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위험한 외출 – 13살 소녀와 6인 남자들’편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13세 소녀의 이야기가 소개 되었다. 13세이지만 IQ 70인, 7세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은비(가명)양은 엄마의 휴대폰 액정을 깨트리고 꾸중이 두려워 집에서 가출을 한 뒤 5-6일간을 떠돌며 6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다 뒤늦게 발견되었다. 보호자들은, 발견 당시 이전과 달리 극도로 흥분하며 안정하지 못하는 은비양을 병원에 데려가 ‘처녀막이 파손되고 질 내부에 정액이 차 있었다’는 소견을 듣고 분노하여, 상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민사 제21단독에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경우 성매수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은 허용될 수 없다’며 성폭행이 아닌 성매매로 이 사건을 설명하였다. 은비양이 스마트폰 채팅방을 직접 개설하고 ‘재워주실 분 구한다’ 등의 요구와 성행위에 대한 숙박 해결, 떡볶이, 차비 등의 대가를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들며, ‘은비양이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이에 한동안 지적장애를 가진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현재는 가해자 6명 중 두 명이 벌금형을 받았고, 다른 두 명은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며, 한 명만이 비슷한 전과가 있어 10개월 징역형을 받은 상태이다.

 

법적 의사결정권(Legal competence)는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조항에 의해 그 근거를 갖는다. 사적 사항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는 헌법에 근거하여 국가가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는 바, 타당한 이유 없이는 결코 제한되거나 무시될 수 없는 기본권에 해당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타당한 이유’에 대한 해석 역시 수많은 해석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과 윤리적 가치관을 사회적 규칙과 법규로 가름하는 영역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논란이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갈등은 근본적으로 모호한 윤리적 테두리를, 명확한 법적 규칙으로 테두리 짓는 과정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 있으며, 그 사회적 ‘합의’의 정체성 또한 본질적으로 모호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그 필연성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란은 의료분야, 정신의학 분야에서 또한 피해갈 수 없는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현재 정신보건법 제 24조에 의해 시행 중인 보호의무자 2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동의에 의한 강제입원에 대해, 헌법상 환자의 ‘자기결정권’, ‘의사결정권’이 침해 받는다는 위헌제청 공개변론이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있었다. 강제 입원 조항에 대한 환자의 결정권 침해 여부는 과거부터 논란이 이어져 왔으며, 국가나 의료진이 자기결정권을 제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와, 제한 범위에 대한 논란 또한 끊이지 않아왔다. 물론 헌법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기본법 제12조(보건의료서비스에 관한 자기결정권)에서도 명시하는 바와 같이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인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의학적 연구 대상 여부, 장기이식(臟器移植) 여부 등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의료인으로부터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경우 판단력 상실과 자타해 위험성으로 인해 자기결정권이 제한되어야 하며 필요시 자기결정에 반한 강제 입원을 통한 치료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2016년 5월에는 강제 입원에 대한 절차를 강화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통과 되었다.

그러나 다소 모순되게도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킨지 1주일만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조절되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증상에 따른 범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정부와 여당이 조현병 환자에 대한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인신보호관제도’등의 도입을 통해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관리,감독 또한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은 분명히 국가가 환자의 치료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핵심적인 쟁점은 과연 자기결정권이 제한될 수 있는가. 제한된다면 어느 경우에, 어느 정도로 제한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안타깝게도 이러한 쟁점은 본질적인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명쾌한 정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 될 듯 하다. 그렇다면 그 필연적인 모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달성해내야 할 것이 사회적 합의점의 확립일진대, 오히려 정반대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을 딛고 자기결정권의 존중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다른 국가의 케이스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로 안락사에 대한 네덜란드의 그것이 하나의 답변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료, 보건분야의 자기결정권의 제한 필요성이나 그 범위에 대한 논의가 충돌하는 또 다른 분야는 안락사, 특히 그 중에서도 정신과적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안락사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명백히 자명하지만, 그것이 ‘본인 자신’의 권리나 안위를 침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대답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인 안락사인 경우에는 더더욱 쉽지 않고 말이다. 사실,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강제입원을 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신과적 질환-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정신병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오히려 도와주는 안락사는 강제입원이 이루고자 하는 윤리적 목표의 그것과 정반대의 극점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의학협회 저널(JAMA) 정신과 영역에 실린 Scott Y. H. Kim등의 한 연구에서, 네덜란드에서는 치사량의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의 직접적 안락사를 포함한 자살 방조(?)가 국가적 규정과 제도 하에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복잡하고 만성적인 정신과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또한 포함하고 있음을 보고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환자의 안락사 요청이 자발적이며, 현재의 고통이 치료 불가능하고 호전의 가능성이 없는 등 여러 가지 명시된 표준항목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안락사 요청의 합리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지표는 여러명의 의사와 비의료인으로 구성된 안락사 협의회(Dutch regional euthanasia review committee), SCEN(Support and Consultation on Euthanasia in the Netherlands)의 결정에 따라 안락사 시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러한 협의회가 안락사를 신청하는 환자들의 결정을 위해 상담 등의 도움을 제공하기도 하고 말이다. 개인의 기본권과 사회질서 기본권이 대립하는 극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판단을 위해 최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결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 가치관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관습과 문화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 한계점이 분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한계점에서도 분명한 한계선과 지침을 제시해야 할 필요 또한 있다. 이러한 모순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전문적 자문을 거친 객관적인 표준점이라는 것을 네덜란드의 안락사 협의회가 잘 드러내주고 있는 듯하다.

 

13세 은비양을 자발적 성매매자로 간주하며 그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사법관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성에서의 차별금지) 1항에서도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환자가 폐쇄병동에의 입원치료를 거부한다고 하여도 보호자와 전문의의 판단으로 감금치료를 할 수 있는 정신보건법이 헌법과 보건의료기본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 또한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은비양과 관계한 6인을 무혐의 처리하는 것이 사법 전문가로서의 판사의 결정에 따른 다는 것이, 강제입원의 결정이 정신의학 전문가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이 과연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스럽다.

헐리우드 영웅물에 나온 대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책임을 전문가 몇 명에게 일임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적 결론이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심사숙고를 통한 재고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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