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ndrw Ohlmann. December 2015 Filed under drawing, gouache, 2015

 

당나라 시대의 선승이자 선종(禪宗)의 제 6조 혜능(慧)은 5조 홍인으로부터 법과 가사를 전수받고 남쪽으로 내려가 10여년간 은거생활을 한 뒤, 광동성 광주 법성사에서 수계하기 전에 제지사에서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는 무리를 만났다. 그곳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이 보이자 어떤 한 승려가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라고 이야기 했고, 그러자 다른 승려가 ‘깃발이 아니라 바람이 흔들리는 것이다’라고 반박하며 논쟁을 벌였다. 이에 조용히 앉아 있던 혜능이 일어서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이다’라며 이야기하였고 이에 인종법사가 크게 놀랐다고 한다. 이는 혜능이 정식으로 출가하기 전 은거를 마치고 그의 불법을 드러내는 극적인 첫 장면이다.

 

자아는 스스로를 불안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타고난 특성과 양육환경에 따라 결정지어진다고 하는 이 힘은 자아 강도, 자아기능이라고 불린다. 자아의 여러 가지 기능들이 하는 주된 역할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외부의 자극들, 주변의 세계에서 건네지는 자극으로 부터 우리가 압도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우리 내부에서 오는 자극으로부터 우리가 압도당하지 않도록 중심을 세워주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이라면 폭력, 트라우마, 재난, 무시, 결핍 등이 있을 것이며, 과도한 내적 자극이라면 기분장애-우울증 이나 불안장애, 또는 무의식에서 기인하는 공포나 불안 등이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내적, 외적 자극이라는-안팎으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쉴새없이 흔들리는 마음의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휩쓸리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것이 자아 강도(ego strength), 자아 기능 (ego function)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의 기능들에는 충동조절이나 현실 검증력, 자극 관리, 감정 내성 등의 여러가지 역할이 있겠지만, 그 중 무의식적으로 자극에 대처하는 자동적인 반응을 방어기제(defense)라고 일컫는다. 무의식은 알아차리거나 고치기 쉽지 않고, 인격과 생활 양식의 전반에 걸쳐 그 사람의 자아를 주조하기 때문에 자아 기능 중 그 무의식을 보여주는 ‘방어기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수많은 형태의 무의식적 방어 기제들은 갈등 해결의 형태와 그 결과가 얼마나 사회 적응적이고 안정적으로 나타나는지에 따라 성숙하거나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가장 미성숙한-가장 덜 적응적인 방어일수록 그 핵심 기전을 분열(splitting)에 두고 있다. 분열, 단언컨대 최근 우리 사회를 가장 큰 축으로 뒤흔들고 있는 최고의 키워드인 바로 그 분열 말이다.

 

분열(splitting)은 좋은 느낌을 유지하고 나쁜 느낌을 회피하기 위해 이것들을 각각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갈라놓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이상화(idealization)와 평가절하(devaluation)가 뒤따르게 된다. 쉽게 말해 어떤 대상을 이상화하기 위해 그 대상에서 느껴지는 나쁜 느낌들은 무시하고 오히려 그러한 느낌들로 다른 엉뚱한 대상을 평가절하하면서 자신의 양가감정을 명확하게 다른 대상으로 나누어 놓는 것이다. 쉽게 말한다 해도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분열은 어린아이에게서 자연스럽게 흔히 나타나는 양상의 방어기제이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의탁하고 있는 어머니를 이상화한다. 엄마는 나에게 젖을 주고, 나를 안아주고, 내가 두려울 때면 내 불안을 해결해주는 절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엄마의 실수나 여러 불가피한 상황, 엄마의 미성숙함 등으로 인해 어린아이가 엄마로부터 나쁜 느낌, 위협적인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의 존재를 이상화하며, 절대적인 존재에게 그러한 나쁜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마 이외의 다른 대상을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내면의 나쁜 감정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열’에 기반을 둔 방어는 자아가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을 성취하며 극복된다. 이것은 하나의 대상 안에 좋은 속성과 나쁜 속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엄마는 가끔은 나를 실망시키거나 무섭게 하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챙겨주는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이가 동시에 받아들이게 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본인 스스로의 대상 항상성을 깨닫는 과정을 포함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 방어기제의 핵심 역할인 ‘외적 자극과 내적 자극으로 부터의 자아 안정성 유지기능’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상 항상성을 성취한 자아는 나쁜 느낌을 받더라도 주변의 대상과 스스로 모두에게 좋은 점이 있을 수도 있고 동시에 나쁜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그 느낌을 스스로의 내면으로 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아는 스스로의 내부에 그러한 나쁜 감정 혹은 좋은 감정의 자극을 스스로 통합하지 못해, 일부를 외부에서 온 것으로 분열시켜야만 하게 된다. 혹은 반대로 외부의 자극을 내부의 자극으로 분열시켜야만 하게 되기도 한다.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자극의 일부가 외부에서 들어온 것처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성숙한 자아는 결국 좋은 감정이나 자극은 이상화된 ‘좋은 대상’에게서만, 나쁜 감정이나 자극은 ‘나쁜 대상’에게서만 받게 된다고 느끼며 세계를 양극단으로 분열(splitting)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의 비적응적인-미성숙한 방어기제는 자아로 하여금 본인이 사회에 건강하게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든다. 분열시키는 것은 내부와 외부에서 휘몰아치는 자극에 압도되어 휘청이는 자아가 바로 서기 위해, 자극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아의 눈을 가리우는 셈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자아는 그렇게 눈가리개를 채운 채 이리저리 휘청거리게 된다.

 

세월호에서부터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슈들에서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분열적인 양상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듯 하다. 무고한 수백명 아이들의 사망. 죄없는 한 여인의 억울한 죽음. 비극적이고도 자극적인 이러한 이슈는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자아를 깊숙이 흔들어 놓는다. 아연과 혼란의 자극에 압도된 사회는 분열한다. 분열이라는 미성숙한 사회의 면모를 내비친다.

좌익과 우익. 남혐과 여혐. 양극단의 하나에 설 것을 강요하는 분열의 논리는 그야말로 대상항상성이 결여되어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이미 정해져 있는 분열의 논리에서는 어떠한 자극도, 정보도 우리편 아니면 저편이라는 실무율의 프레임을 통해 출력된다. 진영의 논리와 대립의 구도에서 벗어나 자극을 통합하고 갈무리하여 억제하거나 승화시키기지 못한 채, 분열한다. 끊임없이 분열하며 사건의 본질은 점차 흐려진다. 옳고 그름이라는 양극의 논리에 당초의 본질이 가리워진다.

 

물론 양쪽의 서로를 향한 이야기에 시시비비의 판단이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들도 명백히 있을 것이다. 가려내야 할 것, 밝혀내야 할 것,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할 것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러기 위한 분쟁과 투쟁 또한 불가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의 애매한 논리로 그러한 각자의 정의를 호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각자의 정의만을 외치다 두 눈이 가리워져 오히려 그 각자의 정의가 사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가 우려스러울 따름인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육조 혜능선사가 건넨 선문답 같은 촌철살인의 교훈과 같이, 진정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우리를 압도하는 외부나 내부에서 기인한 자극과 고난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관망하고 통제하는 우리들 마음의 미성숙함이야말로 우리를 뒤흔드는 무의식 깊은 곳의 풀리지 않은 매듭일 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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