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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물보다 술과 담배가 더 효과가 좋을까?
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3.07 00:07

[정신의학신문 : 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친숙하고 익숙한 사람을 더욱 선호합니다. 이를 '단순노출효과'라 부르는데,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교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는 학생들이 자주 보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친밀함을 다르게 느끼는지 실험했습니다. 여학생 여러 명을 수업에 들어가는 횟수를 0~15회로 차등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노출시켰습니다. 단, 수업에 들어간 횟수 이외의 요인은 차단하기 위해 수업 중 다른 학생과는 아무런 얘기도 나누지 말고, 수업 끝난 후에는 바로 나오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해당 학기가 끝난 후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수업에 참여시켰던 여학생의 사진을 보여주고 호감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실험 결과, 수업에 들어간 횟수가 많았던 여학생이 학생들에게 가장 매력 있게 평가됐고, 수업에 단 한 차례도 들어간 적이 없는 여학생은 호감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잦은 노출이 주는 친숙함은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해당됩니다. 알코올 중독이 비단 남성들의 문제가 아니라 주부들이 알코올 중독을 치료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키친 드렁커’라고 하는데, 주방에서 요리 재료로 쓰이는 알코올을 혼자 집에 있을 때 조금씩 마시는 행위가 중독으로 이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런 주부들은 무심코 찬장에 있는 미림이나 와인을 재료처럼 생각해 조금씩 마시게 됐지만 이것이 중독으로까지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답합니다.

 

한국 사회는 술과 담배에 관용적인 분위기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개 술자리가 친목을 다지는 시간으로 활용되고, 사회활동에 어떤 능력처럼 술을 잘 먹는 것이 인정받는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예전에는 남자라면 으레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당연하게 담배를 접하는 것이 의례처럼 행해지던 시절도 있습니다.

실제로 알코올은 보통 사람에게도 마음이 편해지고 불안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술을 마시면 잠도 더 편하게 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쓰는 ‘항불안제’라는 약물은 알코올이 뇌에 작용하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곤두선 신경이 누그러지고 불안이 잠잠해지는 효과 때문에 정신과 약물이 아니더라도 알코올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술은 장기간 복용할 경우 정신과 약물에 비해 간을 비롯한 위장과 뇌에 미치는 부작용은 수명에 매우 큽니다. 또 알코올 중독자일 경우에는 그의 자녀들까지 중독 위험률이 4배 이상 올라갑니다.

또 담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면 각성효과처럼 집중도 잘되고 마음의 안정이 된다고 말을 합니다. 정신과 약물 중에도 암페타민이라는 각성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약물이 있습니다. 주로 ADHD에 처방하는 약인데, 지금은 꼭 처방이 있어야만 활용할 수 있는 약입니다. 외국에서는 오남용을 막기 위해 한국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하는 약물이기도 합니다. 담배의 경우에는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사용이 본인의 의지로만 조절 가능한 것에 비해 정신과 약물은 의사의 처방이 동반되고 흡연이 가져다 줄 합병증 위험 범위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치명적입니다.
 

사진_픽셀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담자의 병의 내력을 조사하다 보면 하루에 소주 한 병, 담배는 한 갑 정도의 생활 습관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데 치료를 위해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려고 하면 부작용을 무척 걱정하며 거부감을 보이십니다. 사실상 술, 담배도 크게 보면 약물에 속합니다. 결국에는 인식이라는 것이 술, 담배는 일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친숙한 기호품이지만 정신과라는 수식어에 약물이라고 붙으면 저항감을 갖는 것입니다.

약물을 처방하는 이유는 정신과 치료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신과 약물이라고 하면 다른 과에서 처방받는 것에 비해 거부감을 가지는 일은 흔하게 나타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처럼 정신과 약물이 발전하기 이전 그러니까 7~80년대 이전에 개발된 약물은 부작용이 심했고 정신과 약물을 먹으면 멍해지고 바보처럼 보이는 현상들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 조현병 약물은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이 나오고, 우울증 약물로는 1980년대 ‘프로작’이 나와 크게 히트를 치면서 정신과 약물이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정신과 약물 2세대가 열리게 되면서 약물의 부작용이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신과의 문제는 자신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고혈압 약을 먹으면서 자기 의지로 혈압을 낮추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과 약물도 마찬가지이지만 마치 ‘정신력이 약하다’,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다’는 식의 말로 원천적인 탐구의 시도를 막아버리는 믿음이 더 팽배한 것입니다.

 

약물을 사용할 때는 이 두 가지만 고려하시면 됩니다. ‘이 약물로 효과가 있는가’, ‘부작용은 없는가’입니다. 술과 담배가 정신과 질환에 효과가 있으면 처방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술과 담배가 정신과 약물보다 효과가 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술, 담배로 인한 부작용도 훨씬 심합니다. 그래서 정신과 약물 대신에 자가적으로 술, 담배를 한다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술과 담배는 중독이 생기면 의지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의 특징은 진단이 아닌 증상으로 판단 내리는 것입니다.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약 처방이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병이 심한지 스스로 판단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의사 또는 전문가가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임상경험으로 상태의 중함을 비교해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약물이 점차 다양해질수록 정신과 의사가 갖추는 무기의 개수도 많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료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은 ‘병식 교육’입니다. 약물만 준다고 다가 아니고 병의 기전과 예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물치료 대신에 술과 담배에 의존해 치료하고 싶다면 일단 본인께서 같은 약물 종류에 중독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환자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물질남용과 연관된 부작용 등에 대한 자료를 공부해보는 것도 스스로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정신과 약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제대로 아는 것부터 치료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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