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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친구의 말에 너무 휘둘리는 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1.14 00:06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20대 여자입니다. 현재, 저는 무기력함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이런 저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약 3개월 전, 남들처럼 인생이 재미가 없는 시기가 왔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증상들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화 속에 사는 것처럼 현실과 제가 분리된 듯한 증상을 경험한 적도 있고, 지하철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무서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의 증상들은 일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무기력해지기 시작했고, 밤에만 우울했던 제가 이제는 밤낮과 관계없이 우울하며 잠을 못 자고, 그로 인해 계속 피곤합니다. 눈물이 많이 나는데 아무리 울어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드는 생각은 늘 '이 정도 고생했으니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라는 결말로 끝이 납니다.

겨우 3개월 만에 이렇게 많은 증상들을 겪을 수 있나 싶습니다.

 

평소, 저는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속이 상한 적도 많지만 이런 저를 싫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인이라 할만한 건 친구와의 관계 문제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말하기를, 예전의 제 모습은 너무 완벽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어 돌아왔으면 좋겠고, 점점 저와 멀어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남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저는 저를 생각하는 것만큼 소중히 여기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분명, 두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은 안 해도 서로 감정이 상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에게 있었던 많은 일들과 제가 사람들로 인해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인데, 지금까지 살아왔던 제 모습을 부정하는 것 같아 잊히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제 얘기를 듣고 위로해주었지만, 저는 그 위로가 와 닿지 않습니다. 그동안 저는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왔고, 인간관계 문제나 다른 문제들로 힘들어도 잘 버텨냈는데 이제는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얼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도 기분 변화가 없고, 사람들을 만나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분명히 행복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까지 버티며 노력했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고, 이런 힘든 일을 겪으려고 살아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일어서고 싶지도 않고, 지금 이런 제 모습조차도 감당할 수가 없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의 말에 이렇게나 휘둘리는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올려주신 내용 곳곳에 질문자님의 힘든 마음이 느껴져 참 안타깝습니다. 먼저, 부디 힘내시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말씀하신 대로라면 친구분이 질문자님께 한 이야기가 현재의 기분을 느끼게 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에는 완벽했지만, 지금은 그러하지 않다’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신 것 같기도 하고요. 평소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셨던 분이기에, 그런 이야기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물론 친구분의 말이 질문자님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는 충분히 있긴 해요. 아마 좋은 어조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겠죠.

 

하지만, 질문자님의 말씀을 보면 친구분의 말을 받아들이는 시각에 있어 다소 극단적인 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네가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다’라는 말을 ‘내가 한 노력이 다 부질없다. 내가 버텨온 것이 다 의미 없다’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타인의 의견을 꼭 100% 진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의 영향 중 일부는 ‘선택해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친구의 말에 ‘그건 네 생각이지. 난 다르게 생각해’ 혹은 ‘다른 사람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라는 건강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나에게 주는 감정적 영향은 훨씬 덜해질 거예요. 물론 연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친구의 말에 흔들리고, 자신을 자책하고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진 시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의 말로 말미암아 현재와 같은 무기력감,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면 더더욱 해야 할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민감하다는 말은, 타인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에 민감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평가가 좋을 거라 예상하기보다 나에게 부정적일 거라는 예상을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습관이 우리가 흔히 ‘낮은 자존감’이라 부르는 것이죠.

 

작은 수첩을 준비해서, 자신이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렸던 상황을 적어보세요. 또 그 상황에서의 감정을 적고, 점수도 0에서 100점까지 매겨보세요. 예를 들어 ‘친구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함. 우울 70, 화 90’ 이런 식으로요. 그다음, 자신이 왜 그렇게 타인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상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 적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상황에 대한 좀 더 건강한 시각을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마치 일기를 쓰듯이 당시의 상황을 풀어 기록해도 되고, 간결하게 기록해도 좋아요.

대개 감정이 많이 흔들리는 때는 상대의 말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경우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인 대처를 하게 되지요. 수첩에 기록한 내용이 쌓이게 되면서 자신이 습관처럼 가져왔던 시각들의 윤곽을 찾을 수 있어요. 또 적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행위는 감정에 휘둘렸던 뇌의 이성-감성 간 균형을 맞추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된다면, 이렇듯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치열한 고민을 하며 이전과는 다른 패턴을 만들어가셔야 하고요.

 

또, 현재 질문자님의 마음은 무기력감, 우울감, 좌절감 등이 뒤섞인 상태입니다. 현시점에서 보이는 질문자님의 증상은 우울증에 가까워요. 또, 극단적인 생각이 올라오는 상태라면 위에서 말씀드린 노력과 더불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보입니다. 우울증은 늪과 같아요. 경한 정도라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지만, 증상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는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들어지죠. 발버둥 칠수록 더 깊게 빠져들기도 해요. 그러니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늪에서 걸어 나오실 필요가 있는 거죠.

질문자님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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