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에게 오시는 분 중에 이런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내가 왕년에 000에서 일했었는데 지금은 나를 대접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내가 왕년에는 대단했지, 근데 지금은..."
"제가 인기가 많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왕년에'라는 말, 요즘 말로 하면 '리즈시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진_픽셀


많은 내담자 분들이 방문하셔서 저에게 괴로움을 토로하십니다. 화려했던 그 시절의 높이만큼, 반대로 깊은 늪에서 빠져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 합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혹은 타인을 탓하기도 합니다. 

"내가 그때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데..."
"내가 그때 벌어둔 돈을 가족이 다 쓰지 않고 잘 저금만 했어도..."

또는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 소용없는 일이에요."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하르멘 반 스텐베이크의 <정물; 바니타스>, 1640년 경


이러한 분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현재에 살고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면담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내 삶의 중심인, '나, 그리고 현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찬란한 자신의 시절을 한 번은 맞이하게 됩니다. 싸움을 잘했던 학창 시절, 뛰어난 외모로 이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던 시절,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시절, 누군가와 뜨겁게 사랑을 했던 시절, 모든 사람들의 찬사를 받던 시절 등 말이죠. 하지만 화려했던, 행복했던 시간 뒤에는 상대적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시기가 오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련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요?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장을 20대까지로 봤었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성격이 완성되고 그 이후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였습니다. 그 이후 여러 학자들의 연구로, 인간은 나이를 먹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존재라는 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20~30대, 40~50대, 60-80대, 그 후에도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80대 이후에 무슨 성장이냐고요?

얼마 전에 일본의 100세 정신과 의사인 '다카하시 사치에'는 '백 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과 교류를 계속 이어나갈 것'과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이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쓰지 않는 신체는 병이 들고, 마음을 갈고닦지 않으면 녹슨다고 합니다.

과거의 나에게 붙잡혀 있느라, 현재의 나를 녹슬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지요. 이런 심리적 어려움이 있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도움을 받으세요. 혼자서는 어렵지만, 같은 마음으로 함께 간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백살에는 되려나 균형잡힌 마음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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