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건대하늘 정신과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편견은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것을 사실이라 믿는 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고민스럽지도, 복잡하지도 않고 오히려 명쾌하기 때문이다. 인종 또는 민족성에 대한 편견 또한 시각적으로 구별되는 외양 탓인지 우리의 판단 과정을 아주 효율적으로 생략시켜준다. 흑인들은, 원주민들은, 백인들은, 또는 중국인들은…. 등등의 제시어를 받았을 때 우리는 두뇌의 고차원적인 분석 능력을 작동시키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도 곧바로 뒷문장을 완성시켜버린다. 비록 현대의 법과 윤리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제동을 걸 순 있겠지만 말이다.

 

편견이 흔들릴 때 우리는 불편해지고 피로해진다. 잽싸게 편견의 보자기를 씌워서 처리해버릴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이제는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이 드러난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하다. 그래서 편견이 흔들려 진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나타났을 때, 실제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서둘러 편견을 강화하여 진실을 덮어버리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편견이 흔들리는 순간은 진실을 알게 될 결정적 기회이면서도 학문적 성과로 발전하기까지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적으로 수용되기까진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 책의 저자,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 결정적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 같다. 무의식적이었겠지만 소위 현대 문명인이라는 우월감을 지녔을 그에게, 뉴기니에서 겪은 상대적 무능감과 비문명 원주민의 상대적 우월성은 얼마나 낯선 경험이었을까? 결코 원주민들의 지능과 적응력이 열등한 것이 아니란 낯선 체험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편견을 넘어 진실을 알고자 했던 그의 과학적 노력은 “유라시안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p383)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 책은 일견 오만한 유럽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유럽인들이 세계를 주도한 역사는 고작 몇백 년에 지나지 않고 그것마저도 자기들이 잘나서가 아니니 운과 환경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피지배민의 불편한 과거 또한 서슴지 않고 들추어낸다. 유럽인의 침략을 받은 중국인(한족), 흑인(반투족), 동남아인(오스트로네시아인) 등 근대의 피지배민은 역사 이전의 시대에는 백인 못지않게 피도 눈물도 없는 침략자였다. 이들은 각각 중원과 태평양,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존의 다양한 수렵채집 원주민 집단의 멸족을 초래했던 선조들의 후손인 것이다. 다만 글이 없던 시절이라 구체적 증거만 없을 뿐이다.

자연스레 정복과 피지배는 민족의 생물학적 차별성이 아니라 인류의 공통적 현상이란 생각에 이를 수 있으며 이는 인본주의적 유럽인들의 죄책감을 덜어줄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저자의 가장 극적인 표현은 “만약 홍적세 말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유라시아의 사람들을 서로 바꾸어놓았다면, 지금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었던 사람들이 유라시아는 물론이고 남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차지했을 것이며 원래 유라시아 원주민이었던 사람들은 마구 유린당하여 오스트레일리아 곳곳에 간신히 잔존하는 신세로 전락했을 것이다(p592).”이다.
 


이 책이 퓰리처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지배민족의 우월감에는 반성을, 피지배민족의 열등감에는 위로를 주며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월감과 열등감이 복잡하게 점철되어있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소중화(小中華)라는 우월성에 젖어있다 오랑캐라 멸시하던 일본에게 지배받았던 한반도의 역사는 지배/피지배, 우월/열등에 대한 독특한 집단무의식을 낳은 것 같다. 고질적인 갑을 문화나 서열을 부추기는 문화는 우리 사회의 상당한 정신에너지가 우월/열등 관계로 향해있음을 방증한다.

최근 국가 간 갈등이나 사회 갈등이 늘어나는 요즘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주 클 것 같다. 우리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는, 아니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실제로는 차이보다 유사성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갈등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편견이 흔들릴 때, 우리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성장통과 질풍노도를 겪으며 우리는 성장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 인간이 신의 자식이 아닌 동물이란 것 모두가 처음엔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소화시키며 우리는 이해의 폭을 넓히며 발전해왔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