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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휴가 좀 보내주세요 - 하이든의 제45번 교향곡 ‘고별’<클래식, 심리학과 만나다> (1)
유승준 기자 | 승인 2020.09.07 09:49

음악가 중에는 유머와 위트가 뛰어난 사람이 많다. 자신이 만든 음악 속에 풍자와 해학을 배치해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음악가 중 대표적 인물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하이든이다. 그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많은 예술가를 후원했던 헝가리 후작 가문 에스테르하지가(家)에서 궁정악장으로 단원들을 이끌며 교향곡, 실내악곡, 협주곡, 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귀족들을 위한 세련된 음악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고별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향곡 제45번도 그의 유머와 위트가 잘 녹아 있는 곡이다. 이 작품이 완성된 1772년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가에 머물고 있었다. 후작은 매년 여름이면 아이젠슈타트를 떠나 피서용 여름 궁전으로 단원들을 데리고 가서 놀다 오곤 했다. 

하지만 그해 따라 후작은 가을이 다가왔는데도 본궁으로 귀환하려 하지 않았다. 단원들은 가족들에게 가고 싶었으나 후작이 휴가를 보내주지 않자 연주하면서도 신이 나지 않았다. 눈은 악보를 향하고 손은 악기를 만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집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들의 불만을 알아챈 하이든은 교향곡 제45번 마지막 악장에 기막힌 풍자를 가미했다. 빠르게 시작된 곡이 갑자기 잔잔해지면서 연주자들이 한 사람씩 촛불을 끄고 무대에서 퇴장하도록 한 것이다. 휴가 좀 보내 달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연주가 끝난 후 단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들 떠났으니 우리도 이제 가야겠군.” 

후작은 이렇게 말한 뒤 다음날 바로 전원 휴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음악 속에 숨겨진 하이든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하이든과 후작 모두 기지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사진_픽셀


제1악장은 경쾌하고 생동감 있게 시작된다. 당당하면서도 의욕이 넘치는 분위기다. 격정적 감정이 솟구치는 이 느낌은 뭘까? 밭에서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 제품을 만들어내는 공장 노동자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제2악장은 섬세하고 부드럽다. 사색의 시간이다. 문득 뒤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발자국들이 선명하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질주하고 있나, 질문이 이어진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나직하면서도 우아한 하모니는 생각에 깊이를 더한다. 

제3악장 미뉴에트는 반전이다. 결심이 선 듯하다. 세련된 선율이 이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이제는 뭔가 변화가 필요해, 맞아 행동에 나설 때가 되었어, 이런 다짐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폭풍 전야지만 마냥 고요하기만 하다. 

피날레인 제4악장은 증기기관차처럼 힘차게 출발했으나 돛단배가 항구에 닿듯 평온하게 마무리된다. 휴지부를 지나 아다지오로 접어들면서 31마디 이후 제1 오보에, 제2 호른, 바순, 제2 오보에, 제1 호른, 콘트라베이스 등이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침묵 속에 퇴장이 진행되지만, 나는 떠날 거야, 내게는 쉼이 필요해, 라고 외치듯 발걸음이 가볍다. 무대 위에는 빈 의자와 악기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침내 바이올린 연주자 두 명만 남아 연주를 조용히 마무리한다. 지평선 너머로 하염없이 떠나가는 작은 배 한 척 혹은 요란한 기적과 함께 산자락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기차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이 곡이 연주될 때는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퇴장 퍼포먼스가 재현된다. 하이든이 살던 시대는 전기가 없었다. 단원들은 각자 촛불을 켠 채 악보를 봤다. 그래서 퇴장할 때 자기 앞에 놓인 촛불을 끄고 나간 것이다. 요즘은 공연장마다 조명이 화려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쓸쓸한 표정으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당시 단원들의 마음을 십분 헤아리면서.

 

현대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일류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직장인들은 더 많은 급여와 승진을 위해, CEO들은 기업의 성공신화를 위해 매일 같이 전쟁을 치른다. 심지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들조차 자녀들의 입시를 위해 목숨을 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팽팽하던 스프링이 난데없이 뚝 끊어진 것처럼 무기력증이나 심한 불안감, 자기혐오, 분노, 의욕 상실 등에 빠지는 증상을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고 한다. 과중한 업무와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한 채 항상 일에 쫓겨 살다가 누적된 신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져 버린 것이다. ‘번아웃’이란 다 불타서 없어진다는 뜻이다. 육체와 정신의 모든 게 소진되어 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갑자기 기력이 없다,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치솟는다, 내가 하는 일이 다 부질없어 보인다, 감기나 두통 같은 만성질환을 달고 산다, 감정이 빨리 소진된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기운이 나질 않는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혹시 번아웃 증후군이 아닐까 의심해 보는 게 좋다. 

한국인은 어느 나라 국민보다 일을 많이 한다. 노동 시간으로는 단연 세계 최장이다. 근면과 성실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덕분에 70여 년 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암담한 현실을 딛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절대빈곤의 시대에 남들보다 잠을 덜 자면서 악착같이 일하는 건 미덕이지 흠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쉬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게 미덕인 시대가 아니다.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충분히 휴식하면서 즐기며 사는 게 미덕인 시대다.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자신이 번아웃 상태가 되더라도 무한 질주를 멈출 수 없겠지만,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자신이 번아웃 상태가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사진_픽사베이


휴식이란 분주한 일상을 멈추고 잠시 쉬는 것이다. 한자로 풀어 보면 뜻이 더 오묘하다. ‘쉴 휴(休)’ 자는 자연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고, ‘쉴 식(息)’ 자는 마음을 자신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휴식은 자연으로 들어가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쉬는 걸 의미한다. 무한 질주의 현장을 떠나는 것, 부산스럽던 마음을 비우고 들여다보는 것, 긴장과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놓아주는 것이다. 달음질을 멈추고 가만 서 있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고요한 침묵 속에 귀 기울이면 그동안 들리지 않던 게 들린다. 그걸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깨닫는 게 휴식이다. 이것이 휴식의 원리이자 쉼의 윤리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소설 『미성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 내부의 영혼을 어렴풋이나마 보고 싶고 한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의 침묵하는 법, 말하는 법, 눈물 흘리는 법을 분석해야 하고 또한 그가 얼마나 고상한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는 그가 웃을 때 그를 지켜보는 것이 더 좋다. 만일 그가 잘 웃는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다.”

하이든은 웃음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유쾌함은 따뜻하고 친절한 그의 성품으로부터 나온 것이리라. 그는 후작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단원들을 번아웃 상태가 되도록 다그치지 않았다. 충분한 휴식을 통해 여유로운 마음 상태가 되었을 때라야 좋은 음악을 만들고,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쉼 없는 질주로 지금 몹시 지쳐 있다면 하이든의 제45번 교향곡을 들어보자. 그리고 잠깐 멈춰보자. 떠나보자. 비워야만 새로운 것을 얻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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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기자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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