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박준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70년대

이 시기는 ADHD가 학문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2000건이 넘는 연구가 발표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이다. 또한, 대중적으로도 주목받으며 각종 음모론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ADHD의 개념을 아주 포괄적으로 정의했던 기존의 ‘최소 뇌기능장애’ 개념을 고수한 웬더Wender의 이론이 아직 대세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후반에는 더글러스의 주의력결핍 모델이 훨씬 주목받게 된다.

 

웬더의 최소 뇌기능장애 이론

웬더는 과잉행동의 개념 속에 충동성, 산만, 좌절 내성이 떨어짐, 공격성, 운동이 둔함, 인지능력의 결함, 부모자녀 갈등 등 다양한 증상들이 모두 포함된다고 보고, ‘최소 뇌기능장애’의 핵심적인 증상에는 6가지 영역이 있다고 기술하였다. 

1) 운동 : 과잉행동, 운동이 조화롭지 못함. 말이 많음.

2) 집중력 : 주의유지시간이 짧음, 집중이 어려움, 외부자극에 의해 쉽게 산만해짐. 백일몽(멍하니 딴생각하기), 생각을 잘 정리하지 못함.

3) 학습 : 읽기, 쓰기, 이해, 산술의 어려움.

4) 충동조절 : 행동을 자제하기 어려움. 좌절 내성이 낮음, 욕구 지연이 어려움, 반사회적 행동, 계획/판단/결과 예상이 어려움, 정리가 안 됨, 무모함.

5) 대인관계 : 지시에 따르지 않음, 고집, 건방짐, 거부적, 훈육에 따르지 않음, 사회적 요구에 둔함, 과도한 독립성.

6) 정서 : 감정기복이 심함. 반응이 보통 아이들과 다름, 분노 폭발, 공격성, 불쾌, 무기력, 우울, 불안, 낮은 자존감.


이러한 증상 묘사는 1902년 스틸의 묘사와 놀랍도록 일치된다. 웬더는 이러한 증상들이 3가지 결함 때문에 생긴다고 가정하였다. 

1) 기쁨과 고통을 덜 경험한다고 보았다. 즉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는 역치threshold가 높다는 것이다. ADHD 아동은 기쁨과 고통에 대한 역치가 높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서 제시하는 보상과 제재에 둔감하고 지시도 덜 따르며 동기 형성도 어렵고 사회적인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 역치: 어떤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극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소리의 크기가 10dB은 되어야 들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소리를 듣는 역치가 10dB이라고 말한다. 

2) 전반적으로 활동 수준이 높고 조절이 안 된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자제력이 떨어지고, 과잉행동과 집중유지의 어려움이 나타나고, 정서적인 과잉반응과 낮은 좌절 내성, 분노발작 등의 문제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3) 외향성extraversion이 높다고 보았다.


웬더는 이 중에서도 ‘자제하기 어려움poor inhibition’이 가장 핵심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때까지 ADHD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웬더의 정의와 가설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포괄적이며, ADHD, 불안장애, 학습장애, 적대적 반항장애가 동반된 사례를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ADHD에서 이런 진단이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웬더는 많은 질환이 동반된 이 전체의 모습을 하나의 ADHD로 보았던 것이다. 현재는 이 증상들을 분류하여 서로 다른 진단으로 구분하며, 대신 여러 가지 진단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림1. 최소 뇌기능장애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해서 1973년에 발표한 웬더의 논문

 

더글러스의 주의력결핍 모델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최소 뇌기능장애라는 용어는 점차 사용되지 않고, 대신 과잉행동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된다. 캐나다 맥길대의 더글러스Virginia Douglas는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동의 행동을 객관적인 인지평가를 통해 측정해보니, 과잉행동보다 집중유지sustained attention(각성vigilance)와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훨씬 일관되게 관찰된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또한, 학습장애가 항상 동반되는 것은 아니며, 과잉행동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외부자극에 쉽게 산만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밝혀낸다. 게다가 외부자극에 쉽게 산만해지지 않는데도 집중력 유지는 어려운 경우도 있음을 알아낸다. 

당시 집중력 유지가 얼마나 가능한지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던 검사가 지속수행검사continuous performance test인데, ADHD인 사람들은 이 검사에서 반응해야 할 순간에 빠뜨리거나(주의력결핍), 충동적으로 누르기도 하고(과잉행동/충동성), 잘했다, 못 했다 하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검사결과는 수많은 실험과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이후 표준화, 상업화 과정을 거쳐 현재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모든 주의력 검사 도구의 원형이 되었다. 

더글러스 연구팀은 이들에게 지속적이고 즉각적인 강화(보상)를 주면 집중유지 능력이 향상되지만, 가끔 강화를 주면 집중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도 보고하면서, ADHD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면 훨씬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도 실험으로 입증하였다. 또 이들에게 자극제(각성제)를 이용한 약물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며, 이들을 장기적으로 추적관찰해보면 과잉행동은 사춘기를 지나며 나아지지만, 집중 유지의 어려움은 성인기까지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실험 결과를 통해, 더글라스 연구팀은

1) 집중유지
2) 충동적인 반응의 억제
3) 각성수준의 조절
4) 즉각적 보상을 추구하는 성향 등

4가지의 결함 때문에 ADHD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그림2.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동들에게서 집중유지와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더욱 문제임을 밝혀낸 더글러스의 논문이 당시 가장 많이 인용되어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문서

 

약물처방이 늘어나면서 대중적인 의혹이 급증하기 시작

1970년대 미국에서는 이중맹검 위약 대조군 같은 더욱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약물치료 연구가 많이 시행된다.

* 이중맹검 연구: 환자와 치료자 모두 현재 복용하는 약이 위약인지 진짜 약인지 모르는 채 복용하게 하는 연구

이를 통해 자극제가 ADHD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이 꾸준히 보고되고 약물 처방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면서, 대중적인 의혹 또한 급증하기 시작한다. 언론에서도 ADHD에 대한 약물 처방이 빠르게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선정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ADHD는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모나 교사가 만들어낸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이다.

 

환경적인 이유로 과잉행동이 생긴다는 주장

1970년대 미국은 자연식품, 건강, 수명에 대한 관심이 늘고. 약에 대한 거부감이 증가하던 시기였다. 때마침 알레르기 전문 소아과의사인 파인골드Feingold가 “과잉행동은 식용색소, 인공향료, 방부제 같은 식품첨가물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으게 된다. 그는 ‘ADHD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란, 식품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물을 먹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의 주장에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 파인골드 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파인골드 식단을 학교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하지만 엄격하고 광범위한 연구 결과, “식품첨가물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나오면서, ‘과잉행동과 식품첨가물에 대한 미 국가자문위원회’는 파인골드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그림3. 현재도 식용색소, 인공향료, 방부제 등을 먹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파인골드 연합의 홈페이지


파인골드의 주장이 점차 잦아들면서, 이제는 “정제당(백설탕)이 과잉행동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또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기술적인 발달과 사회적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과잉행동을 유발한다”는 주장과, “엄격한 문화냐 아니냐에 따라 과잉행동이 유발된다”는 주장이 잠시 주목을 받았으나, 증거가 부족하거나 반대되는 증거가 나오면서 점차 잊히게 된다.

정신분석, 행동주의 같은 심리학과 정신의학 쪽에서는 대개 “엄마가 양육을 잘못해서”, “아동과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해서” 과잉행동이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양육과 부정적인 부모자녀 상호작용이 과잉행동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하였다. ADHD 치료제를 사용하여 증상이 호전된 아동의 경우 엄마의 부정적인 양육과 부모자녀 사이의 상호작용이 대폭 줄어드는 것을 보면, 오히려 아동의 타고난 과잉행동이 원인이 되어 부모의 부정적인 양육과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ADHD 치료기법으로서 행동치료가 떠오르고 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짐

부정적인 양육과 부모자녀 상호작용이 ADHD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가족환경에 대한 개입과 부모교육이 가족 내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행동치료가 점차 ADHD에 대한 치료방법으로 권장되었다. 또 교실에서의 문제행동에도 행동수정기법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약물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ADHD를 진단하는 데 있어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척도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진단, 치료 효과 뿐 아니라, 증상으로 인해 아동이 속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 가족 내 갈등까지, 검사자의 주관적인 판단과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객관적이고 양적인 평가가 가능해지게 된다.

 

성인 ADHD에 대한 인식

ADHD 증상이 성인기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는 보고는 1960년대 말부터 있었으나, 사춘기가 되면 나아진다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성인기에도 ADHD 증상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1970년대에 점차 인식되기 시작한다. 

또한, 성인ADHD에도 엄격한 약물치료 연구를 통해 메틸페니데이트, 피몰린, 이미프라민, 아미트립틸린처럼 아동기 ADHD에 효과가 있었던 약들이 성인 ADHD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

 

사진_픽사베이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던 시대

ADHD 증상의 원인이 신경전달물질의 결핍 때문은 아닌지, 신경계의 미성숙 때문은 아닌지, 중추신경계의 과활동성이나 저활동성 때문은 아닌지 등 다양한 추측과 가설이 제기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시행된다. 뇌파, 피부 전도, 심박 수, 동공측정 등 당시 기술 수준에서 가능한 다양한 측정연구가 시행되었으나, 대부분은 방법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며 가설을 검증하는 데 실패하였다. 

1973년 폰티우스Pontius는 ADHD 증상이 전두엽과 기저핵 사이의 신경회로의 이상 때문에 행동을 계획하고 변경하고 조절하는 실행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가설을 세우게 되는데, 이 예언과도 같은 추측은 20년 뒤 연구를 통해 실제로 입증된다. 

 

미국과 유럽에서 ADHD를 보는 관점의 차이

1970년대 미국의 학자들은, 과잉행동 증상이란 원래 누구나 있을 수 있지만 좀 심한 상태로 보았으며, 이런 증상은 아동기에 흔하고, 뇌 손상이나 지적장애가 반드시 동반되지는 않으며, 약물치료가 효과적이고, 사실 증상의 핵심은 주의력결핍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ADHD로 진단되면 약물치료가 주로 선택되었다. 

이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과잉행동 증상이란 극단적으로 심한 경우를 의미하며, 매우 드물고, 반드시 뇌 손상(뇌전증, 뇌성마비, 지적장애)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ADHD로 진단되면 정신치료, 가족치료, 부모교육을 주로 시행하였다. 

이러한 진단기준, 유병률, 선호하는 치료방식에서의 차이는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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