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강박증으로 유명한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에서 캐롤은 자신에게 칭찬 하나만이라도 해보라고 요구하자, 주인공 멜빈 유달(잭 니콜슨)은 “그동안 먹지 않고 있던 나의 강박증 치료 약물을 요즘 다시 먹기 시작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유달은 강박증 환자다운, 멋진 명대사를 남긴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강박증 환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감정을 부정하여 취소시키고자 하거나, 자아와 완전히 분리시켜 버리는 것 내지는 그저 감정을 지식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캐롤을 사랑하게 된 유달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앞선 두 글에서 이야기 하였듯 완벽주의나 집착적인 강박 행동들의 이면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무의식이 숨어 있다. 감정을 의식으로 떠올리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럽고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무의식 속의 초자아가 그들을 매순간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늘 강렬한 분노와 불안에 휩싸여 있다. 강렬한 감정은 건조한 표정과 집착적인 강박증으로 드러날 뿐이지만 말이다. 바로 이 점이 강박장애 환자들의 치료를 난관에 부딪히게 만들곤 한다.

 

우선, 강박적인 행동들에 대해서는 우선 무엇보다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음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항우울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SRI)와 같은 약물이 강박증 환자들의 동반된 우울증의 치료 뿐 아니라 그 자체의 항강박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기분안정제나 심한 경우 항정신병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적어도 1달 이상은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여야 하며, 약물을 복용하여 증상이 호전되었을 경우에도 약물을 중단할 경우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중하고 장기적인 약물치료가 강박행동이나 침습적인 강박사고로 인한 증상에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약물치료에 더해 행동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체계적으로 불안의 강도를 조절하며 공포반응을 소거시키는 노출치료나 반응차단 요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강박증을 자극할 수 있는 -더럽거나, 어질러진, 불완전한 상태의 환경에 환자를 노출시키는 것은 오히려 강렬한 반응이나 증상의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계획이 환자와 함께 충분히 상의된 상황에서 안전한 대책을 마련해두고 점차적으로 불안 환경을 노출시키는 것은 강박 행동의 반복을 경감시켜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 또는 장기간의 정신분석치료 등에도 효과가 없거나 극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강박장애의 경우에는 전기충격 치료나 무척 드물지만 뇌-대상회절제술 수술을 감행하게 되는 경우까지 있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괴로운 강박행동이 약물치료나 행동치료 등을 통해 조절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면, 강박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내면의 수치심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강박증의 치료의 마지막 단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자신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초자아의 가학적인 환상에 대해 마주서고, 자신이 슬픔과 분노를 느낀 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충분히 슬퍼할 수 있음으로써 안식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때에 강박증은 무의식 깊은 곳 혹독한 초자아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완벽주의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불안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성취해냄으로써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없다는 것을, 조금 모자라고 조금 비뚤어지고, 조금 실수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름답게 굴러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해소 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불완전하고 엉성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오롯이 존중받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 단순하고도 진실한 사실에 대한 진심 어린 깨달음이야 말로 완벽을 향해 날카롭게 얼어붙은 강박증의 성벽을 차츰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