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에서는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에 대한 사상 최초의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학계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U of SC


지난주 영국 브라이튼에서는 「대학원생 연구자의 정신건강과 웰빙에 대한 1차 국제회의(the Fir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Mental Health & Wellbeing of Postgraduate Researchers)」가 열렸다. 이틀 동안 열린 회의의 목적은 '간단하고 시급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 내용인즉, "수많은 박사과정 학생과 박사후 연구원들이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정신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맥상은 지난 몇 년간 수행된 연구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벨기에 플랑드르의 박사과정 학생그룹에 소속된 한 연구자에 따르면, "그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은 고등교육을 받은 일반인들보다 두 배 이상 높으며, 그들 중 1/3이 정신장애로 진단받았거나 정신장애의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한다. 또한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약 3/4 이상이 평균 이상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한다. 『Nature』가 이 문제를 취재하는 동안, 독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좌절과 고통에 관한 개인적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이러한 이슈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3월 '초기 경력자들이 웰빙을 위협받는 실태'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17개 프로젝트가 잇따라 시작되어, 대학이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150만 파운드(미화 200만 달러)의 기금이 그러한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기금 모금은 교육부 산하 「고등교육기금운영회(Higher Education Funding Council for England)」에서 시작되었으며 뒤이어 「연구 및 혁신기금(UK Research and Innovation)」이라는 준자율적 비정부기구가 동참했다. 「Nature Research」가 주관한 이번 브라이튼 회의에서는 17개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많은 프로젝트들의 현황과 문제점을 다루고 향후 전망과 대책을 논의했다.

한 가지 문제점은, 데이터가 불완전하고 종종 특정 대학이나 지역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데이터가 드물고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신건강 이슈의 심각성'과 '대학원과 일반적인 학계환경의 어떤 측면이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더욱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수행된 연구에서, 명백히 우려되는 부분이 일부 드러났다. PhD와 박사후 연구원의 계약기간이 짧다 보니, 고용주와 감독자는 갑질을 일삼으며 주의의무(duty of care)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학계에서는 종종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미화(美化)하고 포상(褒賞)하는 경향이 있다. 선배 과학자들은 '든든한 지원 시스템'과 '근엄하고 독립적인 평가자'라는 역할을 적절히 병행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균형추가 후자(평가자)로 쏠리다 보니, 학생들은 자신의 전문적 경력이 손상될 것이 두려워 잠재적인 정신건강 문제를 털어놓지 못한다.

 

해결책은 먼 데 있지 않다. (1) 감독자들은 정신건강 문제에 직면한 연구자들을 확인·지원·이해하기 위해 포괄적이고 의무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 (2) 학생들은 한 명 이상의 감독자를 보유함으로써, 필요할 때 자신의 경력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3) 대학 측은 학부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훌륭한 정신건강 서비스의 수혜대상을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원으로 확대해야 한다. (4) 학계는 면모를 일신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갈망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존중해야 한다.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회의가 열렸다는 것은, 학계가 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고무적인 징후다. 그러나 미래의 세대를 기득권자의 갑질이라는 추한 관행(ugly tendency)으로부터 보호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Nature 569, 307 (2019)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1492-0

 

글쓴이_양병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업에서 근무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 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매일 아침 최신 과학기사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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