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위대한 음악, 음악가 그리고 정신 의학 3.

 

"꿈속에서 모든 원소들이 적절히 배치된 표가 보였습니다.
일어나자 그걸 종이에다 옮겨 적었지요."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1713년의 어느 날 밤, 쥬세페 타르티니 Giuseppe Tartini는 기이한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악마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악마는 그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것저것 시켜보던 타르티니는 이윽고 악마의 바이올린 실력을 가늠해 보기위해 바이올린을 건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악마가 연주하는 곡이 몹시 아름다운데다 솜씨 또한 우아하면서 정교했기 때문입니다. 잠에서 깬 그는 꿈에서 들었던 곡을 재현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잡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악마의 트릴 Violin Sonata in G minor, Il trillo del diavolo' 입니다. '악마의 트릴'은 타르티니가 남긴 곡들 가운데 손꼽히는 것이지만, 그는 내심 만족스럽지 않았나 봅니다. 꿈속의 음악에 비하면 너무 조잡한 나머지 악기를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고백하니까요.


    

"Tartini's Dream" by Louis-Léopold Boilly (1761-1845). Illustration of the legend behind Giuseppe Tartini's "Devil's Trill Sonata".

 

꿈속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음악은 꽤나 흔합니다. 스트라빈스키  Stravinsky는 꿈결에 들은 집시 여인의 연주를 '병사의 이야기 L'Histoire du Soldat' 속 '작은 연주회 Petit concert'라는 곡에 끼워 넣었습니다.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나 폴리스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는 한밤중에 일어나 급하게 기억해낸 멜로디를 차용한 것이라 합니다. 비틀즈 Beatles의 'Let it be'나 존 레넌의 '#9 Dream' 역시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비단 음악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원소를 배열하는 방법을 고심하던 멘델레예프 Mendeleev는 꿈속에서 주기율표를 목격하였습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오토 뢰비 Otto Loewi는 꿈속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화학적 시냅스의 존재를 증명하였고, 아우구스트 케쿨레 August Kekulé는 고리모양의 뱀 꿈을 꾼 후 벤젠의 분자 구조를 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정말 꿈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어 꿈꾼 이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내려주는 것일까요?
 
 고민거리가 있을 때 마음이 초조해져 밤새 뒤척인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지는데,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뜬 눈으로 지새워 보지만 성과 없이 날은 밝아 옵니다. 


 어려운 문제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각성 상태가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각성이 과도해질 경우 참신한 생각은 나타나기 어려워집니다. 많은 연구들은 오히려 나른하게 이완된 기분을 느낄 때 저절로, 자유롭게 연상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1970년대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로, 수면에 대해 연구한 앨런 홉슨 Allan Hobson은 뇌의 아랫부분에서 올라오는 신경전달물질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각성시와 비교해 REM 수면시 신경전달물질들의 활동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꿈을 꾸는 REM 수면 동안에는 이완 상태나 휴식 시에 보이는 것처럼, 뇌 속 특정 신경전달물질들 (특히 노르에피네프린)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이 감소할 때 사람들은 외부 자극에 둔감해지는 대신, 유연하게 사고하는 경향이 증가합니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마치 자문이라도 하는 것처럼, 평소에는 미처 연관 짓지 못했던 인지적 표상들을 수월하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즉 깨달음의 순간은 이완되어 있을 때 찾아오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꿈은 상대적으로 흔한 정신 활동의 한 종류입니다. 잠이 들기만 하면 누구나 종종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위인들이 꾼 꿈에는 역사적인 작품이나 발견이 등장하는 반면, 우리가 꾼 평범한 꿈들에서는 그렇지 않을까요?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그레이엄 월러스 Graham Wallas (1926)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각각의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창조에 밑거름이 되는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시기를 뜻합니다. 이를테면 타르티니가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이전에, 바이올린을 익히고 작곡법을 배우는 기간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강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요구됩니다.


 2. 잠복: 어느 정도 준비가 이루어진 이후, 지금껏 의식적으로 습득한 다양한 자료를 무의식적인 마음이 정리하는 기간입니다.


 3. 발현: 갑작스레, 얘기치 않은 해답이 떠오르는 시점입니다. 잠을 자며 꿈을 꾸거나, 푹 쉴 때처럼 긴장이 완화되는 찰나, 무의식적인 마음에 접근하기는 좀 더 용이해집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 라고 외쳤던 장소가 목욕탕이었던 것을 상기해봅시다.)


 4. 검증: 앞서 떠오른 해답이 적절한 것인지 의식적으로 재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람들의 업적은 한순간에 요행히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꾸기 이전 그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노력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충분한 준비 작업이 뒷받침되어 있었기에, 적당한 잠복기를 거쳐 마침내 새로운 생각이 발현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어려운 과제와 맞닥뜨려 고민하고 있다면,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잠시 잠을 청하거나 조용히 쉬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휴식하는 동안 우리의 은밀한 마음은 스스로 작동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한 멋진 아이디어를 내어놓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쉬기에 앞서 충분히 과제에 대해 고민하였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복권 번호를 불러주는 꿈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참고문헌
Keneth M, Heilman et al. Creative innovation: Possible Brain Mechanisms. Neurocase. 2003, Vol.9, No.5: 369-379
에릭 캔델 저/이한음 역, 통찰의 시대, 알에이치코리아
앨런 홉슨 저/박소현,김문수 공역,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 꿈: 꿈의 신경학적 해석, 시그마북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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