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위대한 음악, 음악가 그리고 정신 의학 2.

 

"마약은 시간 낭비일 뿐이에요. 기억이나 자신감, 자존감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망가뜨리죠.

잠시 동안은 기분을 좋게 할지 몰라도, 결국 당신을 망칠 겁니다." 커트 코베인

 

'이-나-가다-다-비다 IN-A-GADDA-DA-VIDA.'

이상야릇한 이 문구는 사이키델릭 락 밴드 아이언 버터플라이 Iron Butterfly가 1968년 발표한 곡의 제목입니다. 음반을 걸면 장장 17분 동안 육중한 리프 위에서 몽롱한 오르간, 기타, 드럼 솔로가 연이어 펼쳐집니다. '이-나-가다-다-비다'라는 뜻 모를 가사는 곡 전반부와 후반부에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곡이 발표되자 한동안은 제목에 담긴 뜻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일종의 힌두교 주문일 것이다, LSD에 취한 후 경험한 환각을 묘사한 것 같다 등등... 하지만 실상은 조금 맥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보컬 더그 잉글 Doug Ingle이 술 (혹은 약)에 취해 'In the garden of Eden' 이라 웅얼거린 것을 잘못 기록한 것이었지요.

 

사이키델릭 락의 전성기는 1960년대, LSD 같은 약물이 유행하고 히피 문화가 퍼져나가던 시기와 맞닿아있습니다. 음악은 마치 마약에 취해 환각을 경험하는 듯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시기의 곡들에서는 트랜스 상태를 이끌어내려는 양 비슷한 리프가 조금씩 변주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장면을 흔히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같은 기타리스트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음향을 만들고자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퍼즈 박스, 와우 페달, 피드백 주법, 오버 더빙 등등, 그는 수많은 음악적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이키델릭 뮤지션들 가운데 상당수는 약물에 손을 대었습니다. 당시에는 약물들의 폐해에 대해서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이들은 감각의 지평을 넓힌다는 이유로 별다른 고민이나 죄책감 없이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초의 사이키델릭 음악 작품은 무엇일까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은 베를리오즈 Berlioz의 '환상 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을 언급합니다. 그는 환상 교향곡을 가리켜 비틀즈 Beatles보다 130여년이나 앞서 환각상태에 대해 묘사한 최초의 음악이라 일컬었습니다.

 

엑토르 베를리오즈 Hector Berlioz는 1800년대 고전주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낭만주의를 일으킨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그는 조울병에 가까운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우울감에 대해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하나는 '능동적이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요동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권태롭고 고독하며 무기력하며 감각이 고갈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겪은 기분의 기복은 자서전 '음악 여행자의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는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채 마치 가사상태에 빠진 것 마냥 들판에서, 황야에서, 세느 강변 눈밭에서, 카페 탁자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약혼녀가 파혼을 알려왔을 때는 약혼녀를 죽이겠다며 무작정 로마에서 파리로 떠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감이 넘쳐 술술 곡을 써나가기도 합니다. '환상 교향곡'의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은 단 하룻밤 사이에 쓴 곡이라고 합니다.

 

http://www.gutenberg.org/files/16459/16459-h/16459-h.htmPublished in Camille Saint-Saens: Musical Memories, Small, Maynard & Co, Boston 1919

 

그의 대표곡 '환상 교향곡'은 여배우 해리엇 스밋슨 Harriet Smithson을 짝사랑하게 된 것을 계기로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명세를 타던 여배우는 무명 작곡가에 불과한 베를리오즈를 철저히 무시했기에, '사랑에 거절당해 실의에 빠진 젊은 예술가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작곡가 자신이 직접 해설한 프로그램 노트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병적으로 예민한 감성과 끓어오르는 상상력을 지닌 젊은 음악가가 상사병에 절망하여 아편을 복용한다. 하지만 치사량에 이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었기에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수면 중 기괴한 장면들을 연이어 목격하게 되는데, 그동안의 느낌, 감각과 기억들은 음악가의 병든 뇌를 통해 음악적인 생각과 장면들로 바뀌어 표현된다..."

 

정신의학의 역사상 아편제제는 한때 우울증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격적인 현대의 정신 약물학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아편은 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신 약물이었습니다. 게다가 19세기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창조성을 자극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아편을 사용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을지, 영감을 얻으려는 목적이었을지, 혹은 둘 다였을지 모르겠으나) 베를리오즈 역시 습관적으로 아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상 교향곡'이 음악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고정 악상 idée fixe'이라는 표현양식을 사용한 것에 있습니다. '고정 악상'이란 특정한 가락이 어떤 인물이나 상태, 감정 등을 상징하는 것을 뜻합니다. '환상 교향곡'에서는 짝사랑하는 연인을 나타내는 고정 악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고정 악상'이 일종의 강박 사고라는 것입니다. 베를리오즈는 '연인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나타날 때면 기이하게도 그녀를 상징하는 음악이 늘 함께 떠오른다.'고 묘사하였습니다. 이 '연인을 나타내는 선율'은 교향곡 곳곳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때로는 왜곡된 형태로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4악장 단두대에 끌려가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 뜬금없이 등장하는 선율은 병적인 강박 사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각적 체험이 극에 달한 5악장에서 등장하는 고정 악상 역시 주목해 볼 만합니다. 꾸임음과 트릴 주법을 사용하여 멜로디를 기괴하게 뒤틀어 버리는 발상은 139년 뒤 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미국 국가 스타 스팽글드 배너 Star spangled Banner와 어딘가 닮은꼴입니다. (지미 헨드릭스는 퍼즈 톤으로 덧칠하고 트레몰로 암을 격렬히 떠는 연주로 미국 국가를 완벽히 뭉개버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약물을 사용한 음악가들의 많은 수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음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베를리오즈의 우울증은 점차 심각해졌고 말년에는 죽고 싶다는 소망을 일기로 남겼습니다. 지미 헨드릭스는 마약과 수면제를 복용한 채 토사물에 질식해 죽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이키델릭 뮤지션들이 약물에 의해 생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환각을 유발하는 약물들이 한창 미국 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을 즈음인 1968년, 번스타인이 언급한 이야기가 경종을 울립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최대로 강렬한 트립(Trip, 마약에 의한 환각 체험을 뜻하는 속어)은 이 음악으로 족합니다. 지옥을 경험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마약에 손을 댄다면 지옥으로 떨어질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 음악으로 만족합시다. -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듣는 것으로요."

 

참고문헌

Wolf PL, Hector Berlioz and other famous artists with opium abuse, Frontiers of neurology and neuroscience. 2010;27:84-91

Leonard Bernstein, Young people's concerts, Amadeus press

Jaak Panksepp/Lucy Biven, The archaeology of mind: Neuroevolutionary origins of human emotions, W. W. Norton & company

Marina Zuylen, Monomania: The flight from everyday life in literature and art, Cornell university press

Alicia Kopfstein-Penk, Leonard Bernstein and his young people's concerts,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엑토르 베를리오즈 저/어은정,홍문우 공역, 음악 여행자의 책: 낭만음악의 거장 베를리오즈와 함께하는 음악여행, 봄아필

안동림 저, 이 한장의 명반: 클래식, 현암사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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