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약 20년 전에 의원을 막 개원하고 정신건강 관련 강의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처음이라 잔뜩 긴장했습니다. 나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마음으로 청중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심장 주변을 가리켰고, 일부는 머리를 가리켰습니다. 저는 머리를 가리키며 우리는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마음이란 뇌의 화학작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단호하게 이야기했나 봅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오답일까요? 마음이 힘들거나 아프면 머리도 무겁지만, 팔다리에 힘이 없고, 어깨가 처지고, 입맛도 없고, 가슴도 답답하고, 눈도 뜨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온몸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느끼고 사는데 마음이 머리에만 있다니요?

 

주부인 정현 씨는 백화점에서 카디건을 샀습니다. 그리고 카디건을 걸치고 동창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동창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에게 한번 입어 봐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흔쾌히 옷을 벗어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친구는 거울 앞에서 옷을 입어 보더니 무척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는 또 다른 친구가 “그 카디건이 너한테 더 잘 어울리네.”라고 거들었습니다. 순간 정현 씨의 표정은 굳어졌지만, 반사적으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마음에 들어하는데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네 마음에 들면 너 줄게. 난 또 사면돼!”라고 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모임은 끝났지만 이후 그녀는 계속 속이 불편해졌습니다. 정현 씨의 진짜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옷을 준 마음일까요? 굳어버린 표정일까요?

 

사진_픽셀

 

‘머리 마음’ 즉, 생각은 진짜 마음이 아닙니다. 진짜 마음은 ‘몸 마음’입니다. 한자로 ‘장腸’이라는 말은 소화기관인 ‘창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사전을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놀랍게도 ‘마음 장’이라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이때 마음은 속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군가 형식적으로 하는 이야기에 대해 ‘영혼 없는 말’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사실 ‘몸에 없는 말’ 혹은 ‘창자에 없는 말’을 의미합니다.

​몸은 뇌의 통제를 받는 단순한 부속기관이 아닙니다. 몸은 마음의 원천이며, 뇌는 몸에 뿌리를 두고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람은 머리와 몸의 연결이 잘 이루어져 있고, 몸에 기반을 두고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은 머리와 몸의 연결이 약해진 채 머리로만 살아갑니다. 이는 여러 문제를 낳습니다. 배가 부른데도 음식을 계속 먹고, 몸은 뒤틀려가는 데도 안 좋은 자세로 생활하고, 몸은 아프다고 하는데도 운동을 멈추지 않고, 입은 건조한데도 물을 마시지 않고 살아갑니다. 몸은 괴로운데도 의미를 부여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몸은 상대와 함께 있는 게 싫다고 하는데도 장시간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러한 몸과 머리의 단절이야말로 심각한 자기분열이며, 건강을 해치는 가장 해로운 습관입니다.

 

실제 몸과 머리는 뇌의 섬엽이라고 하는 부위에서 연결됩니다. 섬엽은 뇌의 외측 틈새(lateral fissure)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피질 부분으로, 신체감각을 통합하여 중요한 정보를 이성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전전두엽으로 전달합니다. 즉, 신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가 통합되는 곳이 섬엽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몸의 억압으로 그 섬엽의 활성도가 매우 떨어져 있어 몸의 정보들이 잘 올라오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과 마음을 연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일상의 순간순간 몸에 따뜻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를 바디풀니스bodyfulness 즉, 몸챙김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따뜻한 주의warm attention’라고 한 것은 몸을 도구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이자 삶의 동반자로서 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순간순간 몸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시 연결됩니다. 지금 잠시 멈추고 호흡과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 감정이 올라올 때 감정에 동반된 신체감각이 무엇인지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배가 부를 때 그만 먹는 것, 지금 어떤 자세로 앉거나 서 있는지 살펴보는 것 등입니다.

몸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됩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몸의 자각이 잘 이루어지면 마음의 자각 또한 잘 이루어집니다. 이는 우리가 삶을 더 깊이 체험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몸챙김bodyfulness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며, 마음챙김mindfulness은 삶챙김lifefulness입니다.

몸과 함께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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