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쥐를 우울하게 만드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울증이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물학적 변화가 동반되는 질환임이 밝혀지고, 그에 맞는 약물치료가 개발됨에는 여타 의학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 모델 실험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질환의 유무, 증상의 여부를 영상학적 검사나 혈액검사, 조직검사 등을 통해 알 수 없는 정신과 질환의 특성상 동물 모델에서 정신과적 질환을 구현하는 것은 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쥐나 원숭이는 사람처럼 ‘우울해요’, ‘불안해요’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우울제의 효과를 시험해볼 수 있을 만큼 우울한 쥐를 만들기 위한 실험 방법으로 1977년에 Porsolt가 제안한 Porsolt test 라는 실험이 널리 쓰이고 있다. FST(Forced Swim Test)라고도 명명되는 이 실험은 쥐를 탈출할 수 없는 수조나 실린더에 넣는 방법이다. 쥐는 기본적으로 헤엄을 칠 줄 아는 포유류이지만, 천성적으로 물을 싫어해 물에 빠지면 필사적으로 헤엄쳐 나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실린더에 빠진 쥐는 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벽을 타오르거나 헤엄을 치려 발버둥을 치게 된다. 그러나 한동안의 노력에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쥐는 더 이상의 탈출을 포기하고 만다. 오랜 노력에 진이 빠지고 육체적 에너지가 부족해서 쉬게 됨이 아니라, 더 이상의 발버둥에 대한 의욕이 감퇴하고 마는 것이다. 완전한 무기력증에 빠진 쥐는 먹이를 충분히 먹고 휴식하였음에도 물에서 헤엄쳐 나오려하지 않고 둥둥 떠 있게 된다. 쥐는 마치 우울증에 빠진 사람과 같이 무기력해진다. 우울해지고 만다. 수조나 실린더를 사용한 방법 외에도 전기충격등을 사용한 다른 실험 방법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쥐를 우울하게 만드는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쥐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것이다.(Learned helplessness)

학습된 무기력감은 단순히 쥐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실제 임상에서 환자들의 우울증 발생을 설명하는 행동학적 이론의 골자이다. 의지와 행동의 동기를 빼앗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 무기력과 우울함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빠져나올 수 없는 수조가 되었건, 넘어설 수 없는 차가운 현실의 벽이 되었건 말이다.

 

얼마 전 한국장학재단 안양옥 이사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장학재단 사업에서 국가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무이자 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라며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고 발언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대학생, 청년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망언’이었지만 사회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젊은 층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부적절하고도 적나라하게 엿보인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싶다. 연일 뉴스라인과 SNS를 오르내리는 논란들의 핵심도 내리막길 경제에 올라타기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들의 투덜거림과, 그들의 머뭇거림에서 청년들의 무기력증을 짚어내는 기성세대의 눈초리 사이의 갈등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습된 무기력감의 모델에서 보여주듯, 의지의 부족이 늘 개인의 기질과 성품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에 보답하지 않는 환경, 꿈과 희망에 좌절로 보답하는 환경에서는 열정의 씨앗이 메마르기 마련이다. 탈출할 수 없다는 무기력을 학습한 쥐들은 이후에 탈출이 가능한 수조에서도 헤엄치기를 포기하게 된다. 좌절감은 우울감을 일으키고, 우울감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더욱 더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물들이면서 점점 더 아래로만 가라앉는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휘감기게 되는 것이다.

 

배고픔을 이겨내는 헝그리 정신, 아픔을 청춘의 연료로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은 물론 절망의 현실이 보여주는 막막한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이들이 벽에 부딪혀 쓰러지고 마는 현실, 벽을 뛰어 넘었던 동료들마저 하나같이 도로 추락하는 현실에서는 그 열정의 에너지가 우울감에 짓눌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탈출할 수 없는 수조에서 무기력감을 학습한 쥐들도, 우울증을 치료하고 난 뒤에는 이미 수조를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우유 통에 빠진 쥐가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헤엄쳐, 결국 우유가 치즈로 굳어 탈출할 수 있었다는 어느 우화처럼, 절망을 벗어던지는 탈출의 연료는 분명 역경에 굴하지 않는 ‘열정’이다. 그러나 이제 막 그 역경에 지쳐가는 젊은 영혼에게 던지는, 기성세대의 공감 없는 핀잔들은 청년들의 깜박이는 열정마저 짓밟아 꺼뜨려 버릴지 모른다. 그보다 진정 그들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지치고 얼룩진 마음으로 비쭉대는 몸짓에 건네는 진심어린 공감의 손길과 위로일 것이다. 뜨거운 젊음의 열정이란 연료는 차가운 비난보다는, 따뜻한 공감에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마련인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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