 성격, 말투,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다중이’가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혹은 다중 인격 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많은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소설 <지킬 앤 하이드(Jekyll and Hyde)>,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드라마 <킬미힐미> 등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 관한 내용이다.

 

식스센스의 샤말란 감독이 최근에 내놓은 신작 <23 아이덴티티> 또한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영화의 주제다. 영화는 23가지의 인격을 가진 주인공이 지금까지 등장한 적 없는 24번째 인격인 비스트의 지시로 10대 소녀 3명을 납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각의 인격들은 방 안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주도적인 성격을 가진 인격인 배리에 의해 '빛', 즉 현실에 드러나는 자아로 정해진다.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배리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플레처 박사에게 오랜 기간 동안 상담 치료를 받아 왔는데, 관음증의 정신 병리를 가진 인격인 데니스의 등장으로 위험을 느끼고 응급 상담 요청 이메일을 수차례 보낸다. 데니스는 자신의 등장을 플레처 박사가 알아차릴까 두려워 배리의 모습을 모방하여 진료실에 찾아간다. 하지만 배리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박사는 상담을 하러 온 인물이 배리가 아님을 알아차린다. 영화에서 플레처 박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환자가 한 인격에서 다른 인격으로 변화할 때 성격뿐만 아니라 신체적 특성, 예를 들면 생리적 현상까지 바뀔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학회에 발표한다. 당뇨를 가진 인격은 시간에 맞춰 인슐린 주사를 맞고, 비스트로 변한 인격이 인간을 초월한 신체 움직임을 보이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면서 이 영화의 스토리를 받쳐주는 중심 이론이 된다. 영화 속에서도 많은 질문이 쏟아졌듯 실제로도 이 부분은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신 질환이고, 따라서 발병률과 유병률은 추정하기 어려우나 한 연구에 의하면 일반 인구 중 1~1.5%가 평생 중 이 질환을 경험한다고 한다. 대개 처음 증상이 나타난 후 5~10년 뒤에 진단을 받게 되며, 문화에 따라 빙의(possession) 현상으로 간과되어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기도 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해리성 정체감 장애 진단받는 비율이 5~9배 높다고 한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체로 어린 시절에 받은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해리성 정체감 장애 환자의 86%가 성적인 학대, 75%는 신체적 학대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3 아이덴티티>의 주인공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환자는 학대나 외상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피하고자 해리(Dissociation)의 방어기제 (Defense mechanism)를 이용하여 여러 인격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된 치료 방법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Psychoanalytic psychotherapy),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 최면치료(Hypnotherapy) 등을 통해 여러 인격을 통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응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영화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플레처 박사가 배리의 위험을 직감하고 배리의 거주지에 찾아가는 장면이다. 이 행동은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지켜야 하는, 두 당사자 간의 경계를 어기는 행동이고 (Boundary violation), 경계를 침범하는 행동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위험을 초래한다. 따라서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훌륭히 마친 의사는 플레처 박사처럼 동정심에 이끌려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샤말란 감독의 대표작, <식스 센스>에 비해 <23 아이덴티티>는 영화 구성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동일한 소재의 작품성이 높은 영화를 원한다면 <아이덴티티> 혹은 <프라이멀 피어>를 추천한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 대한 조금 더 쉽고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실화를 생생하게 글로 적은 <빌리 밀리건>을 권한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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