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3부 - 정신병원과 친해지는 방법

16화 지난 일주일, 어떠셨어요?

 

“(지난 기간) 어떠셨어요?” 

라고 상담을 시작한다. 그럼 나는 지난 며칠을 반추한다. 

“어…. 3일 정도 정도 우울증이 깊게 왔고요, 이런이런 일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상담을 하면 내 위주로 말하게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럼 선생님은 “아… 그러셨겠어요.”라고 자꾸 그렇게 내 편을 드신다. 그러면 나는 우쭈쭈 당하는 어린아이처럼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자꾸자꾸 끄집어낸다. 

 

막상 지난 일주일을 설명하는 건 쉬워 보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 7일 중에 나는 사정이 생겨 일주일 이틀 병원에 간다. 7일치도 아니고 3-4일 사이에 있던 일을 설명하는 것인데도 어렵다. 보통의 주별 상담은 주 1회이니 주 1회를 예로 들겠다. 

지금 당장 딱 일주일 이전에 무슨 일들을 했는지 생각해보자. 당신의 동공이 동그라니 돌아가는 것이 지금 내 눈에 보인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부터 그럼 지난주… 하는 단계가 떠오른다. 별 것 없는 매일의 날들 같지만, 우리의 하루는 미묘하게 다르다. 크고 작게 분노하며, 밝게 한 번쯤 웃기도 하고, 해가 지는 걸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상담을 위한 일주일의 정보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일주일간의 그래프적인 감정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건이나 감정을 설명해야 도움이 된다.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면, 그 사건을 설명하면서 감정이입이 되어 화내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럽다. 나도 그랬다. 남에게 ‘이것, 이것은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을 긋고 상담을 시작했다. 선생님도 절대 서둘러 나에게 묻지 않았다. 

“이야기하고 싶으면 하세요. 하시면 상담에 도움은 되겠지만, 준비가 되면 하세요. 괜찮아요.”

 

말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내용은 전반적으로 내 자존심과 관여된 일들이었고, 나를 너무도 괴롭히는 핵심 정보였다.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구겨져버린 삶이 다시 펼쳐질 수 없었다. 말을 참으며 처음 몇 달은 깰 수 없는 악몽과 잘 수 없는 꿈을 이어서 꿨다. 괴로웠다. 핵심을 건들지 않으니 상담은 어느새 겉돌기 시작했다. 상담이 도움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상담에는 말해야겠지.’라고 마음먹고 그 날이 다가올 때까지 매일 새벽, 한 시간에 한 번 깼다. 그만큼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옥상달빛’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를 들으며, 병원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음속 숨겨둔 일을 설명했다. 판타지같이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으며, 웃지도 울지도, 놀라지도, 비웃지도 않으셨다. 판타지 같은 이야기임에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그 전문성에 놀랐다. “많이 힘드셨겠네요.”라고 한마디 넌지시 건네실 때, 눈물이 흐를 뻔했다. 하지만 나는 남 앞에서 잘 울지 않는다. 견뎌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항상 내 편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차분히 들어보고 아니다 싶은 건 더욱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친절할 뿐 내 이야기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친절함에 약했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일전에 친한 언니가 결혼식을 올렸다. 식을 올렸다고 보기에 조촐하고 아주 작은 형식을 띄었을 뿐, 결혼식을 안 했다고 봐도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몇 달이 지나서야 그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었다.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서운하다.’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일주일 내내 너무 서운해서 “서운하다”고 표현했다. 아차, 후회도 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남긴 메시지도 동일 한 내용이었다. “나도, 서운하다” 뜻밖이라 놀랐다. 잘못 본건 아닌지 몇 번을 메시지 창을 다시 열어봤다. 

 

며칠 후 병원에 가서 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담했다. 선생님은 전반적으로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준 이야기는 매정하다 싶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저는 이해가 가는데요? 저도 저의 와이프와 다시 결혼한다면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어서 

“결혼은 여럿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랑과 신부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라고 하셨다. 나는 벙 하게 듣고 말을 소화하는 시간을 보냈다. 

“심경선 님도 결혼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맞게 하실 수 있으신 거니까요.”

라고 마지막 직구를 날렸다. 

 

“네-“라고 대답하고 집에 오는 길에 얼마나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타투를 했다고 했을 때도 놀라기만 하시고 존중해주셨고, 강아지가 두 마리가 됐다고 해도 “더 부지런해지셔야겠네요.”라고 응원해주시고, 식물이 백여 개가 넘어간다고 했을 때도 “식물원 같겠네요.”라고 괜찮아하시던 분이,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나를 설득하고 계셨다. 그의 생각이 일부 맞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친절함에 약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와 그녀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생각의 스펙트럼이 좁았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 스스로도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귀중한 반대였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질문하겠다. 

“지난 일주일, 어떠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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