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AP통신은 익명의 프랑스 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번 테러를 벨기에 브뤼셀 인근 몰렌비크 출신의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배후 조종했다’고 16일 보도했다. 그는 치밀하면서도 잔악무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시오패스라고 불리는 바타클랑극장 테러범들을 살펴보면 모두 악마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중 한 명인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이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으로 파리 인근 사르트르에서 최근까지 거주했다. 이웃 주민들은 ‘상냥하고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증언했다.(많은 사이코패스들이 겉으로 사회적인 미소를 잘 보이기는 한다.) 어떻게 이들은 목숨을 걸고 테러를 할 수 있을까?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는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으로 본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이 없고, 타인에 대한 공감, 동정심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소시오패스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회적인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행동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는 사이코패스와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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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관계이론을 살펴보면 클라인은 프로이드가 말한 죽음의 본능과 관련된 원초적인 공포를 생후 몇 달 이내에 누구나 경험한다고 하였다. 아이는 이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 자아 분열, 투사, 함입을 반복하며 편집 분열 위상, 우울 위상의 단계를 거친다. 편집-분열 위상은 쉽게 말해, 타인이 자기를 해칠까봐 걱정하는 것이고, 조금 더 성숙함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우울 위상은 자기가 타인을 해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때 죄의식이 아이의 감정생활의 특징적 부분이 되며 배상을 함으로써 이 죄의식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내용이 조금 어렵다. 자세한 설명은 다른 기사에서 하겠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과 관련된 원초적이며 극복하기 힘든 거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타인이 자기를 해칠까’, ‘자기가 타인을 해칠까’하는 불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초적인 불안이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선이 되는 것이다.

자살폭탄테러는 이 최소한의 안전선을 넘어서는 것이다. 어떻게 이들은 죽음과 관련된 원초적인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을 살펴보면 아이의 유전인자 속에는 ‘말 잘 듣는 아이가 살아남는다’는 내용이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애야 절벽은 위험하니까 오르지 마라’ ‘애야 깊은 물은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마라’라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했을 때 이 말을 듣고 따르는 아이는 이 말을 듣고 따르지 않는 아이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 자신을 보살펴 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살아남아서 유전자를 남길 확률이 더 높다. ‘아이가 말을 잘 듣는다’는 말은 어머니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 논리적으로 절벽에 가면 떨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깊은 물에 가면 빠져죽을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에 의해 논리가 형성되기 전까지 자신을 보살펴 주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각인 시킨다는 것이다.

아이가 이성의 힘을 갖추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전, 부모로부터의 가르침으로 종교는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으로 수용되고 각인되어 버린다. 각인된 종교는 무서워진다. 특히 유일신 사상은 더욱 그러하다. 유일신 사상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의 신이 옳고 다른 신은 부정되고 배척된다. 유일신을 믿는 이들은 신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 교리의 많은 가르침이 그러한 행동을 숭배한다. 사랑을 알려야 할 교리의 가르침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살폭탄테러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내고 있는 종교 전쟁은 이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수용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신 사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종교 전쟁은 현 시대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신뢰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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