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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너무 많이 자는데 우울증인가요? - 비정형 우울증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1.27 12:07

[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은 자신이 잠을 너무 많이 자는데, 이것이 우울증이 아닌가 염려된다며 상담을 신청하신 20대 여성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우울증 체크 리스트를 봤는데, 항목 중에 “잠을 너무 많이 잔다”라는 문항이 있어서 자신이 그런 것 같다며 긴장하고 있었어요. 퇴근하고 들어오면 그냥 바로 방에 들어가서 혼자 눈감고 누워있거나 핸드폰 하고, 주말마다 눈뜨면 오후 3~4시라고 했고요.

또한 그녀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목표도 사라지고, 원하지 않는 일을 생계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가족을 자신이 부양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자신이 원했던 삶이 아니라는 괴리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우선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잔다”는 항목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너무 겁먹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의욕이나 다른 문제가 겹쳐 있어서 우울증일까 봐 겁먹으신 것 같은데, 이런 진단은 개인이 스스로 내리는 건 무척 위험합니다.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해할 수도 있고. 설문지 만으로 진단되는 것이 절대 아니니, 속단하고 겁먹지 말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사진_픽사베이


사연에 대한 답 전에,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는 우울증”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면, 이런 걸 <비정형 우울증>이라고 해요.

원래 우울증 하면 잠도 못 자고, 밥 맛도 떨어지고, 감정 반응도 위축되어 있기 마련인데, 비정형 우울증의 경우, 과다 수면이 나타나고 음식 먹는 게 그대로 이거나 폭식을 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우울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감정 반응이 살아있는 양상을 보여요.

팔다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leaden paralysis, 납 마비라고 부르는데 이런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물 먹은 스펀지 마냥 느껴지고, 침대 속으로 푹 꺼져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가면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이런 양상도 비정형 우울증의 한 형태를 일컫는 용어라고 보면 맞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웃기도 하고 표정이 살아있는 것 같은데, 내면은 우울한 거죠. 이런 걸 두고 공식적으로는 '감정 반응이 유지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비정형 우울증의 특징입니다.

만약 사연을 주신 분이 이런 특징적인 양상을 갖고 있고, 2주 이상 흥미감소, 의욕저하 등의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면 비정형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설문지 문항만 가지고 진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겁니다.

 

진단을 내리기 전에 또 다른 것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선 일상적인 삶의 패턴이나 스트레스를 봐야 해요. 예를 들어 요즘 무리한 것은 없는지, 피곤이 누적되지는 않았는지. 잠을 많이 자는 건, 피곤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일이 많고, 지치니까, 그런 거죠. 이런 걸 두고 우울증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 우울증 아닌 사람 없어요.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그럴 수도 있고요. 

두 번째는 신체적인 문제도 봐야 해요. 갑상선이라든지, 갑자기 당뇨가 생겼다든지.. 등등. 이런 신체 질환, 특히 대사 질환도 비전형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건강에 대한 체크도 필요합니다.

 

만약 비정형 우울증이라고 하면, 적절한 약물 치료와 상담, 생활 습관 개선이 필요해요.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되고요. 신체 활성화도 도움이 됩니다.

몸이 무겁게 느껴져도 일정하게 생활을 유지해야 호전이 빨라요. 식사도 건강하게 해야 해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되찾고 유지하는 것이 치료와 예방에 매우 중요합니다.  

 

사연으로 돌아가면, 이 분에게 우울증이다 아니다를 이야기 하기 전에 심리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대가족에 부양 책임을 많이 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해야 할 일도 많고, 역할도 막중하고, 또 다른 가족이 사연을 주신 분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요.

이런 분들은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어요. 아파도 내가 아프면 가족은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라서, 나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거든요. 나를 챙기면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고요.

저는 이런 걸 장녀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요. 장녀 중에 이런 경우가 많아서요.

 

막중한 책임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렇게 무겁다는 느낌, 잠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느낌에 휩싸이기가 쉬워요.

우울증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우울증 치료와 동시에 이런 막중한 책임에 대한 재분배랄까, 자기가 인식하는 가족 내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와, 나를 위한 활동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상담도 필요해요.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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