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피의자의 안모 씨가 과거 2015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전주 시내 정신병원에서 진료받았으나 최근 진료기록은 없음이 밝혀지면서, 치료받지 않는 조현병 환자 관리 문제가 다시 이슈화 되고 있다. 또한 폭력 위험이 불분명한 처음 발병한 조현병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도 폭력으로 인해 국립법무병원(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고, 안모 씨의 기행으로 최근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던 터라 관리의 허술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사진_픽사베이


강남역 사건, 양산 아파트 외벽 근로자 살인사건, 최근 강북삼성병원 임 교수님 사건까지 치료받지 않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사회에 늘 큰 충격을 준다. 이 충격의 핵심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치료받지 않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있을지도 모르고, 나 또는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라는 공포이다.

사회의 이런 공포는 정신질환자 전체에 대한 공포로 바뀌고, 이 공포는 다시 분노로 변하여, 정신질환자는 모두 격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분노는 불꽃과 성질이 같아 태울 것을 모두 태우면 사그라든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막지 못한 주체로 지목받는 경찰은, 안모 씨 개인을 최대한 주목받게 하려 노력하고 있고, 이제 조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 칼럼에서도 수차례 지적했듯이 이는 정신질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예방하지도 못한다. 치료받지 않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주된 이유는 망상과 환청 때문인데, 망상과 환청이 심한 상황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강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을 더 강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그저 상처 받은 대중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위로받은 대중의 분노가 정신질환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뒤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의 분노를 모두 태워버리면, 복잡하고 많은 예산이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덤이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질책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이 이전 출동에서 안모 씨의 정신질환을 식별하고 응급입원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담당 경찰이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 응급입원 시스템 속에서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경찰도 그 능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현재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식별하고 정신병원에 응급입원을 시키기 위해서는, 물리적 폭행 같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위험한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또한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담당 관내에 응급입원이 가능한 정신병원이 없다면 입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신병원이 있는 타 지역 경찰에게 환자를 인계해 주는 시점에서는 보통 명백한 위험성을 보이지 않으니, 타 지역 경찰이 판단하기에는 응급입원을 시킬 사안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타 지역의 정신병원까지 환자를 데리고 담당 경찰 두 명 이상이 가기에는 근무 여건상 불가능하다.

 

만약 한 헌신적인 경찰이 스토킹과 욕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정도의 중증 정신질환자를 정신병원에 응급입원을 시키겠다고 데려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정신병원에서는 응급입원을 시킬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응급입원은 말 그대로 누가 봐도 명백하게 위험한 사건인 경우, 즉각적인 격리가 필요해 시행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가족이 함께 병원에 온다면, 보호의무자 동의입원은 할 수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다시 중증 정신질환자를 데리고 가족에게 인계하며 병원에 방문할 것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가족이 협조적이지 않다면 민원도 각오해야 한다. 명백한 응급상황이 아닌데 환자를 강제로 끌고 병원에 간 것이니 말이다. 물론, 함께 사는 가족이 없다면 가족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응급입원을 시킨다 해도, 이런 경우에는 응급입원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72시간뿐이다. 그러니 3일 뒤에는 다시 돌아와 지역 주민과 담당 경찰을 괴롭히게 된다.

정리하면, 운이 좋으면 고작 3일간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으며 운이 나쁘면 민원을 받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정신병원까지 오가는 시간과 노력, 그동안 쌓이는 업무가 추가된다. 문제는 관내에 이런 정도의 정신질환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정신복지체계의 구성 요소인 환자, 의료진, 경찰, 정신복지센터, 가족 각각 모두가 무능력하고 양심이 없는 집단처럼 보일 것이며, 꽤 오랫동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주어진 환경 자체가, 그 환경을 만드는 규정과 법이 엉망인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규정과 법이 만들어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희생 속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 만약 정신질환자를 거리에서 마주치는 경찰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아래 동영상 링크를 확인하세요. 

 

► 경찰이 왜 조기에 개입할 수 없었나?

 

► 환자는 왜 치료받을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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