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박준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개념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지 벌써 20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ADHD는 좌우 뇌의 불균형으로 생긴다’, ‘부모가 양육을 잘못해서 생긴다’, ‘ADHD라는 것은 원래 없었던 것인데,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만든 병명이다’는 등 다양한 오해가 존재하고 있다.

또한 ‘좌우 뇌 균형을 잡는 훈련이 필요하다’, ‘감각통합훈련을 해야 좋아진다’, ‘해독치료를 해야 한다’, ‘놀이치료를 해야 낫는다’는 등 다양한 방법들이 효과가 있다며 인터넷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_픽셀


이 시점에서 ADHD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는 

1)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함이며, 
2)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앞으로 4회에 걸쳐 ADHD의 역사를 소개할 예정이다.

 

그림1. ADHD 연표

 

1900년 이전

1775년 독일의 바이카르트Weikard가 기술한 의학 교과서에는 ‘산만하고 끈기가 없고 부산하며 충동적인 아동 및 성인’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의학 교과서 중 ADHD에 대한 최초의 묘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1798년 스코틀랜드 의사인 크라이튼Crichton도 오늘날 ADHD의 증상과 유사한 사례를 의학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이외에도 하슬람Haslam(1809), 미국의 러쉬Rush(1812), 독일 소아과의사인 호프만Hoffman(1865), 영국의 모슬리Maudsley(1867), 스코틀랜드의 정신과의사 클라우스턴Clouston(1899), 미국의 제임스James(1890), 프랑스의 부흐네빌Bourneville(1885, 1895), 베이커Baker(1892) 등 많은 이들이 오늘날 ADHD로 볼 수 있을 증상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이 증상들이 전부 ADHD라고 확신할 수는 없으며 다른 질환에서 일시적으로 ADHD와 같은 모습을 보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임을 알 수 있다.

 

그림2. 오늘날 ADHD와 유사한 증상을 기술한 크라이튼Alexander Crichton(1763-1856)의 저서 표지

 

1900년대 초반

현재의 ADHD에 해당하는 사례를 최초로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의사는 1902년 스틸Still일 것이다. 그는 당시 43명이나 되는 상당히 많은 사례를 상세히 기술하였다.

기술된 증상을 살펴보면, 집중력 유지의 어려움, 부산함, 공격성, 반항적 태도,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습, 자제하기 어려움, 규칙을 지키지 않음, 즉각적 만족을 추구함, 벌을 받아도 계속 반복함, 도덕적 자제력의 결함, 지능이 낮은 경우가 많음, 틱, 학습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흔함, 상당히 오래 유지됨, 가족 환경이 혼란스러움 등, 현대 ADHD의 병리 현상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확한 묘사를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증상의 기저에 무엇인가 공통되는 신경학적 결함이 있으리라 추정하였다.

 

1900년대 초는 인간의 행동에 있어 정신과 뇌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류가 최초로 이해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특히 행동상의 문제는 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 원인일 것이라고 보는 정신분석적 관점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이론이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의학적인 연구기술이 전혀 없었으며 모든 병의 원인을 심리적, 가족적, 환경적 맥락에서 찾아보고 이해하려 애썼던 시대였기에, 지금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이상으로 생기는 생물학적인 원인의 질환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조현병조차 그 당시에는 ‘가족에게서 모순된 메시지를 받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ADHD 역시 부모가 잘못 키워서 된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에 따라 ADHD 아동을 둔 부모는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비난과 자책감에 시달렸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림3. ADHD 증상을 의학 교과서에서 가장 정확하게 최초로 묘사한 스틸George Frederic Still(1868-1941)

 

뇌염 유행의 시대

1917-1918년에 걸쳐 미국에서는 뇌염이 널리 유행했다. 뇌염을 경험한 수많은 아동에게서 인지적, 행동적 후유증이 수없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뇌염 후 행동문제가 발생했으니 분명히 뇌 손상의 결과로 나타난 것일 텐데, 그 증상이 산만, 충동성, 부산함 같은 현재 우리가 ADHD 증상이라 부르는 증상과 동일하였다. 이 사례들을 보면서 ADHD 증상들이 심리적 원인 때문이 아니라 뇌의 문제 때문에 나타날 수 있다는 인식이 천천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뇌 손상 증후군의 시대

지금은 우리의 생각, 기억, 감정, 욕구 등 모든 정신적 활동이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1920-1930년대만 해도 마음과 정신이 우리의 몸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출생 시 뇌 손상, 뇌염, 홍역, 납중독, 뇌전증, 뇌성마비, 두부 외상으로 인한 뇌의 손상 등 다양한 뇌의 외상과 질환이 여러 정신적, 행동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들이 수없이 입증되면서, 뇌라는 기관이 행동 증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여러 기질적인 뇌 질환과 인지, 행동의 문제들을 낮은 지능, 학습장애, 행동문제 등으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당시 원숭이 전두엽 절제술을 한 후의 증상이 ADHD 증상과 놀랍도록 유사함을 발견하면서, 전체 뇌 중에서도 특히 전두엽이 ADHD에서 핵심적인 위치일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산만함, 부산함, 충동성은 ‘부모가 잘못 키워서’라는 심리적 원인론이 득세하고 있었다.

 

약물치료의 시작

1940년경 브래들리Bradley는 ADHD 증상을 보이는 아동들을 연구할 목적으로 기뇌촬영pneumoencephalograms을 했다가, 부작용으로 두통을 자주 경험하였다. 이 두통을 치료할 목적으로 벤제드린benzedrine(성분명: 암페타민amphetamine)을 사용하였는데, 뜻밖에도 아동의 행동문제와 학습능력이 현저하게 호전되었다. 이를 통해 브래들리는 ADHD에 자극제(각성제)가 치료적일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발견하게 된다.
 

그림4. 자극제가 ADHD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브래들리Charles Bradley(1902-1979)


현재 국내에서도 널리 처방되고 있는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역시 자극제이다. 메틸페니데이트는 1944년 이탈리아 화학자인 파닛존Panizzon이 스위스 제약회사인 시바CIBA에서 근무할 당시 처음 합성하여 독일과 스위스에는 1954년에, 미국 식품의약처(FDA)에는 1955년에 승인되었다.

 

1950년대

나이 든 노인이 갑자기 좌측 팔다리가 마비된다면 우리는 오른쪽 대뇌에 뇌경색이 왔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는데, 이처럼 특정 증상만 봐도 뇌의 어느 부위에 이상이 생겼을지 예측하게 도와주는 증상들을 국소 신경학적 징후Focal Neurologic Sign라고 부른다.

ADHD와 관련된 의학적인 증거들이 점차 쌓여가면서 이제 의학계에서는 ADHD 증상에 대해 ‘위치를 특정하긴 어렵지만, 분명 신경계 어딘가에 병이 생겨서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하기 시작하였고, ADHD를 가벼운 신경학적 징후Soft Neurologic Sign라고 부르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ADHD는 당시 ‘최소 뇌 손상minimal brain damage’, ‘최소 뇌 기능 장애minimal brain dysfunction(MBD)’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또한, 이 당시부터 미국에서는 ADHD 증상이나 학습의 어려움을 겪는 아동에게 특수교육을 제공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1952년 미국 정신의학계는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와 치료방법 개발을 위해서는 질환 개념 및 용어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s(DSM)를 만들기 시작한다.

 

1960년대

뇌 손상의 증거가 뚜렷하지 않은데도 증상이 비슷하다고 무조건 ‘최소 뇌 기능 장애’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점점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최소 뇌 기능 장애’라고 부르는 상태가 명확한 정의 없이 애매하게 광범위한 증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게다가 경과도 매우 다양하며, 뇌가 손상되고 나서 ADHD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보다 뇌가 손상된 증거가 없는데도 ADHD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차 ‘최소 뇌 손상’, ‘최소 뇌 기능 장애’라는 용어의 사용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원인을 가지고 병명으로 사용하기보다, 관찰 가능한 증상을 병명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강해지면서, 1968년 진단 및 통계편람 2판에서는 기존의 최소 뇌기능장애를 언어장애, 학습장애, 아동기 과잉행동 반응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ADHD의 원인을 뇌 손상 때문이라기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뇌 기능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기 시작했으며, ADHD의 가장 핵심적인 증상은 과잉행동이고, 예후는 비교적 좋아서 사춘기를 지나면 대체로 낫는다고 보았다.

치료방법으로는 단기 약물치료, 정신치료, 자극을 최소화시킨 교실환경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ADHD 아동에게 과도한 훈육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처럼 과도한 훈육 때문에 ADHD가 된다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었다.

 

그림5. ADHD는 1968년 진단 및 통계편람 2판에서 처음으로 ‘아동기 과잉행동반응’이라는 병명으로 등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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