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세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사진 그린나래미디어(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2009년 7월 영국에서 새로운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6월 25일 자택에서 프로포폴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다. 20세기 대표 배우였던 마릴린 먼로 또한 약물 중독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국내외의 많은 유명인들은 약물 중독으로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이로 인해 사망하기도 한다.

 

‘My funny valentine’, ‘I fall in love too easily’ 등 편안하면서도 우수가 묻어나는 명곡을 남긴 재즈 아티스트, 쳇 베이커(Chet Baker) 또한 평생 마약의 유혹에 고통 받다가 안타깝게 사망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드라마 같은 삶이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라는 제목으로 2015년에 영화화 되었다.

 

쳇 베이커는 1950년대 쿨 재즈를 대표하는 트럼펫 연주자로 뛰어난 연주와 잘생긴 외모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의 라이벌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에 대한 부담감으로 헤로인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후 그의 인생은 돌아갈 수 없는 낭떠러지 길을 걷기 시작한다. 쳇 베이커는 약물에 중독되면서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지고 삶은 엉망이 되어버린다. 영화사의 도움으로 재기를 노려보지만 약값을 제때 갚지 못하여 마약 판매상이 고용한 괴한들에게 폭행을 당해 입술이 찢어지고 앞니가 부러진다. 그는 앞니가 부러져 트럼펫으로 기본적인 음조차 내지 못하고 절망한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주)

 

모든 것을 잃은 이 순간, 쳇 베이커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영화에서 그는 가상의 인물인 흑인 배우 제인을 만나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도움과 배려로 재기를 시작한다. 그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알아본 레코드사의 지원과 경찰의 엄격한 감시 속에 약물의 유혹에서 점차 벗어난다. 그리고 부러진 앞니 사이에 틀니를 끼고 재즈사에 영원히 남을 명곡들을 녹음한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여 많은 앨범을 내고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재즈계에서도 다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음악성이 최고에 도달했을 때, 쳇 베이커는 그의 평생의 라이벌인 마일스 데이비스와 기라성 같은 재즈의 거장 앞에서 자신을 증명할 연주를 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재기의 시작 때부터 항상 함께 했던 제인은 그녀의 오디션으로 인해 그와 함께 할 수 없게 된다. 공연을 앞둔 긴장된 순간, 쳇 베이커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음 하나하나에 흠뻑 젖는 음악을 통해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한 재즈 거장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나 정작 사랑하는 제인은 실망하고 그를 떠난다. 그리고 쳇 베이커는 다시 마약의 삶을 살게 되고 유럽을 떠돌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자살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다.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들은 왜 물질 중독에 쉽게 빠지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 수많은 대중의 인기를 받는 스타들은 무아지경, 황홀감을 경험한다. 극한의 쾌감을 경험은 이들은 이를 잊지 못하고 비슷한 느낌을 인위적으로 줄 수 있는 약물에 탐닉하게 된다. 두 번째로 예술가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인기와 명성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또한 한정된 대중의 관심을 두고 경쟁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심한 피로감이 생긴다. 이러한 불안과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물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마약류로 분류되어 있는 마리화나, 코카인, 암페타민, 엑스터시, LSD 등은 뇌에 영향을 주어 의식이나 마음에 해를 끼치는 물질 (Substance)이다. 물질은 뇌에서 보상 체계 (Reward system)와 관련하여 도파민성 뉴런을 통해 복측피개구 (ventral tegmental area)에서 측중격핵 (Nucleus accumbens)로 투사된다. 물질에 중독되면 뇌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분과 기억, 판단, 인격, 행동, 사회 및 직업적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중독 치료에는 약물 치료와 함께 개인정신치료가 이용된다. 일부 환자들은 물질 중독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로 복귀하기도 하지만, 많은 수의 환자들은 치명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약물을 한다. 쳇 베이커 역시 약물 재활 치료에 부분적으로 성공했으나 결정적인 순간 약물의 유혹에 이끌려 다시 주사기를 들었다. 물질 사용 장애가 만성적이고 재발률이 높은 이유는 뇌의 생화학적 구성이 점차 바뀌고 결국 구조적 형태가 변형되기 때문이다.

 

물질 중독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무엇일까? 어리석은 답변이지만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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