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을 하다 보면 내원한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심리학적 이론으로만 설명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상태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전달하려는 뜻에서 심리이론을 끌어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심리학적 이론에서는 ‘지식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을 생화학이나 정신분석학으로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을 의료의 대상으로 본 기원은 히포크라테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 정신의학의 기초는 17세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 뇌를 연구하는 비중이 점차 넓어지게 됐다.

정신의학에서 뇌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알츠하이머가 치매 환자의 뇌 슬라이드를 관찰하면서 정상인과 뇌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때부터다. 이후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화학물질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밝혀내기 시작하면서 정신의학의 상당 부분을 뇌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사진_픽사베이

 

최근 인간이 이룩한 과학 발전의 가장 큰 축은 뇌과학과 인공지능이다. 인간의 뇌를 이해함으로써 그간 인류의 과제였던 난치병과 불치병의 치료법을 탐구할 수 있고, AI의 발전으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으로 접속할 가능성도 생겼다. 하지만 과학의 융성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삶의 주체는 우리 인간이며, 유전자 깊숙이 남아있는 본능과 통속적인 감정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하듯이 ‘몸짱 되는 법’, ‘서울대 가는 법’, ‘대인관계 넓히는 법’ 등의 자기계발서는 나름대로 해결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부자가 못 되거나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의 결핍은 꼭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자녀들을 학원에 여러 군데 보내는 것이 부모가 아이의 성적, 지식을 관리하는 차원이 될 수 있어도 아이의 마음을 성장시키지는 않는 것과 같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주인공 ‘윌’은 천부적인 두뇌를 가진 청년이지만 비뚤어진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자신의 지능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평가하느라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다가, 마침내 마음을 열고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치료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숀 교수라는 조력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지식의 힘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뇌과학이나 생리학에 해박한 것이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척도는 일상에 대한 감각이다. 내가 하던 일을 하지 못하고, 만나던 사람을 보지 못할 때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정신 건강을 챙길 때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미래에는 정신건강의학에서 뇌과학이 발전해 정신질환을 모두 설명해 낼 수도 있다. 혈당을 재서 약을 처방하듯이 뇌의 반응을 수치화해서 정신질환을 한 번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신의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환자가 말하지 못한 고통에 대해서 약물로 모두 진정시킬 수 없는 여백을 오랜 대화와 신뢰로 메워나가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여전히 우리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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