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제 오래된 고민을 여기서 나누고 싶어요.

저는 항상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원래 예민한 성격이라, 제가 싫은 건 남에게도 하고 싶지 않아서 대하는 행동이나 말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연애를 할 때나 친구 관계에 있어서, 다정하고 세심한 성격이라는 평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제가 신경 쓰는 것만큼 저를 신경 써주지 않고, 저를 부당하게 대할 때도 있습니다. 그게 나는 너무 억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마다 저는 저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나 며칠 밤을 그 순간을 곱씹으며 보냅니다.

주변과 비교해서 딱히 제가 무시받을 만한 요소를 갖춘 것도 아니라,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 평소 남이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에 딱히 예민할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날 무시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당황하고 놀랍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전혀 그런 의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왜 자꾸 상대의 행동을 무시로 받아들이게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적 가정에서 부모님의 불화로 성격이 많이 어두워지면서 사회성을 갖추지 못했고, 그 결과로 교내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데 혹시 그 영향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가끔 폭력적인 사람들을 티브이에서 보면, 항상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하며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는데.. 저도 그런 사람과 같은 부류인 건지 두려울 때도 있어요. 

대체 왜 제 마음속에서는 자꾸 '무시'라는 게 떠다닐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 때문에 자주 불편하신 것 같네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해 판단할 때,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판단에 자신의 주관이 물들거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요. 즉, '오답'도 만만찮게 많다는 것이지요.

잠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길을 걸어가다 아는 친구를 마주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더니, 그 친구가 본체만체하고 가버리는 상황을 떠올려 볼까요? 자신에게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요? 아마 질문자님처럼 화가 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 이유는 상대의 행동을 무시를 당했다고 여긴 탓이겠지요.

하지만, 모두 같은 상황에 같은 반응을 보일까요?

어떤 이는 불안할 수도 있고(‘내가 뭘 잘못했나..’) 혹은 우울해질 수도 있죠(‘나는 쟤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쟨 아닌가 보구나’).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고요(‘바쁜 일이 있나 보네 or 나를 보지 못했나?’).

같은 상황을 놓고 볼 때에도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현재 느끼는 감정 반응이 상황 의존적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그 해석은 성장과정 동안 다듬어진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의 시각(스키마, schema)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다만 우리는 상황에 대한 해석이 다분히 자동적이고 습관적인 탓에, 이런 차이를 인식하기보다 상황 탓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인지치료 이론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동적이고 습관적인 해석을, '자동적 사고'라고 칭합니다. 

 

도표_신재현

 

자동적 사고가 오답에 가깝다면, 즉 왜곡된 상태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외부의 자극들도 왜곡된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당연히 감정도 더 많이 흔들릴 수밖에요. 따라서 질문자님께서 감정이 많이 출렁이거나, 반복적으로 불쾌감이 드는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오답'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표정이나 행동만으로 타인의 마음을 섣불리 추측하는 것, 혹은 특정 사건에 대해서 내 탓으로 돌리는 행동, 모든 일을 극단적인 흑과 백으로 나누는 흑백 논리 등이 대표적인 생각이 만들어내는 오답입니다. 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대해 나도 모르게 오판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기록지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네요.

타인이 나를 무시한다는 시각은, 스스로 자신을 열등감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가정의 불화, 따돌림 등이 그 시각을 만들어내고 또 굳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겠지요. 무시당한다는 불쾌감을 이야기하셨지만, 그 이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여러 부분에 영향이 있는 건 아닌가 염려되기도 합니다.

자동적 사고는 스키마에서 기인하고, 그 스키마를 바꾸는 데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태도는, 자신이 이전처럼 감정에 휩쓸려 판단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거리를 두고, 상황의 여러 면을 살펴보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이전과 다른 건강한 판단, 행동, 사고를 선택할 여지가 생길 겁니다. 필요하다면 이에 관련된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추천할만합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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