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3부 - 정신병원과 친해지는 방법

18화 약을 금방 끊고 싶은 / 끊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약, 어서 끊어야지.”

내가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말하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정신과 약이 마치 나를 지옥으로 안내하는 마녀의 약이라도 되는 듯이 다들 그렇게 터부시 했다. 나도 누군가 정신병원 약을 평생 먹으라고 권한다면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마녀의 약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예를 들어, 우울증, 불안증 환자가 매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의사는 상담으로 수많은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거나, 바깥 활동을 활발히 하고, 명상을 해본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 수준에서 벗어나는 환자가 올 경우, 약물의 힘을 빌려야 한다. 환자에게 로라제팜(lorazepam)과 트라조돈(trazodone)을 처방할 수도 있다.

로라제팜은 뇌에서 신경흥분을 억제하여 불안 및 긴장을 감소하는 효과가 있고, 트라조돈은 뇌에서 세로토닌의 작용을 강화하여 우울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 약들의 주목적이 아닌 효과로는 졸음이 있다. 그래서 불면증을 가진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해 수면제를 따로 추가하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정신과 약이 만능 치료제라는 뜻은 아니다. 우울증은 약물로 치료하는 방법도 있지만, 동시에 생활 전반에 활기를 넣어주어야 한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인지의 왜곡),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행복을 놓치는 것 등을 교정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약이 고쳐줄 수 없다. 꾸준한 상담과 자신의 노력만이 고칠 수 있는 영역이다. 

약은 그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홀로 척박한 환경에서 발버둥 치는 것보다, 양지에 나와 새싹도 보고, 햇살도 드는 땅을 딛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것은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생각부터 성격까지 달라진다. 환경은 홀로 만들거나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상태가 안 좋아서 여러 번, 부득이하게 한 번 정도 병원을 빠졌다. 앞에 ‘여러 번’은 우울 증세가 무척 심하게 와서,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남이 보면 멀쩡하게 누워있으면서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냈다. 이해가 안 가겠지만, 난 정말 움직일 수 없었다. 나와 다투면서 생각 속의 나와 몸의 내가 모두 지쳐 나가떨어졌다. 잠으로 숨었다. 

부득이하게 한 번 빠진 것은 근래의 일이다. 얼마 전 심하게 체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일반적인 식체가 아닌 느낌이 들었다. 알맞은 후처치를 했는데도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초기 단계라 확진 환자가 0으로 뜨던 시기였다.

새벽 내내 온몸이 땀으로 젖고, 구토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이어졌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마스크를 쓰고 K를 깨워 근처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수액과 구토를 멈춰줄 항 구토제를 넣어주고 간단한 검사를 했다. 신기하게 금세 나았다. 

 

집으로 돌아와 이제 ‘살겠다’ 하던 차에 갑자기 오한이 들고 땀이 끊임없이 흘렀다. 온몸에 힘이 없었고 어지러웠다. 두 손과 다리가 이유 없이 심하게 떨렸다. 온몸이 새하얀색으로 변했다. 차갑고 피가 돌지 않았다. 문득, 내가 정신병원 약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체 초반에는 먹은 것을 그대로 토해냈기 때문에 먹었던 약도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틀 정도 약을 안 먹은 셈이 됐다. 금단증세였다. 

병원을 찾아 내 상태를 설명하니 선생님은 차분히 금단증세가 맞다고 하셨다. 약을 먹었던 이력이 길거나,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을 때 약을 끊으면 금단증세가 심하게 올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체한 것으로 병원을 찾아갔을 때보다 절박한 몸 상태가 되어 급하게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약의 중요성보다 무서움을 깨달았다. 약은 이미 내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나는 매일 먹어서 모르던 약의 효과, 그 부작용과 금단증세… 나는 이미 실컷 겁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 살아가게 해 주는, 루틴을 만들어준 약은 귀중한 매체임이 분명했다. 일전에 선생님은 약을 끊을 때 설계를 하고 차분히 끊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진의를 깨닫게 되었다. 돌발적으로 약을 끊으면 얼마나 혼쭐 나는지 몸소 깨달은 것이다. 

 

이와 별개로 수년간 처방약을 먹어오다가 약을 줄이기로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약이 줄어서 불쾌감을 겪으며 한 생각은 “나를 이렇게 평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왜 해야 하지?”였다. 약을 먹었을 때의 자신은 평안하다고 했다. 분명 일부의 우울함이 남아있지만 그나마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신도 가족의 일부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좋아했다.

약을 줄여가면서, 줄여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무슨 일이든 더욱더 힘들어졌고,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평생 약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문제없다면 끊고 싶지 않아.”라고 답했다. 이미 약에 의존하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100만큼의 우울증이 있다면, 어디까지 떨어지면 약을 끊어도 될까? 그것은 각자 의사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꽤 괜찮아 보여서 약을 끊게 했다고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약을 끊고 머지않아 우울증이란 끈질긴 녀석은 다시 돌아온다면, 그래서 환자를 다시 늪으로 빠지게 한다면 잘못된 판단으로 환자를 위험하게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괜찮아 보이는 환자에게 신경계를 움직이는 약을 계속 노출시키기도 어려운 일이다. 

사회에서의 ‘나’가 있다. 홀로 있을 때의 ‘나’도 있다. 주치의에게는 홀로 있을 때의 ‘나’를 비춰야 한다. 허심탄회한 상담 속, 의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끝없는 상담 속에서 전문가의 판단이 올바르도록 도와야 한다. 당신의 솔직함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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