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8>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나홀로 님은 무난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타입이라 일과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없다. 중요한 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도 떨지 않고 늘 당당하며, 자기주장도 분명하다. 상사들 사이에서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가 좋은 편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다른 고충이 하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든 것이다. 어느 직원과도 진솔하게 사적인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상대도 없을뿐더러 그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직원도 없다.

식사 자리가 제일 불편하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혼자서 조용히 먹으면 그만이지만, 퇴근 후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이만저만 거북스러운 게 아니다.

술이 한 잔 두 잔 이어지다 보면 사적인 대화가 오가게 마련이다. 연애 이야기, 집안 이야기, 자녀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자기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하면서 묵묵히 술과 안주만 축내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되지만, 이렇다 할 해결 방법이 없다. 사적인 대화에 끼어들기 싫은 것이다.

‘직장생활이란 게 대체 뭘까?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사람들하고 잘 어울려야 협력도 되고 협조도 얻는 법이지.’

생각해 보니 학교 동기 중에서도 딱히 친하다고 할 만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졸업 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 역시 없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동급생들로부터 로봇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사회성이 떨어지고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자책하게 된 나홀로 님은 고민 끝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사진_픽사베이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나홀로 님 같은 사람이 많다. 주어진 일은 정확하게 처리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데는 서툴고 미숙한 것이다. 왜 그럴까?

두려움 때문이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을 때 상대방에게 수용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고스란히 속내를 들켜 버림으로써 수치심만 느끼게 될 뿐, 어떤 공감도 얻지 못하게 될 거라는 괜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약한 소리만 하면 사람들에게 얕잡아 보인단 말이야.”
“변명은 필요 없어. 뭐든지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더 나은 결과만을 만들어내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한 사람의 경우, 감정 표현에 서툰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적 욕구가 무엇인지 관찰해서 이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서만 판단하고 가르치면 아이는 점점 자기의 감정적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대인관계에서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에 사람을 깊이 사귀기가 어렵다.

이는 고독으로 향하는 직행열차를 탄 것과 같다. 주변에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 회사 안에서도 곁을 주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간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을 때 강한 외로움을 경험한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하소연하거나 같이 눈물 흘려줄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시험에 합격하거나 어렵사리 승진했을 때 함께 기쁨을 나누고 환호할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나홀로 님처럼 회사 안에서 직원들과 어울리는 게 힘겨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게 좋다.

먼저 감정 일기를 써 본다. 저녁 식사 후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적고,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한다. 하나의 상황에서 한 가지 감정만 생겨나는 게 아니므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 대로 다 쓴다. 최대한 많은 감정을 찾아내는 게 좋다. 그런 다음 왜 그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만약 감정을 떠올리기 어렵다면 하루 세 번씩 지금 느끼는 감정을 찾아보는 연습을 한다. 예를 들면 삼시 세끼 식사할 때나 오전, 오후, 저녁에 따로 시간을 내서 감정 찾기 연습을 하는 것이다. 감정 표현을 억제하다 보면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시간이 흘러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그때그때 느낀 걸 적다 보면 자기감정에 충실하게 된다. 

 

스스로 자기감정을 확인해 보고 자신이 느낀 감정의 정당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공감을 얻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직접 얼굴을 대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게 버거우면 다양한 SNS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을 친구나 회사 동료 등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즉각적으로 공감의 메시지를 받는다면 효과는 대단히 크다. 자기 내면의 감정을 누군가와 교감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혹시 즉각적인 반응이 없거나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내 솔직한 감정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타인과의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내 감정을 SNS에 바로 올리는 게 부담스럽다면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것 또한 괜찮은 방법이다. 타인의 의견에 대해 댓글을 씀으로써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SNS를 통한 감정 표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면, 가까운 친구나 직장 동료를 직접 만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한다. 한 명 두 명 만나 감정을 나누다 보면 타인과 어울리고 교감하는 데 대해 거부감이나 부담감이 줄어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누구도 내 감정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감정은 과거와 현재에 주어진 상황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내 감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내 감정에 당당해질 때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다. 이러한 당당함이 주변의 인간관계를 더욱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내 감정을 이해했을 때라야 비로소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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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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