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진부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철학적이거나 사변적인 의미를 여기에 부여하는 작업은 우리를 실의에 빠뜨리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데 그것은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라는 대 명제 속에 인간의 속성이나 원성을 규정하는 것은 갑갑하기까지 하다. 신본주의에서는 인간을 원죄를 지닌 자로 보았으나 불쌍하므로 구원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허락하였다. 인본주의적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율적이고 스스로 지향적이며 창조적인 개체로서 기능한다는 입장이 주다. 어느 쪽에서든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말이다.  

Abraham Maslow는 인간이 자기실현의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 존재이며 본래 선하다고 주장하였다. 욕구단계설을 제시하여 인간의 욕구가 순차적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가장 아래에 생리적인 욕구, 그 위에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감을 위한 욕구, 자존심에 대한 욕구,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로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자기 실현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What a man can be, he must be’, 누군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최종 욕구이자 최종 삶의 목표라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과 고뇌가 눈물겹더라도 거기에 의미가 충만한 이유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힘겹다. 어떤 순간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 다음에 또 다른 경쟁과 갈등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지 않으면 도태되고, 잊혀진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목적지 없이 유랑하는 배처럼 바짝 말라 있을 뿐이다. 모두가 모두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지만, 모두가 모두를 차가운 시선으로 흘기기도 한다. 내가 그처럼 패배자가 될 수 있으나 그렇게 되고싶지는 않은, 수많은 감정선 중 두려움과 적개심의 어느 한 지점쯤 되려나. 성공과 실패는 한끗 차이인지 아니면 우주만큼 넓은 차이라서 헤아리기도 어려운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내가 되어야 하는 것. 그러기 위해 치러야 하는 수많은 노력과 고난들, 어쩌면 다른 이들의 희생까지 고려하자면 자기실현이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무언가가 되지 못한 자는 패배한 자이며 잊혀진다. 행여 무언가 될 수 있었을지라도 이런 저런 압력과 어려움 때문에 자기실현을 이루지 못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런 패배자에게도 사랑과 구원을 주고자 하는 신본주의적 가치가 오히려 고귀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차병원 교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
한양대학교 뇌유전체의학(자폐) 석사
KAIST 뇌유전체의학(자폐, 조현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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