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지속형 조현병 치료제,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줄까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조현병은 만성적이고 재발률이 높아 꾸준한 치료를 요하는 질환이다. 조현병 환자의 특성상 재발이 반복될수록 치료 관해(remission) 비율이 낮아지는데, 이러한 재발에 있어서 낮은 약물 순응도가 주요 인자로 알려져 있다.

낮은 약물 순응도와 잦은 재발의 문제는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있어 중요한 이슈다. 약물에 대한 순응도가 떨어지면 약물 복용을 중단하게 되고 재발로 이어지면서 가족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결국 환자의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동안 정신과의사, 제약회사 등 의료계에서는 조현병 치료법의 패러다임에 심리치료적, 약물적 접근 등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환자가 견딜수있는 최대 용량을 쓰는 것이 예전의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환자의 안전에 최선의 가치를 두어, 기존 제재의 부작용을 개선하고 환자의 사회적 기능 회복에 도움을 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듯 기존 약물의 낮은 순응도로 인해 개인적, 사회적 비용의 손실이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고 조현병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지속형 제재를 사용하게 되면 순응적 문제 해결할 수 있고, 정해진 용량을 정확히 주사하므로 부분 순응의 문제도 없다. 의사의 입장에서도 환자의 순응도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조현병 치료의 핵심 약물인 항정신병 제제(antipsychotics)들 중 일부 제품은 ‘장기지속형 주사제(Long-acting injection)’로 출시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근육주사로 투여된 이후에 약물이 서서히 유리, 대사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체내 일정 농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약물을 매일 먹으면서 체내 일정 농도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같은 효과를 근육주사 한번으로 발현하게 된다. 쉽게 말해, 1달에 한번 씩 주사만 맞으면 매일 같이 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조현병 주요 치료 약물인 비정형 항정신병 제제의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이미 도입된지 20년 가까이 되고 있으며, 그 효용성과 안정성을 인정받고 임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최근까지는 약물 순응도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잦은 재발을 겪은 만성 조현병 환자들에게만 주로 사용되어져 왔다. 따라서 대부분 한 가지 약제로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해 둘 이상의 항정신병 제제를 사용하다보니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경구형 약물과 함께 사용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이처럼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사용이 늦춰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용량조절의 어려움과 환자들의 거부감일 것이다. 약물을 매일 환자 스스로 먹으면서 부작용과 효과를 즉각적 조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경구약에 비해, 주사제는 의사가 처방한 용량을 몇 주에 한번 주사 맞고 나면 일정기간동안 약물 용량을 조절할 수도, 부작용이 발생해도 즉각적인 처치가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불규칙적인 약물 복용으로 증상이 재발해 2번 이상 입원하게 된 환자에 한해서만 보험급여를 인정해 주었던 의료보험규정도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사용을 제한하는 큰 원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물 순응도 저하로 인한 재발과 악화가 이미 반복되어온 만성 조현병 환자 이외에도, 처음 진단된 초기 조현병 환자에서 또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를 이용한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주목 받고 있다. 작년 유럽 정신과학회지(Europian Psychiatry)에 실린 논문에서는 초기 조현병 환자에서의 장기 지속형 주사제가 조현병의 주된 양성증상(환청, 망상 등)의 치료 뿐 아니라, 장기적인 음성증상이나 사회적 기능 악화에도 경구제제보다 더욱 효과적이라고 보고했다. 단순히 환청이나 망상 등으로 인한 불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지능력과 사회적 기능 수준을 점차 무너뜨리는 조현병의 특성상, 조현병 초기의 이러한 음성증상(사회적 철퇴, 감정둔마 등)에 대한 예방과 치료는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현병은 국내 유병율이 0.7~1%에 달하는 높은 유병율을 보이고 있다. 오랜 유병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사회적 기능 악화와 이에 따른 노동력 감소 등으로 조현병에 의한 사회 직간접적인 비용도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만큼 조현병은 정신과적 질환 가운데 가장 생물학적-약물적 치료 의존도가 높은 질환인 점을 고려한다면, 조현병 치료제 개발이나 상용화 여부가 가져올 사회적 비용절감의 효과 또한 상당한 수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약 만 잘 먹어도 절반은 치료한 겁니다” 라며 ‘약 잘 먹기’에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던 환자, 보호자, 의사에게 ‘장기 지속형 주사제’의 적극적 사용이 그 한줄기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약물 유지에 급급했던 조급한 마음을 한숨 돌리고, 조현병 환자의 상처 받은 마음속을 좀 더 들여다 볼 여유를 가져다주면서 말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