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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게 지쳐요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1.25 00:15

[정신의학신문 :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는 편이고, 웬만하면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 봐 티를 안 내려고 해요.

근데 이제 한계에 다다른 거 같아요. 싫지만 웃으며 인사했던 사람들, 가족들 다 그만 보고 싶어요. 그냥 이제 괜찮은 척하기가 싫어요. 그 사람들이 제 인생에서 사라져도 제 인생은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싫은 티를 내거나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안 보고 사는 게 더 편할 거 같아요.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제가 싫은 티 낸다고 한들 세상이 바뀌지도 않고 고작 불편한 관계 정도가 생기는 걸 텐데... 저는 이제 지쳤어요.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저는 행복하지도 않고 좋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그런 척할 뿐... 이제는 저 자신부터 솔직해지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를 좋게 봐주길 바랐고,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결국 병드는 건 저 자신이고 저를 좋아해주기는커녕 호구로 여기는 거 같아요.

이런 관계를 끊고 혼자 사는 게 더 현명한 걸까요? 내면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었어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찬영입니다. 작성하신 내용 잘 보았습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네요. 항상 좋은 모습, 행복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이면에는 사람 관계에서의 불편감, 지친 모습 등이 숨어 있네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사람들에게 싫은 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 웃으면서 행복한 척하는 것,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잠깐 밝은 모습을 보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분처럼 긴 시간 동안 좋은 모습을 유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죠.

이런 부분은 질문자분이 꽤 능력 있는 사람이고 때로는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많은 부분이 부정적으로만 느껴지고 자신감도 떨어지겠지만, 항상 그래 왔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격은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계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심적인 갈등이 발생합니다. 이런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고 처리하기 위한 방식이 방어기제입니다. 예를 들면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미워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만 이를 억눌러서 의식화하지 않고, 더욱 웃으면서 처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방어기제는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반복된다면 제대로 처리를 할 수가 없게 되겠죠.

심한 스트레스는 강도가 심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스트레스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질문자분의 경우는 대인관계를 맺으면서 감정을 억누르고 긍정적인 부분만을 보이고자 했던 부분들이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부분은 질문자분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비슷하지만 계속 변화합니다. 학창 시절의 모습과 직장인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는 조금씩 변화해 나갑니다. 전반적으로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시간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해 나갑니다.

질문자분이 갑자기 남을 지적하고 좋지 않은 말을 할 수는 없겠죠. 물론 그런 변화가 바람직하지도 않겠죠. 하지만 질문자분으로서는 때로는 무엇인가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태도의 변화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이런 변화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을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기존에 해왔던 무조건 수용적인 자세,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태도에서 벗어나서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쌓이게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부정적인 부분이 쌓여 과거, 현재, 미래 등이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질문자 분도 지금 이런 시간을 보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관계를 벗어나서 혼자 지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네요. 아마 질문자분이 항상 그런 삶을 바라지는 않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이 크다면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가족, 연인, 오래된 친구와 같이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보고 그다음에 현실적인 부분에 대하여 고민해 보아도 늦지 않습니다.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 시간 후에는 다른 부분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도움되셨길 바랍니다.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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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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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654 2020-01-25 22:46:26

    잠시 모든걸 놓고 쉬면 지쳤을 때 보이지 않았던 선택지가 보인다는게 인상깊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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