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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신질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1.02 09:20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8년 12월 31일, 임 교수님의 마지막 외래 진료는 퇴원 이후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조울증 환자였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그 환자는 자신의 주치의를 살해했습니다.

현재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범인은, 살해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연성이 없는 공격성과, 오랜 기간 치료를 받지 않은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 환자이고 이전에 입원 치료까지 받았다는 점을 볼 때, 현재 양극성 정동장애 조증 삽화이며, 망상이 동반된 정도로 심한 상태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렇게 환자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올해에만 수차례 반복되었고, ‘응급실 의료인 폭행 가중 처벌법’이 지난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기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금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고 임 교수님에 대한 애도와, 사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신질환자가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남역 여대생 살인,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에 의한 경남 한 아파트 외벽 작업 근로자 살인 등 지난 사건을 보면 모두 치료를 받고 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가 정신과 주치의라는 점이 다를 뿐,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라는 공통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한 의료진은,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를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질환자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와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료 현장에서, 모든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를 의심하고 경계할 수는 없습니다. 치료의 시작은 ‘의료진이 환자를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환자도 의료진을 믿기 시작하고,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치료가 시작됩니다.

상담치료만 이런 신뢰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약물치료 역시 신뢰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쉽게 말해, 환자들은 자신이 믿지 않는 의사의 약은 먹지 않습니다. 처방을 따른다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제안을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신뢰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진_픽셀


그래서 이 사건이, 정신질환자와 함께하는 의료진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로써는 환자에 의한 실제적인 위협과, 치료를 위해 환자를 신뢰해야 하는 부분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신도 언젠가 경험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많은 의료진이 슬픔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표면적인 피해자는 임 교수님 단 한 명이지만, 실제로는 수백 배의 간접적인 피해자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임 교수님 곁에 있던 분들은 물론이고,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및 관련 의료진의 진료는 위축될 것이고, 그로 인한 악영향을 환자도 받게 됩니다.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담과 약물치료 모두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치료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환자의 인생과 재정에 악영향을 주게 되죠. 의료진 역시 불필요한 처치와 경계가 늘어나고 이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어 효율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 임 교수님이 담당하시던 수백 명의 환자들 역시 큰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됐으며, 원치 않게 다른 주치의를 찾아 떠나야 합니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임 교수님을 의지하던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환자의 손에 교수님을 잃게 된 충격은 그분들의 병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국에 있는 정신질환자 당사자 역시 피해자입니다. 차가워진 대중의 시선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울증 환우 커뮤니티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크게 분개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도, 그리고 그들 곁에 있는 우리도, 모두 안전할 수는 없는 걸까요?

 

(링크) 정신과 의료진은 넥타이를 하지 않습니다. (2편)

(링크) 강북삼성병원 임교수님 사건의 재구성 (3편)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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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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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 2019-01-03 07:35:09

    환자와 치료진 모두 피해가 된 사건이 아닐까 싶네요..
    저도 한 환자로, 어제 외래 다녀오면서 조심스럽더라구요.
    평소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잘 이야기 하지도 못했구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ㅠㅜ   삭제

    • 환자 2019-01-02 19:10:20

      그 사람은 왜 아직도 묵묵부답일까요. 사회에서 병원에서 그 사람에게 뭘 더 어떻게 해야했을까요. 같은 환자 입장이지만 마음이 복잡하고 그 사람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정작 그 사람에게 상처줬을 사람들은 따로 있을텐데 그 사람이 마음을 열기만 했다면 그사람을 도왔을 가능성이 컸던, 선하고 만만한 사람에게 그것도 1년만에 찾아와서 공격한 것 같아서요. 그 선생님의 환자들 입장에선 보호자가 살해당한 상황인데 제 주치의가 그런일 당하면 정말 힘들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선생님들.   삭제

      • 옳은 말씀 2019-01-02 10:02:48

        옳은 말씀이십니다. 결국 이것도 서로 간의 신뢰가 중요한 일인데, 결국 깨지게 된 것이니까요. 다만 저는 병을 앓는 입장에서 이것이 정신질환자 전체에 대한 낙인으로 찍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입장이 나와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과연 이번 사건으로 하여금 저와 같은 환자들에 대한 낙인이 다시금 굳어지게 되는 결과로 작용하여 이와 같이 또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아울러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가해자의 엄격한 처벌과 함께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 세상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삭제

        • 슬프다 2019-01-02 09:31:58

          맞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큰 고통이지만 이 또한 병으로 인한 것이며 혐오가 아닌 성숙으로 발전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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