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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가려워도 덧나지 않게 그냥 두듯 - 너무 아픈 슬픔이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기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3.09 10:15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이 울음을 멈추지 않을 때가 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랠 때처럼, 사탕을 쥐어주듯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왜 우냐며 마음을 캐묻거나, 이젠 그만 울라며 윽박질러 보기도 하지만 아이 같은 마음의 울음은 더욱 커진다.

멈추지 않는 슬픔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슬픔을 마주해야 할까.

 

기쁨과 슬픔은 생명의 번영을 위한 신호였을 것이다.

행복은 생존 혹은 번식에 필요한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이며, 반대로 슬픔, 불안,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이러한 요건이 결핍되거나 박탈되었을 때 울리는 경보다.

 

행복은 안주, 안식과 연결된다.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른 인간은 배고픔, 두려움, 추위가 다시금 엄습할 때까지는 단잠에 빠졌을 것이다.

반대로 슬픔, 초조는 변화로 이어진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음을 맞이하거나, 나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개체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나선다.

충분한 안식, 행복이 찾아올 때까지.
 

사진_픽사베이


오직 행복만 주어진다면 개체는 어떻게 될까?

이는 매혹적인 저주다.

행복감이 끝없이 지속되는 개체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끼 식사의 배부름이 며칠이고 지속된다면 우리는 굶어 죽을 것이다.

안락한 보금자리의 만족감에 끝없는 휴식만을 취한다면 포식자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행복은, 개체에 유리한 행동을 촉진하도록 주어져야 하나 과하지 않아야 하고, 너무 쉽게 주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에 비해 슬픔은 어떨까.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생존에 중요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이 두 경우 모두에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내일 혹은 몇 달 뒤 이내 굶어 죽을 것이 두려운 이는 먹이를 찾거나 씨앗을 심는다.

누군가가 굴러 떨어진 낭떠러지를 볼 때마다 그때의 충격과 그 공포를 떠올리는 개체는 그곳을 회피하여 안전해진다.

슬픔, 두려움은 세세할수록, 구체적일수록 효과적이다.

 

따라서 행복은 모호하고 일시적이도록, 슬픔은 자세하고 선명하며 또 오래 마음에 남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렇다면, 당신의 슬픔이 너무도 선명하고, 불안이 지나치게 날카로우며 절망이 깊다는 것은 당신이 미숙하거나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저 당신이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계속 삶을 이어가기를 원한다는 증거일 뿐이다.

 

지속되는 행복이 앞서의 이유로 위험할 수 있다면, 지속적인 슬픔은 어떨까.

비록 슬픔이 행복보다 더욱 마음에 남아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촉진하도록 발달해 왔더라도, 이 역시 극단적일 땐 문제를 야기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도핑과 같다.

단기간엔 개체의 분발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체를 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인 우울함, 불안함을 생각해 보자.

이를 처음 마주한 인간은 처음에는 오히려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수없이 고민을 하여 이를 벗어날 만한 일에 매진하기도 하고, 자기 발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우울과 불안은 오히려 한 사람을 멈춰 세운다.

지나치게 슬퍼서, 초조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삶을 중단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체는 어떠한 행복도, 불행도 영원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져 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의 쾌감도 첫 한 입이 지나면 점차 무뎌진다.

경제적으로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신경 생리적으로는 불응기로 표현된다.

아무리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의 슬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받아들여진다.

이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우리의 신체, 마음이 만들어져 온, 그리고 삶이 흘러가는 원리다.
 

사진_픽셀


그런데 유독 슬픔만은 그 원리에서 벗어난 듯한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고 더욱 아파지는 느낌, 도무지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분명 아픈 일일수록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행복은 그리도 쉽게 또 허망하게 사그라드는데, 왜 어떤 슬픔은 갈수록 더욱 날카롭게 또 절절히 느껴지는 걸까.

 

지금 힘든 마음속에 있는 상태라면 더욱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실은 슬픔도 행복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두면 점차 줄어간다.

역설적으로, 행복을 곁에 두려 하고 슬픔을 밀어내려는 노력이 때로는 슬픔이 지속되려는 원인이 된다.

 

이게 말인지 소리인지.

찰나의 쾌락, 순간의 행복을 영원히 손에 붙잡으려 하고, 어쩔 수 없이 깃드는 슬픔, 절망을 어떻게든 밀어내려 하는 것, 이것은 본능이 아닌가?

맞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것, 밀어낼 수 없는 것을 밀어내려 하는 것, 이 모두가 부정적인 감각을 ‘한 번 더’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첫 번째겠지만, 슬픔을 밀어내고픈 마음을 조금 더 돌아보자.

그 마음 아래에는 슬픔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 지금 내가 잘못되었음을 의미하는 증거, 비정상적인 상태 등으로 간주하는 생각이 숨겨져 있다.

슬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이미 너무 흔하게 사회에 범람한다.

힘들어도 괜찮아.

때로 아플 수밖에 없는 게 삶이야.

하지만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살아가다 보면 당연히 슬플 수 있다는 명제를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슬픔을 그 자체로 문제로 간주하는 생각은, 스스로가 직접 더하는 슬픔 위의 아픔이다.

 

또한 슬픔을 밀어내려는 마음은, 교묘하게 스스로를 오히려 슬픔에 몰입하도록 인도한다.

힘든 마음이 어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 고통과 연관된 일들, 감정들, 이로 인해 힘겨워하는 내 모습이 한 번 더 마음에 떠오른다.

슬픔을 피하려 이에 대해 되새기는 일이 그에 관련된 생각들을 한 번 더 만들어내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죽음을 피하기 위한 두려움의 흔적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이에 대해 민감하도록 만들어졌다.

밀어내고픈 바람일지라도, 슬픔을 떠올리다 보면 다시 한번 슬픔이 세세해지고 선명해진다.

 

아파본 이는 안다.

역설적으로 고통을 그대로 두고, 오늘의 삶에 몰두할 때 고통이 가장 덜하다는 것을.

가장 힘들고 슬플 때는, 그것을 밀어내려는 노력이든 아니든, 가만히 앉아 그 고통에 대해 계속 떠올리고 되새길 때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을 두어야 한다.

무기력하게 당한다거나, 포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기다려 주는 것이다.
 

사진_픽셀


밀물이 들어오고 있다.

바다 곁에 선 그는, 처음에는 당황한다.

적셔오는 차가운 감각이 불쾌하다.

밀려드는 파도를 팔로 막아도 보고, 발로 걷어차 보기도 한다.

다가오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거나, 젖어드는 두려움을 통제하고자 오히려 그 속으로 뛰어들어 보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파도는 항상 그의 목 아래 까지를 적시다,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이해한다.

때가 되면 들어오고, 나가는 파도가 있다.

‘죽일 듯이 달려드는’이라는,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과는 무관하게, 파도는 가슴과 목 사이, 그 언저리의 높이로 적셔들다 다시금 빠져나가고는 했다.

 

언제부턴가, 그는 드는 물에 맞서기를 멈추었다.

파도는 여전히 찼지만, 그와 상관없이 파도가 밀려들 때쯤 떠오르는 햇살이 아름다웠다.

철이 되면 날아드는 새들과 처음 인사를 하고, 이따금씩 흐르는 눈물을 바닷물로 씻어냈다.

그가 포기했다거나, 살아갈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이해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들고 나는 파도와는 상관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살아있기에 밀물의 서늘함을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햇살의 따뜻함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과 시간 속에 아문다.

살점이 떨어지는 아픔이 없다면 가장 좋겠지만, 살아가다 보면 몸과 마음에는 생채기가 남게 마련이다.

치유에는 딱지가 내려앉는 시간, 딱지 속에서 새살이 차오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가려워 자꾸만 긁다 보면, 딱지가 벗겨지고 새로운 상처가 쌓여 흉터가 되기도 한다.

가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때로 몸과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이 기쁨과 가깝고 고통과 멀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혹 지금 슬픔의 한가운데서 너무도 힘들다면, 그 슬픔만큼만의 고통만 느끼며 기다리기를 권해 본다.

슬픔을 밀어내려는 노력이 그 아픔을 더 선명하게 만들지 않도록 기다려 주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작은 행복이 당신을 위로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몇 번의 눈이 내리고 싹이 돋은 뒤에, 불현듯 마음 위 딱지가 떨어지고 돋은 새살의 감촉을, 당신이 진심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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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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