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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간 - 문요한 선생님
정선우 기자 | 승인 2017.02.13 07:11

 

얼마 전 처음으로 치통을 경험했다. 어찌할 바를 모를 고통에, 어디를 부여잡아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냥 대굴대굴 굴렀다. 십년 가까이 의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통증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책에서 표현하는 통증의 강도나,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정도로 막연히 느끼고 있던 아픔은 실제로 알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에 치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아오던 환자들에게 짜증과 의아함이 묻어 나왔던 인턴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끄러움만이 치통을 잠깐씩 멈출 수 있었다.

사람이 앎을 터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배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통증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을 다루는 법 역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겨내는 법을 진정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아픔과 치유와 쉼을 모두 경험한 선생님을 소개한다.

 

사진 정신의학신문

 

Q. 안식년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나 스스로 너무 힘들게 살았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다.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쉬고 와서 다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중 변화의 시점이 있었는데 2013년경이다.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상담 위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을 때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반응에 습관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담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어요?’

선생님도 알다시피 상담 중에 내담자가 이런 질문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몇 번이나 다른 식으로 신호를 줬는데도 내가 몰랐던 것 같다. 아마 관심이 부족했으리라.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끄러움과 함께 자괴감을 느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거 저거 한다고 벌려 놓은 일들만 많고, 나중에는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준비라는 생각에 시간에 짓눌리고 허덕거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정작 그러면서도 상담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유와 휴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나의 위선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내담자의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어요?’라는 말이 나의 이런 이중적인 부분을 드러내줬다. 당시에는 부끄러웠지만 내가 안식년을 결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말이다. 감사하고 있다.

 

Q. 가족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내가 안식년에 대해 동의를 해줄까?’라는 고민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의외로 아내는 흔쾌히 동의 했다. 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자는 말에 혹한 것 같다.(웃음) 이후에는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에 혼자서 여행을 다녔다. 사실 나는 학교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것보다 여행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학교를 쉬어가면서까지 아이들을 여행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내가 여행에서 느낀 것과 아내가 여행에서 느낀 것은 다를테니 말이다. 수익이 줄어든 부분을 이해하는 것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너무 고맙다.

 

사진 픽사베이

 

Q. 여행은 어땠나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삶을 등산으로 생각했다면, 여행을 다녀 온 후로는 삶을 트래킹으로 받아들인다. 젊은 시절엔 등산을 좋아했다. 등산은 정상을 가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느 길로 산을 올라가는지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에 올라서는 것이다. 중간에 뒤를 돌아보고 풍경을 즐기기도 힘들다. 오직 그런 여유는 정상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트래킹은 정상이라는 것이 없다. 과정이 중요하고, 속도조절이 중요하다. 주변과 교감하면서 자신의 속도를 찾아간다. 등산은 막 올라가다 내리막길이 나오면 허탈한 느낌이 든다. 또 올라가야 되는데 왜 내리막길이 나왔는지 나의 머릿속 등산길과 비교를 하며 짜증을 낸다. 트래킹은 그런 게 없다.

나 스스로 너무 힘들게 살았다.

좀 더 가볍게 살아도 좋겠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 다니면서 매일 했던 질문이 있다.

배낭여행 중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싸고 풀면서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이었다.

13킬로 미만으로 짐을 싸야 되니까, 꼭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물어야만 했다. 그 질문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내 마음 속에 계속 남아있었다.

‘예전처럼 살아야 되나?’ ‘무엇이 중요한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전의 삶의 방식,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가볍고 새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여행 중에 겪은 어떤 단일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물이 스며들 듯 내 삶으로 이러한 것들이 들어왔다.

 

Q. 아이들 반응은 어땠나요?

아이들(2014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 6학년) 역시 좋아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짐을 들고 자주 이동하는 부분이나 먹는 부분을 힘들어 했다. 그리고 나는 트래킹을 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트래킹을 지겨워했고.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 이후에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즐거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직도 자연스럽게 여행이야기가 나온다. 계속해서 되새김질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Q. 선생님에게는 치유가 되었지만 일반 직장인들은 이런 여행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이 시대의 직장인들에게 어떻게 안식년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실제로 여행 책 쓰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다. ‘긴 여행을 가고 싶은 데 여건이 안 된다고...’ 사실 답이 없다. 여행 가보면 내 나이대 사람들이 없다. 젊은 층이랑 50, 60대 부부들이 많고 그 중간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도 전환의 시간이 각자에게 분명히 있다. 직장을 옮기는 것이나 직업을 바꾸는 전환일 수도 있고, 다른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기에 긴 여행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여행을 통해서 느낀 부분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절대적인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휴식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사실은 그들의 머릿속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일과 휴식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일은 일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쉼에는 쉼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행을 갔는데 꽃을 보고 즐거워해야 되는데, 가는 길에 길 막히면 어쩌나 걱정하고, 검색하고, 이래서는 여행이 될 수 없다. 쉴 수가 없다. 휴식 할 땐 휴식하고, 일 할 땐 일하는,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 자신한테 있어야 한다.

 

사진 정신의학신문

 

Q.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걷기 인 것 같다. 걷게 되면 여러 가지 효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각이나 감정이 많이 순화되고 감각이 살아난다. 주변 풍경, 주변 소리,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손의 감각, 발의 감각, 걷기 자체에 집중을 하다보면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생각을 하지말자는 생각으로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감정을 느끼지 말자고 해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게 아니다. 감각이 활성화되면 생각과 감정은 옅어진다.

일상생활에서도 뇌의 전체 기능을 조율하는 데 걷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자연스럽게 감정이나 사고 자체가 순화된다. 걷기를 하다보면 자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조절감이 생긴다. 걷기를 하면 시간에 대한 통제력과 자기주도권을 회복하게 된다. 하루에 적어도 30분은 걷기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완전히 내 속도로 한 트레킹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후에 혼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을 때 ‘아! 내가 속도 중독에 빠져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고산지역을 트레킹 하다보면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 고산병에는 약이 없다. 고산병에 가장 좋은 건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성미가 급하기도 하고, 휴가기간이 짧아서 천천히 걷지를 못한다. 그런데 나는 성미가 급한 편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갈 수가 없었다. 뒤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빨리 가려고 하고, 누군가 나를 앞지르려고 하면 짜증이 났다. 정말 내가 속도 중독에 빠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기 조절력이 생겼다. 속도 조절이 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을 수 있었고 풍경도 보고 멈출 수도 있고 뒤돌아 볼 수도 있었다. 그 전에는 이런 삶을 살 수가 없었다. 주변과 교감을 하고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Q. 누구나 다 이런 것을 느낄 수는 없을 텐데?

 

머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시기도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만약 30대 때 긴 여행을 갔으면 이러한 느낌이나 변화를 얻지 못했을 수 있을 것 같다. 30대 때는 등산 같은 삶이 필요할 수도 있고 바쁘게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다.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 보다는 시기에 따라서 느끼는 바가 다를 거 같다. 등산을 좋아 할 수 있는 나이도 트래킹을 좋아하는 나이도 다른 것 같다. 어쩌면 등산 같은 삶이 있었기에 트래킹 같은 삶을 좋아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Q. 30대 때 자신을 일부러 채찍질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너무 삶을 협소하게 성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이고, 실패하면 내 자신이 무가치 하다고 느꼈다. 내가 내 자신을 말처럼 대했다. 내가 나를 때리면 더 잘 뛸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처음에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시절에는 산이 좋아서 산에 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정체되어 있거나 실망스럽다고 느낄 때에 산을 갔다. 내가 나 자신을 넘어서야 된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확인하러 등산을 한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정상을 갔다 오면, 그 시간을 단축하는 거 자체가 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무리해서 지리산 일주하다가 정상에 못 미쳐서 탈진해 쓰러졌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다. 자괴감에 빠져서 울었다.

 

돌아보면 자존감의 문제였다.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다.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이 그 증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자기 길을 잃고 외적인 성취나 목표에만 매달렸다.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 했다.

 

 

Q. 구본형 선생님은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2002년 공보의 끝나고 선배 병원을 인수해서 개원을 했다. 2004년까지 개원의 생활을 하니까 ‘아 이렇게 평생 살면 어떻게 하지? 제명에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이렇게 살 수 없겠다, 다른 부분이 필요하겠다는 고민을 하던 중에 구 본형 작가의 책을 보게 됐다. 구 선생님은 인문학적인 베이스를 가지고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돕는 변화경영 사상가로서의 삶을 사신 분이다. 나는 이 분의 책을 보면서 환자의 치유를 넘어 개인과 조직의 정신적 변화를 돕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무작정 찾아갔다. 때마침 연구원을 모집하고 계셔서 1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 시간이 나에게 많은 밑거름이 되었다.

 

나 자신의 성장모델을 만들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우리 정신과 의사는 직업적 특성상 의학적, 질병 모델에 갇혀 있다. 그래서 정신병리적 측면에만 초점을 두고, 그 부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완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한다. 우리들의 초점은 늘 증상과 질병이다. 그에 반발해서 나온 것이 긍정 심리학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강조하는 것인데 그건 또 너무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하고 편향되어 있었다.

 

이런 것들을 아우르는 모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성장모델이다.

정신병리 완화도 중요하고 그 사람의 강점을 개발하고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둠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빛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두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로 힘든 환자를 보면 우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외상 후 성장(PTG : PostTraumatic Growth)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전에는 정신의학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이런 외상 후 성장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통해 성장을 할까? 이런 어려움들을 성장의 발판으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트라우마가 성장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이런 트라우마가 단순한 어려움이 아닌 삶의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통합적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할 수 있다. PTSD가 완화되는 것을 넘어 얼마든지 PTG로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 관리를 할 때, 질병 모델로 접근하면 스트레스 조절에 초점을 맞추기가 쉽다. 하지만 성장모델 관점에서는 스트레스 조절을 넘어 계획적 도전을 강조한다. 단순히 주어진 스트레스에 대해 ‘투쟁-회피’ 반응을 조절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도전함으로써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만일 불안 때문에 힘들어하는 환자라면 단순히 불안의 감소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일상에서 어떻게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지를 함께 다룬다. 어둠을 쫓아내려고 애쓰기보다 빛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 모델이다.

 

사진 정신의학신문

 

Q. 여행이란?

 

내가 생각할 때 치료therapy라는 입장보다 조금 더 관점을 넓혀 치유healing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사람은 자기를 치유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 스스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살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자기 치유적인 기능이 다른 사람들보다 떨어진 사람들이다. 그 자기 치유 능력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생의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본다. 누군가 삶에서 아름다운 시간이 존재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적인 힘이다. 사람은 힘들면 퇴행을 한다. 어려진다. 그런데 모든 퇴행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유아기로 퇴행하거나 혹은 과거의 추억에 빠져 그 시간에 고착이 되면 이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지금의 힘겨움을 스스로 위로하고 다시 현실을 헤쳐갈 수 있다면 이는 건강한 퇴행이다. 건강한 퇴행이 가능하려면 ‘여행, 도전, 사랑, 몰입경험’ 등과 같은 스스로 만들어낸 생애 아름다운 시간이 있어야 한다. 여행은 가장 대표적인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렇기에 삶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준다. 힘들 때마다 우리는 그 여행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재충전하고 여행자 정신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Q. 쉼이란?

 

사람들은 쉼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에서 너무 많은 일과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오는 것을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쉼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주말 내내 소파에 누워 TV보고 월요일에 출근하려면 더 피곤한 것처럼 오히려 이러한 휴식은 일상을 더 고달프게 만든다. 쉼이란 ‘무활동 상태’아니라 자신에게 활력을 주는 활동에 몰입하는 것이다. 특히, 많은 시간을 앉아서 지내는 의사들의 경우라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활력을 주는 휴식이 된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여행 중에서 트래킹의 시간이 나에게는 진정한 쉼의 시간이었다. 걸으면서 생기를 되찾았고 길 위에서 행복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Q. 스스로 사는 삶이란?

 

스스로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그런 답변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게 된 지금의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생리적인 욕구가 있다. 수면욕, 식욕, 성욕 이런 것들이다. 힘든 감정은 이해받으면 풀리지만 생리적 욕구는 충족이 안 되면 해결이 안 된다. ‘아! 너 배고프겠다!’라고 여러 사람한테 이해받는다고 달라지겠는가! 배고픔은 먹어야만 해결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는 꼭 충족되어야 할 심리적 욕구도 있다. 자기결정성이론을 보면 심리적 욕구에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있다. 자율성은 누구나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유능성은 누구나 다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하며 관계성은 누구나 다 타인과 친밀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생리적 욕구와 마찬가지로 이해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꼭 충족이 되어야만 한다. 충족이 안 되면 불행해지고 마음의 병이 온다. 어릴 때는 의존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제약들이 있지만 사실 삶의 과제는 독립하는 것이다. 양육의 목적도 자립해서 독립하는 걸 돕는 것이다. 사회 역시 한 인간이 자율적으로 살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중요하다.

 

 

Q. 왜 현대사회에 문제가 되느냐?

 

과잉양육이 크다. 핵가족이 되면서 집에서 한두명 기르면서 과잉양육을 한다.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돕지 못하고 있다. 헬리콥터 맘, 부모가 계속 뒷바라지를 하며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행위적, 가치적, 생활적, 경제적, 여러 측면에서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치적, 정신적 자율성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의 가치관과 기대,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활을 하지만 사춘기 시기에 자기 세계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 반항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단 사춘기 시기만이 아니라 사실 평생을 가지고 가야할 고민이다.

 

자율성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 선택장애 역시 자율성의 부재 때문이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해야 되나?’, ‘이 직장을 그만둬야 되나?’ 옛날 같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질문들을 상담 초기에 답을 바라고 물어 본다. 선택을 하는 능력도 선택을 해 보면서 발달하는 것인데 스스로 선택해 본 경험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선택을 잘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을 잘 하는 방법은 선택경험을 통해 배우는 수밖에 없다. 설사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더라도 이는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위한 학습이다.

 

자신이 부품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찾기는 상당히 힘든 것은 맞다. 자신의 일 속에서 찾기는 더더욱 힘들다. 온갖 지시와 간섭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일터에서 ‘이 일이 내 일이다’라고 느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 더 스스로의 동기로써 움직이고 그 활동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는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정신적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의 내적 동기를 확실히 알아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자신의 일을 통해 자기 세계를 만들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면 휴식이나 취미의 시간에 자기 세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로서 숨 쉴 수 있는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은 힘든 일을 좀 더 잘 이겨낼 수 있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자존감을 높이는 데는 단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은 외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알랭드 보통은 자존감을 풍선에 비유하기도 했다. 외부 영향에 쉽게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은 자기 치유의 기능이 크다.

상담을 지속적으로 하는데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우울증이 있었다. 일도 자신도 그 무엇도 무의미 하다고 했다. 상담이 도움은 되지만 그때뿐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상담을 그만뒀다. 1년 쯤 뒤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만났는데 밝아져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담비를 가지고 취미로 목공소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취미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가질 수가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세상에, 자신이 만든 의자, 자신이 만든 연필꽂이 등을.

인간관계의 해법도 자신만의 자율성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면 인간관계가 잘 풀린다. 그 사람이 선택하게끔, 그 사람의 세상을 인정해주면 관계가 좋아진다. 특히 부모자식 관계에서 그렇다. 부모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살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벗어나야 한다. 이 역시도 자신 스스로 살게 되면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자신 스스로 자율적으로 살지 못하는 불만이 쌓여가기 때문에 자꾸 상대를 통제하려고 드는 것이다.

 

 

정선우 기자  mau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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