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부모의 심리학> (4)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한다. 이 나이가 되면 대개 직장에서 은퇴해 연금을 받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하지만 연대기적으로 계산해 사회에서 노인 대접을 받는 것과 자신의 몸에 노화가 진행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연령을 나누는 여러 방법 중에 생물학적 연령이 있다. 발달 또는 퇴화를 겪는 전반적인 신체 상태에 따라 연령을 측정하는 것이다. 사고로 인한 경우가 아니면 대다수 건강한 사람이 경험하는 신체 발달의 최종 단계는 노화다.

각 신체 기관에서 꾸준히 진행되던 세포 소실로 인한 변화가 눈에 띄게 관찰되는 것이 60세 무렵이다. 이에 따라 몸의 기능들이 점점 둔화하고 상실된다. 피부와 근육의 신축성이 떨어지고, 독소나 노폐물을 걸러내는 비뇨 체계가 느려지며, 위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능력도 저하된다.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남아 있는 근육의 힘도 약해진다. 호흡계는 산소를 덜 흡수하고, 심혈관계는 두 배로 힘들게 일하지만 75세 노인의 심장 기능은 30세 청년의 70퍼센트 수준이다.

이 같은 신체의 노화는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노화와 관련해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잘못 전해져 온 것은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다. 문학적 표현이나 인문적 해석은 차치하고, 과학적으로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사실일까? 
 

사진_픽셀


정서 최적화와 정서조절 목표

이는 잘못된 말이다. 아마 우울장애 혹은 기억력 장애를 앓는 노인들이 감정을 조절하거나 행동을 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걸 보고 이렇게 말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03년 6월 3일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회상할 때 긍정적인 면을 많이 떠올리고, 부정적인 면은 적게 떠올린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삶의 어두운 쪽보다는 밝은 쪽을 더 자주 바라보면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턴에 의하면 노인들은 ‘정서 최적화’ 목표를 위해서 정서조절을 시도한다고 한다. ‘정서 최적화’란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면서 긍정적이고 정서적이며 지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을 선택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는 그렇지 못한 부정적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를 기억해내려는 ‘정서 최적화’ 특성은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심리학자인 카르텐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차 사회적 동기에는 정서조절, 자기 개념의 발달과 유지, 그리고 정보 추구가 있는데,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정보 추구 목표의 중요성은 감소하는 반면 정서조절 목표가 중요해진다고 했다.

대인관계 등에서 정서조절을 통해 최대한 정서적인 만족을 얻는 게 노인들의 삶의 목표가 된다. 이것은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수준과 관련이 있지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자신의 생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인식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노인들이 세상에 대한 정서적 관여를 줄이는 것은 노화로 인한 쇠퇴와 사회적 자극의 감소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둔 채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정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대인관계의 폭을 선택적으로 줄여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들은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지만, 새로운 관계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유지하려고 한다. 

연령 증가에 따른 정서 표현의 특징을 살펴보면 노년기에는 강렬한 정서 표현이 점점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표현되는 정서는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복잡하게 드러난다. 

 

늙은 스무 살과 청춘인 여든 살  

노년기에 접어들면 신체 노화를 겪으면서 정서 최적화와 정서조절 목표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까닭에 시야와 행동반경은 물론 인간관계까지 줄어들고 매사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이런 것이 젊은이들 눈에는 마치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 되면 몸이 쇠약해지고 기억력이 감퇴할 뿐 창조력이 감퇴하는 것은 아니다. 입체파를 대표하는 화가 피카소는 90세가 넘도록 쉼 없이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왕성하게 창작에 매진해 회화를 넘어 조각, 판화, 도자기까지 넘나들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역시 80세가 넘을 때까지 활발하게 글을 썼다.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82세 때 완성된 작품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교수는 86세에 이르러 날카로운 혜안과 경륜이 담긴 명저 『경제 시대로의 여행』을 출간했다. 

한국인의 경우는 어떨까? 80대 후반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암 투병 중에도 끊임없이 새 책을 선보이며 집필에 열중하고 있고,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김형석 선생은 백수를 넘긴 나이에도 청년 못지않은 체력으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중섭 화백의 친구인 김병기 화백은 올해 105세가 되었는데도 현역 화가로 붓을 들고 있다.
 

노인이 되어 육체는 쇠약해지더라도 뭔가를 창조해내는 능력은 죽는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삶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경험과 지혜와 직관을 자양분 삼아 창조적 사고에 몰두한다면 얼마든지 뛰어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이를 깨달았던 독일 시인 사무엘 울만은 78세 때 쓴 ‘청춘’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의 눈에 묻히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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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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