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집에서는 종알종알 수다쟁이인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고요?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우리 아이.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하고 있으려니 생각했던 엄마는 학부모 상담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인데 말이다.

 

선택적 함구증이란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전형적으로 부모나 형제와 같이 가까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밖에서는 입을 다물고 전혀 말을 하지 않으며, 이러한 상황이 1개월 이상 지속되어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는 경우 진단할 수 있다.

대개 선택적 함구증 아이를 만나게 되는 어른들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너는 왜 말을 안 하니?”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부답이므로, 아이는 상대방을 답답하게 하고, 때로는 함구증이 반항의 의미로 받아들여져 버릇없는 아이로 오해를 받거나 심하게는 체벌을 받는 경우까지 있다.

사실 선택적 함구증 아동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함구증의 개념이 ‘말하기의 거부’가 아니라 ‘말하기의 실패’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선택적 함구증 아동들은 수줍고 소심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예민하여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인다. 그러므로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는 선택적 함구증을 ‘사회적 불안증’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수줍고 소심한 기질을 가진 아동이 낯선 상황 혹은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 노출 되었을 때, 이에 대한 사회적 불안과 긴장으로 인해 언어 표현의 어려움을 보인다는 것이다.

선택적 함구증의 원인은 다양하며, 아이에 따라서 말을 할 수 있는 대상 범위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는 등 개인차가 있지만, 소심하고 사회적 불안을 보이는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아동들의 경우 미세한 언어발달 장애가 관찰되는 경우들도 보고되는데, 언어 표현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 선택적 함구증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는 선택적 함구증이 나쁜 영향만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순한 아이’라는 인상으로 인해 오히려 또래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이 대변인을 자처하며 보호해주기도 한다. 언어 표현 없이도 어울릴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생각하면 아동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선택적 함구증 아이들은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여 자신의 불안과 긴장을 조절하기 위한 대처전략으로 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동의 연령이 많아지고 발달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마주하며 의견을 표현해야 할 필요성은 점차 커질 것이며, 이 같은 함구증이 고착되면 아이가 앞으로 대면할 사회적 상황에서 겪을 어려움은 커질 것이 분명하므로, 함구증이 고착화되기 이전에 이를 조기에 개입하여 치료할 필요가 있다.

 

선택적 함구증의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와 행동치료를 들 수 있는데 이를 병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약물치료는 아동의 사회적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약물과 함께 치료적 환경의 조성 및 행동요법은 반드시 필요한데, 아동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점차적으로 늘려보는 단계적 노출법이 그 예이다. 가령, 아동이 집에서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와서 같이 놀이해보기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다른 예로는,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엄마와 학교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어보기 등 아동에게 맞추어 단계적인 노출을 시행하고, 그 노출 수위를 점차 높여보는 것이다. 또한 아동의 불안과 긴장을 낮추고 사회적 관계 맺기를 경험할 수 있는 놀이치료 등 심리치료적 개입도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서는 학교라는 사회적 상황 안에서 행동교정을 위해 담임교사나 친구들의 도움을 요청해볼 수 있다. 이들이 선택적 함구증에 대해 이해하고 아이를 배려해주며, 아이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도 있다. 실제로 또래 친구들이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준다면 그 변화가 더 빨리, 어느 순간 나타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말을 하기를 강요하거나 은연중에 권하기보다는 아이가 보이는 약간의 변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강화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밖에만 나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아이. 우리 아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는 아이가 사회적 불안, 긴장 이외에 어떤 다른 스트레스와 고통을 경험하는지는 단편적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사회적 불안이 가장 흔한 경우이지만, 그 기저에는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는 또 다른 이유들이 관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언어발달이 느린 경우, 우울한 경우, 대인 관계에서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한 경우 등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가 두렵고 힘들어 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아이의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접근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아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꾸준히 아이를 격려해준다면, 그 사이 우리 아이는 수다쟁이가 되어 다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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