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마음속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어디론가 숨고만 싶을 정도로 부끄러울 때가 있고, 극심한 분노로 누군가를 해치고 싶을 때도 있다.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없고, 못 보면 죽을 것만 같은 사람과도 헤어질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인생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생기면 자동으로 다시 시작하는 게임이 아니다.

실수로 웃음거리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하고, 아무리 화가 나 눈앞의 그를 한 대 때리고 싶더라도 참아야 한다.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거란 슬픔을 안고 살아가다 보면 그 아픔을 보듬어줄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오히려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을 견디고,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고비를 넘으며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삶이다.

 

때로 한없이 냉정한 삶에 비해 우리의 마음은 여리다.

쉬이 상처 입고 좌절한다.

심하게 다친 몸이 움직일 수 없듯, 아픔이 지나치면 마음이 멈춘다.

지친 마음으론 어떠한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거나, 심하면 삶마저 멈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보호한다.

마음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다.
 

사진_픽셀


예를 들어, 연인과 크게 다투고 그가 미워졌다고 하자.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 즉 그를 싫어하고 싶은 마음과 그를 싫어하면 안 되는 마음(그를 사랑하는 이유, 그가 좋은 사람인 이유들이 떠오르거나, 관계에 미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등)이 부딪치며 갈등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갈등을 느끼지 않아도 될까.

여러 방법 중 하나는 그의 탓을 하는 것이다.

연인의 밉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이러한 부분 때문에 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나, 외려 그가 모자라서 나를 먼저 미워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나 자신은 나쁜 사람, 미숙한 사람이 되지 않고도 그를 미워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이지만 내적 갈등을 외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이나 충동을 외부로 돌리는, 흔히 볼 수 있는 방어 기제인 투사(projection)의 예이다.

 

방어 기제는 매우 다양하다.

헤어짐의 슬픔을 대처하는 마음을 살펴보자.

이별의 슬픔이 너무 큰 나머지, 결별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아직은 헤어진 것이 아니라, 잘 화해하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거나(부정, denial), ‘어차피 일어날 이별이었을 뿐이다’라며 마치 감정이 없는 듯 사실에서 감정을 분리하여 고립시킬 수도(고립, isolation) 있다.

혹은 사랑의 의미, 결별과 삶의 연관에 대한 철학적, 지적 사유에 몰두하기도 하고(지식화, intellectualization), 길가의 돌멩이를 걷어차거나 두렵지 않은 상대인 가족, 친한 친구들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전치, displacement)

 

하지만 예시의 방법들로는 어쩐지 충분히 마음이 편해지진 않을 듯하다.

헤어짐의 슬픔은 미뤄둘수록 덧난다.

당장 힘들어 마음의 구석으로 밀어둔다고 해서 그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남 탓과 화풀이는 곁에 남은 이들도 지치게 한다.

실제로 방어기제는 그 성숙도에 따라 병리적, 미성숙, 신경증적, 성숙한 방어기제의 단계로 분류하는데, 방어기제가 충분히 세련되지 못하면 외려 더욱 곤란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숙한 방어기제란 어떤 것일까.

이는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마음의 역동, 이를테면 성적, 공격적 욕구나 슬픔, 두려움,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신과 타인을 위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도와주는 방어기제다.

달리 말하면, 나와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마음속 갈등이 나와 남을 위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방법이다.
 

사진_픽셀


성숙한 방어기제에는 타인을 도우며 스스로도 만족을 얻는 이타주의(altruism), 불편한 느낌을 스스로와 타인을 유쾌하게 하는 즐거움으로 대체하는 유머(humor),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며 미리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예상(anticipation), 본능적인 성적, 공격적인 욕구를 보다 사회적인 가치를 위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승화(sublimation)가 있다.

음, 다른 방어기제는 직관적으로 그 의미가 이해 가는데, 승화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와, 청소년의 성적인 충동이 춤과 운동으로 승화된다거나, 슬픔이 예술로 승화된다는 예시들이 문자적으로는 이해되었지만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학회 참석차 뉴욕에 갔었다.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같은, TV에서만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참 신기했지만 가장 감명 깊었던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쌍둥이 빌딩이 있었던, 911 테러 현장이다.

 

건물이 무너진 자리를 그대로 두었다.

가운데를 파서 회색 분수를 만들었다.

물은 솟아오르지 않고 눈물처럼 하염없이 아래로만 흐른다.

둘러싼 벽에는 희생자의 이름을 조각했다.

그게 전부다.

그 흔한 동상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은 비석 하나도 없다.

한 이름 근처에 쓰던 이의 온기가 남은 듯 붉은 손수건으로 감싼 흰 백합이 놓여 있었다.

이른 오후쯤 그 앞에 선 나는,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본 후에도 홀린 듯 그곳에 머물렀다.

 

수천 킬로 밖에서 온 이방인인 나는 그곳에서, 탓하지 않는 분노, 잊지 않겠다는 의지, 죽음과 무관한 사랑과 그래서 더욱 사무치는 그리움을 고스란히 느꼈다.

정치적 역학, 제국주의와 그에 대한 반동, 미국과 아랍 간 갈등의 역사 따위는, 한 가족의 예기치 않은 이별 앞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임도 깨달았다.

그 공간은 그곳을 사는 이들에게 이미 일상의 일부였다.

그들은 그 곁을 산책하고, 오늘의 행복을 충분히 느끼되, 결코 그날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에는 단호히 반대할 것이다.

먼저 떠난 이는 이따금 놓이는 백합으로 추억되고, 남은 자는 그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때 느꼈다.

아, 이것이 승화구나, 사무치는 아픔을 누구도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어느 누구도, 내가 겪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표현된 것.

혹 같은 아픔을 겪는 이가 있다면, 나의 아픔이 승화된 무엇이, 그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그리하여 너와 내가 오늘을 살게 하고, 오늘의 행복에 웃음 지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승화였구나.

 

문득, 과거의 한 이별과, 그때 듣던 노래가 기억났다.

예능 출연을 하며 유명해지기 전의 김연우가 부르던 이별 노래.

그때는 노래가 들린다기보다 마음에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때처럼 감명 깊진 않은 그 노래가 그때 그렇게 사무쳤던 것은, 누군가의 이별이 승화된 그 노래가 나의 슬픔을 대신 노래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진_픽셀


승화된 작품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본다.

보통 듣고 말 이별 노래에 나만 유독 눈물이 흐른다면, 그 안에서 내 이별이 보이기 때문이다.

불우했던 고흐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음악에 가슴이 사무친다면,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그와 나의 삶의 고뇌가 공명했기 때문이다.

911 테러 현장에서 가슴으로 울었던 건, 그 자리에 승화하여 응축된 그리움이 내 마음에도 닿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거나 한 권의 이야기를 지을 수 있다면 그 안에 당신의 갈등, 상처를 마음껏 풀어내기를 바라본다.

혹 나와 같이 평범하여 그러한 재능이 없다면, 누군가가 승화하여 엮어 준 아름다움에 위로받아도 좋겠다.

‘그도 나와 같이 아파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도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냈구나.’

그리하여 그도, 나도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번민이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살아보지 않아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왠지, 그곳의 그림과 음악이 주는 감동은 얕을 것 같다.

분명 우리의 삶에는 앞으로도 갈등이, 아픔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둘러보면 그 아픔을 먼저 겪은 이가 남겨둔 아름다운 승화의 결실이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또 다른 무엇으로 남아 있다.

한 곡의 이별 노래로, 삶의 고단함을 그린 그림 한 폭으로 위로받으며 삶을 살아내다 보면, 모를 일이다.

내게도, 지나간 아픔을 아름답게 남길 승화의 순간이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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