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죽음으로 세상 보기” 시리즈 - 소개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광민 박사]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사회적 집단 속에서 상대방을 통해 소통하고, 따라 하고, 배우고, 공유하면서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갑니다. 태어나서 부모님을 통해 상호 간의 관계를 경험하고 점차 형제나 또래 친구, 선후배, 선생님, 직장, 사회 전체로 관계의 범위를 넓혀 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고, 내 고집을 수정하며, 내 주장을 이해시키기 위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공감과 소통을 위한 중요한 사회화 기술입니다. 사회성은 극단적인 정서결핍이나 학대의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습득됩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 상황을 보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인간 본성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순간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형제자매가 적다 보니 가족 안에서도 경쟁이나 배려, 양보나 타협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또래 아이들끼리 티격태격하며 허물없이 어울리다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놀 때도 어른이 옆에서 지켜보고 간섭합니다. 친구 관계가 부모의 모임, 학원, 학교 등 제한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귀고 소통하며 생기는 사회성이 습득되기 어렵습니다. 고립된 존재로 공감이나 소통능력이 부족한 채 성장한 어른은 개인의 환경을 넘어서 사회적 상황으로 문제가 확장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실제 대인관계로 경험되어야 할 여러 상황을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전화나 문자를 할 수 있고, 오히려 연락을 바로 해 주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상대방의 혹시 모를 입장을 떠올리며 기다릴 여유조차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자기중심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소통과 이해, 그리고 공감을 할 수 없는 개인은 다른 사람을 자기 식대로 판단해 버리고 자기 기준에 맞춰서 대하게 됩니다. 그런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갈등으로도 상황을 악화시켜 버립니다. 결국에는 친구, 연인, 부부,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직장 등 기본적인 관계에서 갈등과 분열이 이전보다 도드라지는 건, 이런 사회적인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소통과 이해, 공감, 그리고 사회성이 결여된 상태를 ‘사회적 죽음’이라 표현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죽음’의 상태는 한 개인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자신 또는 자신과 유사한 집단의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단정 짓고, 일방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대인관계를 맺습니다. 때로는 그 반대로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 숨어들어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죽음’은 우리 사회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 부정적인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나와 남을 이해해가는 과정은 사람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성장배경이지만, 갈수록 이를 배워갈 기회는 줄고 있습니다. 사회성의 결여는 내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시하거나 왜곡된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상대방이 싫어하고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볼 줄 모릅니다.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을 괜찮다고 무시하거나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사회적 죽음’은 결국 개인의 문제를 넘어 범죄사건 등 사회적 문제의 기반이 되는 심리적 특징입니다.

 

정신의학신문에서는 “사회적 죽음으로 세상 보기”라는 연재를 통해 당시 이슈가 되는 사회적 상황이나 문제들을 짚어 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마주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러한 글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세밀하고 협력적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죽음’이라는 시각으로 지금의 여러 이해되지 않는 사태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그 해결책을 찾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이런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라도 보일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연재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깊게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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