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약간은 적막감이 드는 분위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엔 어느 작은 것 하나의 움직임도 없다. 단지 조금 낯설어 보이는 자신의 목소리만 조용히 시계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처음으로 듣는 상대의 마법 같은 음성에 우울한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끔 정신과에 대해 이런 마법 같은 환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왜인지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것 같은, 왜인지 척 하고 자신의 고민을 다 알아 줄 것 같은, 왜인지 딱 하고 자신의 괴로움을 없애줄 것 같은 환상을 말이다.

 

환자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들도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들 역시 고개 끄덕임 한 방에 모든 억울함을 없애주고, 짧은 말 한 문장에 모든 해결점이 담겨 있는 그런 모습을 꿈꾸며 정신과 수련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정신과라는 평생의 업을 처음으로 선택할 때 가지는 나름의 환상들을 말이다.

 

이런 환상은 정말 환상일 뿐이다.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세치 혀로 병을 낫게 해 주겠다는 환상. 하지만 환상은 없다. 정신질환이 뇌의 질환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이 우세해짐에 따라 주된 치료 방향 역시 프로이트 시대의 정신치료를 넘어 약물치료로 접어들었다.

 

그렇다 기본은 약물치료다. 기나긴 정신의학적 면담을 거쳐 진단을 내린 후 치료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어떤 약이 좋을까?’이다. 정신과 의사가 쓰는 약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신과 의사는 어떤 부분을 고려해서 약을 쓰는지 알아보자.

 

앞선 글에 설명하였듯이 약은 증상에 맞춰서 쓴다. 정신과 약물(향정신성 약물이라고 불린다.)은 역시 약리작용보다 일차적 적응증에 따라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항정신병 약물

2. 기분안정제

3. 항우울제

4. 항불안제

5. 수면제

6. 정신자극제

7. 인지기능 개선제

 

정신과 의사는 이런 종류의 약들을 환자의 진단과 증상에 맞게 사용한다. 각각의 약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내용이 지루해질 것 같아 생략한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는 약을 쓸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할까?

 

놀랍게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부작용’이다. 물론 환자의 진단이 무엇인지, 환자가 가장 불편해하는 증상이 무엇인지는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다. 어떤 종류의 약을 쓸지가 정해지면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은 A씨와 B씨를 예로 들어보자.

 

A씨 : 예민한 성격에 날카로운 인상, 깡마른 몸매,

우울감과 불안감이 함께 동반되고, 밤에 잠을 못 자는 게 괴롭다고 한다.

B씨 : 둔한 성격에 조금은 멍해 보이는 인상, 과체중,

하루 종일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너무 많이 잔다고 한다.

 

항우울제 A : 식욕을 자극하고 진정 효과가 강한 부작용이 있다.

항우울제 B : 식욕을 억제하고 각성 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이 약들의 치료제로서의 효과성은 거의 동일하다.

A씨에게 어떤 약을 주겠는가?

당연히 항우울제 A를 줄 것이다.

 

상황을 엄청 단순화하여 설명하였다. 신기하게도 향정신성 의약품의 효과성은 대부분 거의 유사하다. 다만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 지가 다를 뿐이다.

 

우울증화 된 신경세포가 변화해서 정상적인 신경세포가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신과적인 질환이 치료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꾸준히 약을 먹는 것이 중요한데 부작용은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치료 효과보다 약물로 인한 불편함(부작용)이 더 큰 데 계속해서 약을 먹을 사람은 없다. 만약 불편함이 있다면 지레 겁을 먹고 약을 끊지 말자. 대신에 당당하고 자세하게 자신의 불편한 점을 정신과 의사에게 이야기하자. 정신과 의사는 부작용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당신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약을 쓰기 전에 이 약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부작용이 언제쯤 나타날지,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약물의 용량을 줄일지, 부작용의 증상을 줄이는 약을 같이 투약할지, 다른 약으로 바꿀지)를 항상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정신과 의사들이 고려하는 부분은 무수히 많다. 약이 언제쯤 효과가 나타날지,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다른 먹고 있는 약과 같이 먹어도 될지, 다른 신체적인 질병은 없는지, 그러한 질병이 있어도 이 약을 먹어도 되는지, 예전에는 어떤 약을 먹었는지, 그 약은 효과는 어땠고, 부작용은 어땠는지, 언제까지 약을 먹을지, 얼마나 용량을 증량할지, 한 가지 약으로 치료할지, 다른 약과 함께 사용할지, 효과가 없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심지어 약 값이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약 값이 부담이 되면 치료가 될 때까지 충분기간 복용할 수 없다), 이 사람이 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지도 말이다. 정신의학적 면담에서 생물학적 원인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원인을 중요하게 고려했듯이 약을 처방할 때에도 이런 정신적, 사회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약물치료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향정신성 약물은 각종 정신질환을 이전보다 더욱 쉽게 치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이런 약들의 작용기전을 연구함으로써 반대로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원인을 밝히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향정신성 약물들은 효과도 좋고 안전하고 부작용도 적다. 정신과 약 먹으면 멍해지고 바보가 된다는 말은 너무나도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6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 기사 참고)

 

의사들이 절대로 하지 않는 일, 또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환자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과 약물치료는 반드시 도움이 되는 일이다.

 

조금 딱딱한 정신과 약물 치료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정신치료에 대해 알아보자.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